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주년] 온몸으로 그리는 획...의수화가 석창우 “마음은 언제나 달린다”

입력 2020-10-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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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데이 창간 10주년 축하 화보

의수에 의지한 지도 36년…서예가 효봉 선생 만나 인생2막
"팔 없는 게 오히려 장점, 기교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쓰게 돼"

▲석창우 화백이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대방로 이투데이빌딩에서 이투데이 창간 10주년 기념 축하 화보에 담은 작품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석창우 화백이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대방로 이투데이빌딩에서 이투데이 창간 10주년 기념 축하 화보에 담은 작품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등허리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가슴팍까지 흥건해진다. 이내 이마에서 땀방울이 떨어진다. 닦을 새도 없이 먹을 칠한 붓으로 오마주를 그려낸다. 하나, 둘, 셋 그리고 열. 그의 몸이 지나가자 열 명의 경륜 선수들이 숨 가쁘게 달리는 듯한 형상이 나타난다.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대방로 이투데이빌딩에서 석창우 화백을 만났다. 그는 대한민국 1호 의수(義手) 화가다. 쇠 갈고리 손에 먹물을 머금은 붓을 끼워 넣고 대형 화선지에 그림을 그린다. 손 대신 몸이 지나간 자리엔 이전엔 보지 못했던 에너지가 생겨난다.

이날 석 화백은 ‘꿈, 땀, 열정’이 새겨진 100호짜리 ‘수묵 크로키’ 대작을 직접 그려 이투데이에 선사했다. 창간 10주년을 축하한다는 의미를 담은 기념작이다. 자전거 10대에는 10주년을 축하하고, 100년까지 나아가라는 의미를 담았다. 검정 자전거와 주홍색 자전거의 조화는 정론직필(正論直筆) 구현을 상징한다. 그의 거침없는 일필휘지(一筆揮之)를 본 이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손 있는 30년과 비교해 보면 손 없는 30년이 더 행복해요. 저도 몰랐던 DNA가 하나님의 프로그래밍 덕분에 나타난 것이니까요.”

그는 스포츠의 역동성을 화폭에 옮기는 것을 선호한다. 스포츠 선수들의 꿈과 땀, 열정을 표현할 때 석 화백도 자유를 맛본다.

“제가 팔이 없다 보니 점점 정적으로 살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마음만은 동적입니다. 단순히 경기를 옮기는 게 아니라 그들의 내면을 담는 것과 같아요.”

어느덧 의수에 의지해 살아온 지도 36년이 흘렀다. 그의 이야기는 1984년 10월 29일 시작된다. 당시 28세로 전기관리자였던 석 화백은 공장 변전실에서 내부 전기설비 점검을 하다 2만2900볼트(V) 고압 전류에 감전됐다. 의식이 돌아온 것은 사고 일주일 만이다. 이후 중환자실에서 27일간 지낸 뒤 마주한 건 휑한 두 팔이었다.

“눈을 떴는데, 두 팔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아내는 덤덤한 표정으로 ‘요즘엔 의술도 좋으니 빨리 나을 생각 하라’라고 말하더라고요. 손가락 하나만 떨어져 나가도 어떻게 사느냐고 할 법한데 말이에요. 편하게 말해주니 다른 생각할 필요도 없었어요. 정신적 고통을 겪지 않은 채 지나갈 수 있었죠.”

열두 번의 수술을 이겨내야 했다. 감전사고에서 비롯된 후유증과 환상통, C형간염을 겪었다. 2008년엔 협심증으로 죽을 고비까지 넘겼다. 모든 것은 가족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장애인올림픽에서 폐막식 퍼포먼스를 하게 된 것도 자신이 몰랐던 재능을 찾게 해준 아들 덕분이다.

“사고가 났을 때 아들이 태어난 지 한 달 반이고 딸은 연년생이어서 20개월 더 컸죠. 시간이 흘러 아들이 4살쯤 됐는데, 갑자기 그림을 그려달라는 거예요. 엄마한테 그려달라고 하니 ‘아빠한테 그려달라고 해’라고 했대요. 의수에 볼펜을 끼고 참새 한 마리를 그려줬어요. A4 용지 정도 크기의 작은 그림이었죠.”

무엇인가를 해내는 아빠가 되고 싶었던 석 화백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미술학원을 찾았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팔 없는 학생을 가르쳐본 적이 없다’였다. 그러던 중 서예가 효봉 여태명(원광대 교수) 선생을 만나면서 인생 2막이 시작됐다.

“여러 가지 손동작을 하기 힘들어서 서예를 하게 됐는데 나중에 보니 그림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더라고요. 그것도 모르고 선생님께 가서 가르쳐달라고 했죠. 하지만 팔이 없다는 게 제겐 장점이 됐어요. 팔꿈치가 있으면 기교를 부리는데, 팔이 없으니 온몸으로 정직하게 쓸 수 있잖아요.”

그는 하루 10시간씩 15년 이상 훈련했다. 요즘도 한 번 작업실에 들어가면 나올 줄 모른다. 온몸으로 붓질을 하고 나면 기진맥진해진다. 땀은 ‘성경 필사’를 시작한 후부터 흘리기 시작했다. 눈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젠 안경 없이 작은 글씨까지 다 볼 수 있게 됐다. ‘석창우체’로 써간 성경은 길이 25m, 폭 46cm 화선지 총 115개 분량이다. 총 2875m에 달하는 작업을 위해 하루 4~5시간씩 무려 3년 6개월을 쏟아부었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 집중하다 보니 어느 순간 세상의 편견에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가게 됐어요. 저의 현재가 좋고 미래가 좋아요. 오직 그것만 생각했어요. 운동장에 마라톤을 상징하는 49.195m(마라톤은 49.195km) 길이의 족자를 만들어서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더 늙기 전에 해내야죠. 간절하게 원하면 모든 것은 이뤄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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