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춘욱의 전쟁을 바꾼 경제 이야기] 3. 임진왜란 초반 조선군이 밀린 까닭은

입력 2020-06-03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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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총으로 무장한 일본 군사력의 바탕엔 조선에서 유출된 ‘연은(鉛銀)분리술’이 있었다

1592년 발생한 임진왜란 초반, 조선군은 일본군에 크게 밀렸다. 특히 조선의 정예 북방 기마병이 충주 탄금대에서 무너진 것은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의주까지 피신을 가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조선군이 일본군에 패퇴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많은 연구자는 신립(申砬) 장군이 방어에 유리한 산악지형인 조령(鳥嶺, 문경새재)을 버리고 탄금대 일대의 평지에서 전투를 벌인 것이 결정적 패인이라고 지적하곤 한다. 그러나 신립은 여진족과 맞서 싸운 조선 최고의 명장으로, 그가 거느린 병사들은 대부분 기병이었다. 따라서 그가 기병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평지를 전쟁터로 고른 것을 무조건 실책으로 몰아세우기 어려운 면이 있다.

당시 프랑스보다도 조총 수 많아

그럼, 무엇 때문에 조선군이 초반에 그렇게 밀렸을까? 여러 요인이 거론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군이 신무기(조총, 鳥銃)로 무장돼 있던 점일 것이다. 1592년 당시 일본군이 무장한 조총의 수가 프랑스보다 많을 정도로 보급됐을 뿐만 아니라 이미 ‘군사혁명’이 진행 중이었다. 1575년 일본의 패권을 노리던 최대의 세력이었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그에게 적대하는 세력의 우두머리인 다케다 가쓰요리(武田勝頼)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세력권인 나가시노(長篠) 성을 공격하자, 이를 돕기 위해 출정함으로써 유명한 ‘나가시노 전투’가 벌어졌다.

당시 오다·도쿠가와 연합세력은 나가시노 성 외곽의 벌판에 미리 도착해 울타리를 설치하고 조총 1000정(일설에는 3000정)을 준비해 다케다의 기마대에 맞섰다. 숫자는 연합세력이 우위에 있었지만, 잘 훈련된 기마병의 무력을 믿은 다케다 가문이 정면 승부에 나섬으로써 역사적인 회전이 성립됐다. 5월 21일 이른 아침에서 시작돼 오후까지 이어진 나가시노 전투에서, 조총부대는 기마대를 거의 전멸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최근 연구에서는 나가시노 전투를 통해 세력의 판도가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지만, 유럽과 마찬가지로 조총 부대가 기마대를 대신해 전장의 주축이 될 것임을 보여준 사건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조총은 장전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특히 비가 오는 경우에 거의 쓸모가 없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전국시대 최강의 다케다 기마병이 무너진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이 바로 ‘3단 쏘기’였다. 오다 노부나가는 사수를 3열로 배치해 사격과 장전을 교대로 행함으로써, 사격 간의 시차를 줄여 다케다 기병부대에 끊임없는 타격을 가했던 것이다. 물론 이는 후세의 추측일 뿐, 당시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대량의 조총을 동원해 이를 중심으로 편제하고 또 집중사격 방식을 고안한 것만으로도 군사사에 한 획을 그은 획기적인 발전이라 할 수 있다.

▲1475년 나가시노 전투를 묘사한 그림. 조총으로 무장한 오다·도쿠가와 연합세력은 이 전투에서 다케다의 기마대를 전멸시켰다.  사진출처 사무라이월드닷컴
▲1475년 나가시노 전투를 묘사한 그림. 조총으로 무장한 오다·도쿠가와 연합세력은 이 전투에서 다케다의 기마대를 전멸시켰다. 사진출처 사무라이월드닷컴

조총 두 자루를 銀 2000냥에 사

그럼에도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조선을 침공한 일본군은 어떻게 조총을 습득하게 됐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당시 동아시아 해양의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1543년, 일본 규슈(九州) 남쪽 끝에 있는 다네가시마(種子島) 해안에 한 척의 배가 표류했는데, 이 배에는 100명이 넘는 중국인뿐만 아니라 붉은 피부와 곱슬머리의 해괴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1492년 콜럼버스의 역사적인 항해 이후, 이른바 ‘대항해시대’가 열리며 포르투갈 사람들이 동아시아에 도착했던 것이다. 이들은 곧 섬을 다스리고 있던 다네가시마 도키타카(種子島時堯)에게 불려 갔는데, 그는 이방인들이 가져온 길쭉한 막대 같은 물건에 큰 관심을 보였다. 당시 포르투갈 사람들은 조총 두 자루를 도키다카에게 은 2000냥을 받고 팔았는데, 당시 10냥이면 병사 한 명의 1년치 봉록이니 2000냥이면 200명의 군대를 1년간 유지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이 돈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일본은 은광석이 풍부하지만, 제련 기술의 부족으로 은의 생산이 풍족한 나라가 아니었다. 그러던 일본이 16세기 중반부터 갑자기 세계적인 은 생산국가가 됐다. 일본이 갑자기 은 생산대국이 된 것은 조선의 기술을 습득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의 김감불(金甘佛)과 김검동(金儉同)을 비롯한 일련의 사람들이 ‘납(鉛鐵) 한 근으로 은 두 돈을 만드는 기술’, 즉 연은분리술(鉛銀分離術)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당시 조선에서 혁신적인 금속 재련술이 개발된 이유는 중국과의 교역이 활성화됐기 때문이다. 비단을 비롯한 중국산 사치품에 대한 수요는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기에, 중국과의 교역에 사용할 수 있는 국제화폐 즉 은에 대한 수요가 혁신을 자극했던 것이다.

은광 개발 한발 앞섰던 조선의 쇠퇴

그러나 중종반정 이후 은광 개발 붐은 소멸됐다. 왜냐하면, 반정세력이 연산군 때에 벌어진 일체의 혼란을 일소하고 싶었던 데다 당시 은 부족에 시달리고 있던 중국의 명나라가 조선에 은을 요구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특히 농업국가로서의 면모를 중시하고 있었기에, 은을 계속 생산해 다른 나라와 교역을 하면 나라의 근본이 무너질 수 있다는 주장도 은광 채굴을 중단시킨 요인의 하나로 거론된다.

이렇듯 세상이 바뀌자, 은 생산 기술자들은 살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당시 종4품 판관 벼슬을 하고 있던 유서종(柳緖宗)이 부산의 일본인에게 연은분리법 기술을 유출한 것이다. 그는 부산에 부임하기 이전에 의주판관으로 재직했는데, 이때 명나라와 국경을 맞댄 상업도시 의주에서 은광 개발 등에 대한 노하우를 습득했다. 물론 조선 정부를 유성종을 벌했지만 그 수많은 기술자를 모두 감시할 수 없어, 결국 일본은 신기술을 광산 개발에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일본 시마네(島根) 현에 있는 이와미 은광(石見銀山)은 세계적인 은광 유적으로, 200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바 있다. 기록에 따르면 1526년 하카타(博多)의 상인 가미야 히사사다(神谷久貞)가 본격적으로 개발됐고, 조선에서 경수(慶壽)와 종단(宗丹)이라는 두 기술자를 초청해 연은분리법을 습득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은광 개발 붐은 비단 이와미 은광에 그치지 않았다. 물론 워낙 오래전 일이기에, 일본에서 얼마나 많은 은이 생산됐는지 정확하게 측정할 방법은 없다. 다만 16세기 말 이쿠노(生野) 은광(현재의 효고 현)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 보낸 은의 양이 1만 킬로그램에 이른다는 기록, 그리고 광산의 연 생산량이 6만~9만 킬로그램 사이로 추정된다는 주장을 들 수 있다. 특히 각 지역의 자료를 취합한 일본의 역사학자 코바타는 17세기 초 일본의 은 수출이 연 20만 킬로그램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국제 교역망에서 고립, 역사의 교훈

이와 같은 은의 생산은 일본에 또 하나의 군사적인 이점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바로 화약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결정적 원료, 초석을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흑색화약의 배합비율은 초석 12에 유황 12, 그리고 여기에 목탄 2.5의 비율로 구성되는데 일본은 유황은 풍부한 반면 초석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 남부 해안지방에 초석이 풍부하게 생산됐기에, 일본에서 생산된 은을 이용해 초석을 구매함으로써 강력한 조총부대를 육성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 초반, 조선 육군이 연이은 패전을 기록한 것은 오랜 기간 지속된 평화로 훈련이 제대로 안 돼 있었던 탓도 있지만 경제적인 부분만 보면 ‘은’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인 교역망에서 고립돼 신무기를 습득할 기회를 아예 얻지 못했던 점 역시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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