[김수완의 복지플랫폼] 평생학습체계,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복지기반

입력 2021-03-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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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3월, 대학 혹은 대학원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하여 바쁘고도 즐겁다는 지인들의 소식을 종종 듣는 요즘이다. 필자가 강의하는 대학원만 보더라도 직장인이 절반을 훌쩍 넘는다. 퇴직을 앞뒀거나 이미 퇴직한 분들도 드물지 않다. 배움의 목적은 다양하다. 일하고 있는 분야의 전문성을 더 쌓으려는 직업역량개발형,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취업·이직형, 변화하는 시대를 이해하고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려는 호모 루덴스형 등이 대표적이다.

학습의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분명한 현상은 교육-취업-퇴직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던 전형적인 생애주기가 해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생애주기 어느 시점에서도 학습의 필요성은 점차 높아지고 또 가능해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9년 발간한 ‘올바른 기술 얻기: 미래 지향적인 성인학습시스템’ 보고서를 통해 이렇게 단언한다. 디지털화, 글로벌화, 고령화로 인해 일자리의 세계가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이 이 변화로부터 혜택을 누릴 수 있을지는 바로 변화하는 세계에 발맞춘 성인학습체계가 얼마나 갖춰져 있는지에 달려있다고.

사실 생애주기가 해체되고 평생학습이 필요해진 건 노동시장 변화에 의해 구조적으로 야기되는 면이 크다. 불안정한 일자리가 만연해지면서, 몇 번에 걸친 이직 경험은 일반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이직 중간에 짧든 길든 실직 기간을 경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플랫폼 노동과 프리랜서 등 독립자영자의 증가로 인해 취업과 실직이라는 이분법적 구분도 점점 흐려지고 있다. 이처럼 노동시장에서 취업의 연속성이 확보되지 못하고, 요구되는 기술이 끊임없이 변화하며, 노동시간 구조가 변형되는 시대에, 직업능력개발을 포함한 평생학습은 개인에게 건강이나 소득보장과 마찬가지로 생애주기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지원으로 요구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학습의 접근성은 획기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일반 대학은 물론이고 사이버대학, 전문대학, 평생교육원, 혹은 지역사회의 배움터나 한국형 온라인공개강좌 K-MOOK 등에서도 발빠르게 변화에 대응한 디지털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교육환경이 전면적 변화를 맞이하면서, 기술적으로도 비대면 상황에서 활용 가능한 디지털 도구들이 갖춰지면서 미래로 더욱 빠르게 이동하는 중이다. 우리나라는 유네스코 글로벌평생학습도시가 전국에 50곳에 달하는 평생학습 종주국이기도 하다.

문제는 막상 노동시장 내에서 직무에 필요한 숙련성을 강화하고 기술을 재구조화하는 지속적인 역량개발체계는 잘 작동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평생학습체계의 인프라는 있으나 직업역량개발과 효과적으로 통합 연계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인력의 역량에 가장 관심이 많아야 할 기업이 노동력의 숙련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각 기업은 노동력을 대체할 자동화에 확실히 투자하는 방식으로 개별적으로 미래에 대응해 왔다. 그 결과 현재 우리나라 제조업의 자동화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노동과 일자리를 중시하는 유럽 복지국가의 접근은 다르다. 국가 차원에서 기술 변화에 대응하는 노동력의 숙련성 확보를 최우선 정책과제로 삼는 방식으로 기업과 노동자 모두를 위한 ‘상생하는 미래 일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2020년 7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향후 5년간의 스킬 아젠다와 주요 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노동시장과 예측 불가능한 미래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방법으로 평생학습이 필수적임을 강조하면서 제안한 정책들을 살펴보자. 평생학습에 대한 접근 기회를 촉진하도록 인적자원 개발에 비용을 지원하는 개인학습계좌제, 특정 기술에 대해 단기 코스나 모듈을 완료하고 획득한 역량을 평가하여 수여하는 마이크로자격증에 대해 유럽 표준을 설정하는 작업, 구직활동을 위한 정보 제공과 개인의 교육과 업무경력 등을 관리할 수 있는 온라인 도구인 유로패스 플랫폼 확산 등이 포함된다. 이 위원회의 제안에는 구체적인 정책 목표치도 제시되어 있다. 예컨대 성인의 학습 참여율을 2025년까지 50%까지 높이고, 최근 4주 내에 학습경험을 가진 실업자의 비율을 20%로 끌어올리며, 최소한의 기본적 디지털 스킬을 보유한 16~74세의 비율을 현재 56%에서 70%까지 높이자는 것이다. 이처럼 평생학습은 개인의 역량 강화를 통한 일자리 복지를 챙기는 동시에 미래 생산동력을 확보하려는 ‘사회투자국가 전략’의 핵심 축이다.

우리의 삶으로 돌아와 보자. 나에게 있어 평생학습은 어떤 의미인가? 변화하는 미래에 생존을 위한 적응을 가능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성장하게 해주고, 긴밀하게 서로 돕는 연결망 안에 속하게 되는 관계의 확장을 누릴 수 있다. 이번 봄에 다시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는 지인들이 한결같이 얘기하는 배움의 기쁨이기도 하다. 영국의 사회활동가이자 혁신가인 힐러리 코텀은 저서 ‘래디컬 헬프’에서 개인이 변화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새롭게 요구되는 복지국가의 역할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이제는 평생학습이 생애주기에 걸쳐 가장 오래,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보편적 사회안전망으로 자리잡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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