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김대중의 수도이전 불가론(不可論)

입력 2020-08-0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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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꽤 긴 글인데 요약 인용한다.

“각 나라의 수도는 지리적 중심이나 국왕의 편의로 정해진게 아니라, 국토 방위의 전방에서 싸우고 짓밟히고 되찾는 투쟁으로 얻어진 영광이자 교훈이다. 영국 남단 템즈강 입구 런던은 9∼10세기 노르만인의 침략을 선봉에서 지켜냈고, 프랑스 파리도 노르만과 숙적 영국과의 싸움에 앞장선 최전선이었다. 독일 동쪽 베를린은 프로이센의 최대 위협이었던 러시아를 막는 곳이었고, 신성로마제국의 중심이었던 오스트리아 빈은 오스만투르크의 침공에 대항하는 거점이었다. 중국 베이징은 북방 민족과 대치한 전방 교두보였으며, 일본 도쿄는 서양 세력이 밀려드는 태평양의 정면에 자리한다.…조선의 도읍 서울은 풍수론에 의해 정해졌다. 그럼에도 가장 올바른 수도의 자리다. 불행한 남북 분단으로 한강 북쪽 휴전선에서 불과 25㎞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여기서 정부와 나라의 지도자들이 국가 방위에 끊임없이 긴장하며 숨쉴 때 국민의 믿음과 협력은 자연히 솟아 오른다.”

강대국 수도의 역사성과 의미, 가치에 대한 깊은 통찰(洞察)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썼다. 그는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진주교도소에 수감돼있던 1977년 11월 이희호 여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서울 말고 대한민국 수도는 절대 다른 곳일 수 없다”고 역설했다. 2009년 발간된 ‘옥중서신1-김대중이 이희호에게’에 실려 있다. 기실 행정수도 이전은 그가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1971년 처음 주장한 이슈다. 그리고 이 글은 박정희 정권 말기 대전의 임시수도 건설계획이 추진되고 있을 때 쓰여졌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불쑥 청와대와 국회, 정부부처가 모두 세종시로 내려가는 행정수도 완성론을 꺼낸 이후 여당은 천도(遷都) 밀어붙이기에 일사불란하다. 해묵은 지방균형발전, 서울·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문제 해소가 명분이다. 대단한 정치기술이다. 여권은 부동산정책의 잇따른 실패와 집값 폭등에 따른 민심이반으로 궁지에 몰렸다. 이 시점의 수도이전론은 정권의 실정(失政)을 덮는 카드이자, 여론 흐름을 미리 계산한 국면 뒤집기의 승부수다. 앞으로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파괴력을 갖고 2022년 대선까지 이어지는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여권의 ‘꽃놀이패’다.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대선에서 호남과 충청지역을 묶어 크게 재미본 바 있다.

노무현의 수도이전 계획은 2004년 헌법재판소의 ‘관습헌법’에 근거한 위헌 판결로 무산됐다. 이후 기형적인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만들어진 결과가 세종시다. 국가 권력기관과 기능의 분산으로 인한 행정 비효율과 막대한 비용 낭비 등 폐단이 크다. 수도를 옮기려면 국민투표나 개헌을 통해야 하겠지만, 청와대나 국회가 세종시로 내려가도 대수로울 것 없다. 개인적으로 지금 당장이라도 갔으면 좋겠다.

그러나 뺄셈의 논리다. 지방균형발전으로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지 검증되지 않는다. 균형발전은 부정할 수 없는 명분이지만, 그것이 서울에서 국가행정기능을 빼내고, 여권이 다시 밀어붙이는 공공기관의 2차 이전, 또 불거진 서울대 폐지론 같은 분할방식으로 이뤄질 수 없다.

도시는 생산력의 집적과 일자리를 좇는 인구 집중으로 만들어진다. 서울은 여전히 경제중심일 것이고, 경제·문화·교육 경쟁력의 가치, 기업활동과 금융·인적자원 공급 등의 효율성이 유지되는 한 사람들은 계속 서울에 몰려든다. 행정기능이 떠난 빈 자리는 기업과 돈이 채울 것이다. 서울 집값 결코 잡을 수 없다. 그동안 공공기관 이전 등 수많은 균형발전 정책이 수도권 과밀과 지역 불균형 해소에 실패한 이유다.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에 처음부터 지역 이해(利害)를 부추기는 선거의 표 계산만 있었지, 글로벌 시대 도시가 추구해야할 정치·경제·사회적 개념과 국가의 미래경쟁력에 대한 담론이 없었다. 되살아난 수도이전론도 마찬가지다. 수도의 의미와 역사성·상징성의 통찰, 국가 대계(大計)의 고뇌, 언젠가 다가올 통일한국의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허울좋은 균형발전 논리 말고 수도이전의 철학적·경제적·사회적·기술적 의문에 답도 없는 정치공학만 판친다. 서울의 과거와 현재에 무지하고 미래에 눈감은 한없이 가벼운 수도이전론이다. 그러니 대한민국 브랜드이자 경쟁력의 원천인 600여 년 수도 서울을 ‘천박한 도시’로 깔아뭉갠, 여당 대표라는 이의 천박하기 짝이 없는 말이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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