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준의 일, 삶, 배움] 인적자본 투자 공황의 시대

입력 2020-10-22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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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

통상적으로 경제학에서 경제공황이라 함은 상품 생산은 있으나 수요가 받쳐주지 못하여 재고가 쌓이고 생산과 소비와 투자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을 의미한다. 기업은 각자가 보유한 기술을 동원하여 만든 상품을 시장에 내놓고 소비자는 여기에 만족하며 소비를 이어간다. 시간이 지나 시장에서 약간의 경쟁 압력은 있으나 기업은 하나라도 더 많이 팔기 위해 투자를 늘려 제품의 질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여 소비자에게 다가간다. 질 좋은 상품은 고장도 잘 일어나지 않으며 시장에 질 좋은 상품이 넘쳐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소비자의 수요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한다. 재고가 점점 쌓인다. 어느 아침 눈을 뜨니 기업의 주식 가격은 곤두박질로 내려갔다. 이것이 바로 공황이다.

여기서 상품을 사람으로 바꾸어보면 오늘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노동시장의 현실을 알 수 있다. 과거 산업성장 시대에 개인의 인적자본 투자는 만족스러운 수익을 창출하였으나 어느 날부터 인적자본 투자 수익률은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좋은 일자리의 노동 수요는 사라졌으며 내가 투자한 것 대비 만족할 만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직업의 수는 현격히 줄어들었다. 사람들의 인적자본 투자액은 갈수록 증가하는데 투자 수익은 점점 하락하였다. 가히 인적자본 투자 이익 저하 경향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 하겠다. 일자리는 고급스럽거나 저급한 두 종류로 양극화되었다. 슬금슬금 인적자본 공황이 우리들 앞에 온 것이다.

인적자본 공황의 시대는 우리를 많이 변화시키고 있다. 종신고용은 고사하고 서른 살 언저리에 입사하여 15년 근속을 채운 사람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신화적 존재가 되었다. 투자 대비 수익이 나쁜 일자리와 소득은 근로시간으로 보충하였다. 이는 소득 빈곤과 시간 빈곤을 넘어 인간관계의 빈곤까지 삼중 빈곤을 낳았다. 이러한 경제적 이득의 불확실성과 삼중 빈곤은 우리를 정의, 불공정, 평등, 자존감, 정체성 찾기, 유대감, 친밀감과 같은 비경제적 가치의 중요성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채용의 공정성은 과거 산업성장 시대를 이끈 그 어떤 규범보다 사회를 지탱하고 이끄는 새로운 시대적 규범으로 정착되었다. 직장에서 미래를 담보해주었기에 기성세대들이 참아왔던 직장 내 숱한 비인간적 대우는 갑질 근절로 응징하였고 이를 통해 나의 자존감을 지켜나갔다. 아련하고 가능성 없는 좋은 일자리와 소득을 위해 희망고문을 당하기보다는 얼마 못 벌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 나의 정체성을 구하기 시작하였다. 부모들도 자신의 자녀가 대학 간판 하나로 성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에 좋은 직장을 얻기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를 원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회사의 인간관계보다 나와 비슷한 생각과 고민을 하는 소수의 사람들과의 유대감과 친밀감이 더 중요해졌다. 결혼, 출산은 고사하고 연예보다 소위 ‘썸타는’ 것이 더 편해진 세상이다.

경제적 관점도 변화시켰다. 상품시장과 노동시장에서 더 이상 인적자본 투자 회수가 불가능해졌다. 오히려 상품시장보다 금융과 부동산이 더 정의롭고 평등해 보이게 만들었다. 정확히 공부하고 분석하여 투자하면 월급으로 투자 비용을 회수하는 것보다 수익률이 높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투자, ‘영끌’의 부동산 투자, 동학개미 등은 이러한 실태를 반영하는 핵심어다. 불로소득은 정당한 것이 되었다.

지금은 인적자본 공황의 시대이자 인적자본 투자 이윤율 저하 경향이 발생하는 시대이다. 공황의 해결은 풍부한 인적자원에 대한 유효수요 확대인데 인공지능 발전으로 이마저도 어려울 것 같다. 인적자본 공황의 시대는 전통의 일자리와 삶, 배움, 복지의 개념을 바꾸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교과서에 없는 개념을 요구한다. 지난 10여 년간 저출산 대책 비용 170조 원, 일자리 예산 150조 원이 우리의 삶에 그다지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던 것이 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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