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K좀비와 배터리

입력 2021-01-11 15:0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김벼리 산업부 기자

얼마 전 외국계 모 배터리 업체에 다니는 지인의 연락이 왔다.

회사에서 전기차용 배터리 브랜드 이름을 공모하고 있는데 아이디어 좀 말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비록 소비재는 아니지만, 시장의 관심이 커지자 이미지 마케팅을 강화하려는 전략이었다. 유명 건전지 브랜드 '에너자이저' 같은 식이다.

상금이 꽤 짭짤하니 당첨되면 한턱내겠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신규 브랜드에는 긴 수명, 장거리 주행, 고속 충전 등 배터리의 장점을 부각할 수 있는 요소들이 최대한 많이 담겨야 했다.

서로 나름의 유머를 곁들인 단어들을 내뱉던 중에 '좀비'라는 단어에 꽂혔다.

좀비는 웬만해서 죽지 않는다. 좀비는 일종의 '언데드(Undead)', 그러니까 죽은 상태도 아니고 죽지 않은 상태도 아닌 존재다. 약점이 없진 않지만 웬만해서는 죽을 일이 없다.

체력도 사람에 비할 바가 아니다. 뇌가 무엇인가에 잠식됐으니 힘들다는 감정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

더구나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에서 나온 '한국판 좀비'는 속도까지 빠르다. 전력 질주로 산 사람들을 쫓는다.

이렇게 '최강의 배터리'를 묘사하며 머리를 굴리던 차에 지인은 뜻밖의 화제를 꺼냈다.

최근 연이어 발생한 전기차 화재를 말하며 배터리 업체들이 성능을 최우선시하며 수주 경쟁을 벌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안전성이 소홀히 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전기차 제조사들은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차를 만들기 위해 주행거리, 충전 속도를 높이려 한다. 이 상황에서 한 배터리 업체가 안전을 생각해 성능을 조절한다면 바로 경쟁사에 수주를 빼앗길 것이다.

지인은 이런 구조상 배터리 업계에서 치킨게임이 불가피하다고 토로했고, 나는 그렇다면 먹잇감을 향해 경쟁하듯 질주하는 한국형 좀비야말로 현재 업계의 초상(肖像)이 아니냐며 무릎을 탁, 쳤다.

'좀비'라는 브랜드로 술 얻어먹는 것은 물 건너갔다는 생각과 함께.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법정상속분 ‘유류분’ 47년만에 손질 불가피…헌재, 입법 개선 명령
  • 2024 호텔 망고빙수 가격 총 정리 [그래픽 스토리]
  • "뉴진스 멤버들 전화해 20분간 울었다"…민희진 기자회견, 억울함 호소
  • "아일릿, 뉴진스 '이미지' 베꼈다?"…민희진 이례적 주장, 업계 판단 어떨까 [이슈크래커]
  • “안갯속 경기 전망에도 투자의 정도(正道)는 있다”…이투데이 ‘2024 프리미엄 투자 세미나’
  • "한 달 구독료=커피 한 잔 가격이라더니"…구독플레이션에 고객만 '봉' 되나 [이슈크래커]
  • 단독 교육부, 2026학년도 의대 증원은 ‘2000명’ 쐐기…대학에 공문
  • "8000원에 입장했더니 1500만 원 혜택"…프로야구 기념구 이모저모 [이슈크래커]
  • 오늘의 상승종목

  • 04.25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3,000,000
    • -0.47%
    • 이더리움
    • 4,549,000
    • -0.55%
    • 비트코인 캐시
    • 689,500
    • -1.78%
    • 리플
    • 758
    • -1.56%
    • 솔라나
    • 210,500
    • -2.41%
    • 에이다
    • 680
    • -1.88%
    • 이오스
    • 1,217
    • +0.91%
    • 트론
    • 169
    • +1.81%
    • 스텔라루멘
    • 165
    • -0.6%
    • 비트코인에스브이
    • 96,350
    • -3.21%
    • 체인링크
    • 21,050
    • -1.03%
    • 샌드박스
    • 668
    • -1.33%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