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춘욱의 전쟁을 바꾼 경제 이야기] 4.부유했던 송나라가 가난했던 유목민족에 패한 이유는

입력 2020-07-0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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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의 황토고원이 마르면, 그들은 황허를 건너 한족의 땅을 넘봤다

‘부국강병’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모든 국가의 달성 목표였다. 이를 한 단계 쪼개 보면 많은 경우에서 ‘부국’은 ‘강병’의 필요조건이었다. 일단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돈을 벌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군사력을 확보했다. 이후에는 강력해진 군사력이 경제력을 더욱 높이는 데 활용됐고, 이를 바탕으로 ‘강병’을 더욱 강화할 수 있었다. 역사상 이름을 남긴 강력한 국가들은 대부분 이 같은 선순환을 통해 국력을 키웠다.

최강대국 송나라의 허망한 몰락

하지만 때때로 역사에서는 ‘부국’이 ‘강병’으로 이어지지 못한 사례도 존재한다. 대표 사례는 역사적으로 최강대국이었던 중국의 역사에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12세기 통일왕조였던 송나라는 경제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음에도 유목민족에게 허망한 몰락을 맞았다. 군을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이 아무리 풍부해도 경제적 주변 정세에 맞는 전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다면 언제든 급격히 무너질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중국 역사를 이해하려면 요, 금, 원, 청으로 이어지는 북방민족이 세운 나라의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중국 역사의 흐름을 바꾼 존재일 뿐만 아니라, 12세기 이후 거의 1000년에 걸친 기나긴 세월 동안 현재 중국 영토의 상당 부분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북방 유목민족의 중국 지배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하게 판단하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 이야기는 분명히 할 수 있다. 그것은 중국에 자라나고 있던 산업혁명의 싹을 꺾었다는 것이다. 1127년 금나라에 멸망하기 직전, 북송(北宋)은 1700년대 영국을 제외하고 산업혁명에 가장 근접한 나라였다. 무엇보다 상공업의 발달이 대단히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도시가 발달하는 가운데 자유로운 노동시장이 형성된 증거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당시 북송의 수도, 개봉을 방문한 일본의 승려 조진(成尋)은 다음과 같이 흥미로운 기록을 남겨 놓은 바 있다.

‘△공중목욕탕 입욕료 = 1인당 10문 △삿갓 이용료 = 50문(3명) △쌀 4두 = 400문 △인부 고용료(가마꾼 등) = 300문 △종교시설 참배료 = 2문 △술값 = 150문(13인분) △방값 = 50문’

전형적인 시장경제의 모습이다. 농촌을 중심으로 한 자급자족 사회가 일반화되었던 유럽 중세와 달리, 사람들이 자유롭게 거래하고 또 자기 노동력의 가치를 시장에서 평가받는 ‘시장경제’의 모습이 900년 중국에서 펼쳐졌던 셈이다. 물론 송나라 정부는 유교 철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이른바 ‘유교의 나라’였기에, 개국 초기에는 상거래 활성화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당시 거란과 만주족 그리고 몽골 등 북방 유목민족이 끊임없이 국경을 침범하는 데 대응하는 과정에서 군사비 지출 부담이 높아지자 어쩔 수 없이 상거래를 활성화하고 또 동전을 대거 발행하는 재정국가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농업·상거래 ‘경제혁명’ 이뤘지만

상거래의 발달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산업인 농업에서도 변화가 이뤄졌다. 비가 많이 오고 온난한 양쯔강 유역 지방에 적합한 새로운 혁신적인 품종이 전달된 것이 ‘경제 혁명’의 근원이 됐다. 이른바 ‘참파쌀(Champa rice)’이다. 이 품종은 매우 빨리 수확할 수 있었기에 벼의 이모작이 시작됐다. 식량 생산이 늘어나면서 경제에 두 가지 영향을 미쳤다. 농업의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농촌에는 잉여인력이 발생했다. 이 사람들이 도시로 이동하면서 품삯이 내려갈 유인이 높아졌다. 또한 전쟁에 따른 노동력의 부족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됐다.

경제력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전쟁 수행 능력도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북송은 왜 금나라에 그토록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을까. 탄탄한 경제 기반을 가진 북송이 무기력하게 몰락한 직접적인 이유는 당시 유목민족과 북송이 ‘비대칭 전력’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유목민족은 북송에 비해 기병 전력이 매우 발달해 있었는데, 오늘날에 비유하자면 ‘핵무기’에 비유할 만큼 차이가 컸다.

기마병 對 보병 ‘비대칭적 전력’

한족의 보병은 북방민족의 기병에 상대가 되지 않았으며 특히 북송 시절은 소규모의 전투에서라도 이긴 적이 거의 없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1100년대 초반 17명의 여진족 전사와 잘 무장된 2000명의 송나라 보병 사이에 벌어진 전투다. 여진족 전사들은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중앙에 7기 그리고 좌우 날개에 5기씩 세 부대로 분열한 후 말 위에서 활을 쏘며 적을 교란했다. 2000명의 송나라 보병은 완전히 농락당한 끝에 궤멸된 반면 여진족 기병은 단 1기도 잃지 않았다. 이 기록은 교전에서 패배했던 북송이 자신들의 역사서에 기록한 내용이다.

송나라도 기병의 열세를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해결할 방법은 찾아내지 못했다. 북송은 서하(西夏)와 같은 인근 국가에서 말을 수입해 기병이 열세를 만회하고자 했다. 오늘날에 비유하자면 주요 전략물자를 외주에 의존한 셈이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수도(首都) 선정에 실패했다는 점도 기병의 절대적인 열세와 맞물려 송나라의 몰락에 큰 원인을 제공했다. 당시 수도였던 개봉은 중국의 통일왕조 가운데 유일하게 송나라가 도읍으로 삼았던 곳이다. 100만 명의 인구가 살았고 교역이 활발했던 국제 도시였지만, 넓은 평야지대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북쪽의 국경선이 뚫리는 순간 수도까지 아무런 관문이 없었다. 수많은 인구를 먹여살릴 식량은 비축이 불가능해 수송에 의존했다. 유목민족의 기병이 수송로를 교란하면 개봉에 있는 수 많은 인구가 극심한 기아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홍수 잦으면 북방민족 침범 적어

당시 나타난 기후 변화도 송나라에 불운이었다. 유목민족이 남쪽을 침략한 이유는 황허강(黃河)의 수위 변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홍수 위험이 낮아진다는 것은 황허강 상류, 즉 북방민족이 살고 있는 황토고원에 가뭄이 들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역대 왕조는 황허의 흐름에 늘 신경을 기울이며 홍수와 가뭄에 대해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연구자들은 중국 역대 왕조의 문헌을 샅샅이 뒤져 기원전 220년부터 1839년까지 약 2060년 동안의 황허강 유역 강수량의 변화를 밝혀낸 끝에 황허강에 ‘홍수가 잦을 때 북방민족의 침입이 줄어들며 반대로 황허강이 가물 때마다 북방민족이 국경을 침범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현실화된 가장 대표적인 시기가 12세기다. 북방 초원지대와 맞닿은 청해고원의 나이테를 조사해보면, 당시 수십 년에 이르는 긴 가뭄이 발생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수호지’를 비롯한 여러 소설에서는 당시 북송의 지도자들이 부패하고 어리석어 멸망을 자초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역사의 흥망은 다양한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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