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로또' 고가점 현금부자들이 싹쓸이… 도마 오른 '청약가점제'

입력 2020-08-3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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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기준 없으니 돈많은 무주택자에게 '기울어진 운동장'… 제도 개선 목소리 커져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전세 10억 원짜리 집에 살고 있는 40대 김 모씨는 최근 청약을 통해 인근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세입자 김씨는 현재 거주 중인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자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동안은 집을 살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고 말한다. 개인사업을 하고 있어 굳이 부동산 투자를 통한 자산 증식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집을 사면서 내야 할 세금 문제로 골치를 앓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최근 급격하게 오른 집값을 보면서 김 씨는 마음을 바꿨다. 강남 아파트의 경우 대출 규제 등으로 기회가 제한된 탓에 김 씨와 같은 무주택 고소득자에게는 되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자산관리인의 조언도 도움이 됐다. 김 씨는 “부모님이 가입해 준 청약통장의 가점도 높아졌고, 아이들도 어느 정도 큰 만큼 집을 마련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청약가점이 높아 로또 단지에 당첨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막상 앉아서 차익 10억 원을 챙길 수 있게 돼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돈 많은 무주택자들의 놀이터로 변질된 청약제도

투기를 억제하고 서민 실수요자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만들어졌던 청약제도가 오히려 투기를 조장하고 주택시장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주택을 배분하려는 애초 취지와 달리 현금 부자들의 배를 더 불리는 재산 증식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청약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는 그간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 특히 무주택 기간과 부양가족, 청약통장 가입 기간을 합산해 점수가 높은 순으로 입주자를 선정하는 청약 가점제가 2007년 도입되면서 형평성 논란이 크게 불거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10여 차례나 손을 봤을 정도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 방향은 오히려 청약제도의 부작용을 부각시켰다. 지난 2017년 내놓은 '8·2 부동산 대책'이 대표적이다.

당시 정부는 치솟는 집값을 잡고,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기회를 늘려주겠다며 가점제 적용을 늘리고, 1순위 자격을 엄격히 적용하는 등 청약 조건을 강화했다. 그러나 이같은 정책은 오히려 ‘돈 있는 실수요자’를 위한 정책이란 비난이 나올 정도로 부작용이 컸다. 실제 8·2 대책으로 중저가 유주택자는 높은 가점을 받기가 불가능해진 반면, 자산 형성이 쉬운 고액 전세 고소득자(자발적 무주택자)는 오히려 가점을 높게 받아 강남 로또 분양 아파트를 독식하는 현상을 유발시켰다.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 문을 연 '힐스테이트 여의도 파인루체' 견본주택을 찾은 예비 청약자들이 길게 줄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본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 (뉴시스)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 문을 연 '힐스테이트 여의도 파인루체' 견본주택을 찾은 예비 청약자들이 길게 줄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본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 (뉴시스)

◇'중도금 대출 불가' 물량도 경쟁 치열

뿐만 아니라 분양가를 과도하게 통제하고 대출을 강하게 압박하고 나선 것도 청약제도 허점을 부각시켰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으로 신축 아파트 공급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 속에 당첨만 되면 큰 시세 차익 거둘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으면서 청약을 내집 마련이 아닌 ‘로또’로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9억 원 이상 아파트에 대한 중도금 대출까지 불가능해지자 그나마 '로또 청약'은 현금 부자들만의 잔치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당장 이달 분양에 나섰던 서울 강남구 대치동 ‘대치 푸르지오 써밋’(대치동 구마을 1지구 재건축 아파트)만 보더라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대치 푸르지오 써밋의 경우 당첨만 되면 수 억원의 시세 차익을 볼 수 있어 ‘로또 청약’으로 불렸다. 하지만 전 가구가 9억 원을 초과해 중도금 대출이 불가능한 단지여서 일각에서는 흥행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됐다.

막상 청약이 시작되자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106가구 모집에 무려 1만7820명이 몰린 것이다. 분양 관계자는 “대부분 예비 청약자들이 중도금 대출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 대출 문의는 없었다”면서 “입지가 좋은 만큼 투자 목적으로 문의한 청약자들도 다수였다”며 놀라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강남지역 등 입지가 좋고 시세보다 저렴한 새 아파트는 당장 수 억원을 보유한 현금 부자들에게만 기회가 보장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청약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전문가는 “일부 후진국을 제외하고 청약제도를 국가에서 운영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면서 "특정 분양 단지에 대한 과도한 쏠림 현상을 완화하려면 분양가 자율화를 실시해 시장 논리에 맡기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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