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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아의 라온누리] 추억의 음식, 위로의 음식

입력 2020-11-25 18:08

편집부 교열팀장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도는 음식이 있다. 기분이 우울할 때 그 음식을 떠올리면 푸근해진다. 마음에 안정을 주니 ‘위로의 음식’이다. 코끝 찡한 기억에 빠져들게 하니 ‘추억의 음식’이다.

찬바람이 부는 이맘때면 ‘아버지표 양미리 구이’가 그립다. 연탄불에 잘 구워진 양미리는 비린내가 나지 않아 참 고소하다. 아버지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뼈째 꼭꼭 씹어 먹으면 키가 쑥 자랄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안타깝게도 키가 크진 않았다.

아버지에게 양미리 구이는 술안주였다. 소주 한 잔을 들이켠 후 갓 구운 양미리를 맛나게 드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버지와 함께 강원 속초로 여행을 떠나 대포항 인근 포장마차에서 양미리 구이에 소주 한잔하고 싶은데… 그저 세월이 야속할 뿐이다.

먹을 것이 귀하던 1970·80년대 강원도 산골마을에선 양미리가 든든한 겨울 양식이었다. 저녁이면 동네에 양미리 굽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집집마다 처마 밑 담벼락에는 시레기와 함께 짚으로 엮인 양미리가 걸려 있었다. 찬바람에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면서 고소한 맛이 더해졌던 것 같다. 시장에선 강릉·양양·속초 등지에서 가져온 양미리를 삽으로 퍼서 팔 정도로 흔했다. 아마도 한 삽에 1000~2000원이었을 게다.

첫눈이 올 때쯤 뜨끈한 아랫목에서 먹던 도루묵 찌개도 그리운 추억의 음식이다. 마리당 600~1000개의 알을 품은 ‘알 반 살 반’인 도루묵은 톡톡 터지는 식감이 아주 좋다. 끈적끈적한 알에는 비타민과 연골·활액 성분도 들어 있다니 건강식으로도 그만이다.

나는 도루묵은 연탄불에 구운 것보다 찌개로 먹는 게 더 맛있다. 무를 깔고 알이 가득 밴 도루묵을 올린 후 고추장, 고춧가루를 푼 양념장을 넣고 끓이다 청양고추를 넉넉히 넣으면 얼큰한 맛이 기가 막힌다. 몸밖으로 삐져나온 노란 알들을 국물과 함께 한 숟가락 푹 떠서 먹으면 매콤한 쫄깃함에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도루묵은 환목어(還木魚)·환맥어(還麥魚)·도로목어(都路木魚)·목어(木魚) 등 한자 이름도 많다. 조선시대에는 은어(銀魚)·은조어(銀條魚)로 불렸다. 선조가 피란길에 맛본 ‘목’이라는 물고기가 너무도 맛있어 하사한 이름이란다. 환궁 후 선조는 은어의 맛을 못 잊어 다시 먹어보았는데 예전 그 맛이 나지 않자 “도로 묵이라 불러라”라고 역정을 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옛 문헌을 살펴보면 역정을 낸 임금이 선조가 아닐 수도 있다. 1904년 4월 9일 자 황성신문에는 인조로 나온다. ‘홍길동’의 저자 허균은 ‘성서부부고’ 도문대작에 “목어를 좋아했던 고려왕이 이름을 은어로 했다가 싫증이 나자 다시 목어라고 고쳤다 하여 환목어라 한다”고 썼다.

조선의 왕이든 고려의 왕이든 환난으로 백성을 어려움에 빠뜨린 임금 때문에 ‘도루묵’이 오명을 얻은 건 분명하다. 누구 때문이든 도루묵이 목어에서 은어로 신분상승했다가 다시 목어로 전락한 ‘가엾은’ 물고기임에도 틀림없다.

첫눈이 내리면 추억의 맛을 찾아 혀가 굼실거린다는 이들이 많다. 날이 추울수록 뜨거운 맛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권한다. 지금 동해안에는 은빛 반짝이는 양미리와 알을 품은 도루묵이 한창이다. 바다를 마주하고 노을빛에 물들며 ‘미식’ 삼매경에 빠져 보시라. jsjy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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