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함께하는 시간] 초연결 사회를 사는 식물들

입력 2020-06-1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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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일 신구대학교식물원 원장·신구대학교 원예디자인과 교수

지금 우리는 여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상황을 겪고 있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지혜를 모으고 협력하여 조마조마하지만 슬기롭게 헤쳐나가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훌륭한 전통에 기반한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갖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 상황을 계기로 삶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거나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주변을 보면 패러다임의 변화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초연결 사회’라고 정의되는 새로운 삶의 방식입니다. 일상생활에 정보 기술이 깊숙이 들어오면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기기, 기기와 기기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사회입니다. 센서 기술과 데이터 처리 기술 발달을 기반으로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많은 데이터들이 수집되고 분석되며, 스마트폰을 통해 개인을 둘러싼 네트워크가 점점 더 촘촘해졌습니다. 초연결 사회의 도래는 사람들의 삶에 많은 편의와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였지만, 사생활 보호와 새로운 윤리, 질서 규범 정립 등과 같이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야 할 숙제도 함께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인간 사회에 도래한 ‘초연결 사회’가 놀랍게도 식물 사회에서는 이미 오랫동안 발전되어 왔다는 사실이 최근 연구들을 통해서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인간 사회가 ‘인터넷’을 기반으로 초연결 사회로 발전하게 되었다면 식물은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을까요. 식물들의 인터넷 망은 바로 땅속의 미미한 존재인 곰팡이입니다. 우리가 곰팡이에서 가장 친숙한 부분은 버섯이지만 사실 곰팡이 몸의 대부분은 균사체로 알려진 얇은 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균사체가 일종의 지하 인터넷 역할을 하며 서로 다른 여러 식물의 뿌리를 연결한다는 것이 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습니다.

곰팡이 전문가 폴 스타메츠(Paul Stamets)는 이 균사체를 “지구의 자연 인터넷”이라고 불렀는데, 그 이전에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의 수잔 시머드(Suzanne Simard)가 그 첫 번째 증거를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미송과 자작나무가 균사체를 통해 서로 간에 탄소를 주고받을 수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또 다른 과학자들은 식물이 같은 경로를 통해 질소와 인과 같은 물질을 교환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식물들이 균사체를 통해 물질만을 주고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습니다. 중국 광저우에 있는 사우스 차이나 농과 대학의 정런선(Zeng Ren Sen)은 식물이 해로운 물질에 접촉하였을 때 균사체를 통해 주변에 경고하는 화학 신호를 방출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균사체의 연결을 통하여 식물들이 양분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병에 걸린 다른 식물로부터 정보를 전달받아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영국 애버딘 대학(the University of Aberdeen)의 데이비드 존슨(David Johnson)과 그의 동료들은 콩도 임박한 위협에 곰팡이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진딧물이 외부의 위협 요인이었는데, “식물들 사이에서 진딧물에 의한 피해에 대해 어떤 형태의 신호가 활성화되고 있으며, 그 신호는 균사체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인간 사회의 인터넷과 마찬가지로 곰팡이 인터넷도 부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일부 식물은 이 연결망을 사용하여 다른 식물로부터 양분을 훔치기도 합니다. 유령난과 같이 엽록소가 없어 광합성을 하지 못하는 식물 중 일부는 연결된 곰팡이 균사를 통해 근처 다른 식물에서 필요한 양분을 얻습니다. 또 흑호두나무와 같은 식물들은 인터넷을 통해 독소를 퍼뜨려 다른 식물들이 주변에서 잘 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곰팡이 인터넷은 생태학의 위대한 교훈 중 하나를 보여줍니다. 겉으로는 별개로 보이는 생명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의존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 인간의 초연결 사회와 마찬가지로 식물도 곰팡이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를 도와주거나 혹은 서로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팬데믹 상황을 경험하면서 전 세계 인류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생각해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연결된 서로에게 도움을 줄 것인가, 아니면 해가 될 것인가 우리 스스로가 좀 더 생각하고 선택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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