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속으로] 배당, 기업지배구조의 마지막 에지

입력 2020-06-03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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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장

한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유행했다. 책임자들끼리 협상을 끝내도 세부적인 실무상 이유들이 발목을 잡아 결국 큰 틀이 망가진다는 뜻이다.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위대한 예술가는 마지막 터치까지 섬세하게 다듬어 작품 전체를 온전하게 한다. 과거 필자가 그룹 CI를 개편할 때도, 수첩 디자인의 마침표는 종이 재질이나 겉표지의 ‘촉감’이었고 실내 인테리어의 마지막 에지는 ‘향기’였다. 과연 ‘천사도 디테일에 있다’.

기업지배구조에서 사소해 보이지만 그 디테일이 발목 잡으면서 회사의 신뢰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마지막 에지가 있다면 무엇일까. 필자는 단연 배당을 꼽는다. 이익이나 주가처럼 직접 표면적으로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배당을 통해 현재 지배주주의 상황과 마인드뿐 아니라 회사의 재무적 건전성, 성장성까지 리트머스 용지처럼 드러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성에 비해 인식은 아직 어두운 게 현실이다. 많은 업계 전문가나 교수들조차 “솔직히 배당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주식 투자자는 결국 주가 아니냐?”라고 말할 땐 자본시장에 몸담았고 현재 지배구조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매우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배당은 단기 vs 장기, 지배주주 vs 일반 주주, 정보 투명성, 주주 수익률과 자본시장 전체 등 어느 곳에서 어떤 렌즈로 보느냐에 따라 그 특성과 가치판단이 카멜레온처럼 달라진다. 반대로, 기업의 재무론뿐 아니라 기업지배구조와 자본시장 전체의 문제까지 통합된 내공을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것도 단연 배당 이슈다. 관점에 따라 정답이 없는 문제인 만큼, 알면 알수록 참으로 어려우면서도 신묘하고, 그 효과에 이르러서는 많은 문제의 돌파구를 열어주는 만큼, 경이롭고 아름답기까지 한 것이 바로 배당이다.

먼저 배당의 장기 효과를 보자. 로버트 실러의 분석에 따르면 1920년부터 2020년까지 100년 동안 주식시장이 절반 이상 폭락한 경우는 5차례였지만, 배당금이 50% 이상 감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 주식시장이 80% 이상 급락했을 때에도 배당금은 47% 감소했고, 2000년대 닷컴 버블과 금융위기 시 주식시장이 반토막이 났을 때도 실질 배당금은 각각 12%, 25% 감소하는 데 그쳤다. 많은 주식시장 참여자들이 배당을 주가와 별개로 생각한다. 사무엘 하츠마크 교수의 지적대로 ‘공짜 배당금의 오류’(Free Dividend Fallacy)가 바로 이것이다. 지난 5년간 코카콜라의 평균 배당성장률이 약 4.9%에 이르듯 초우량기업들의 배당금이 매년 성장하고, 배당금 재투자라는 ‘복리효과’까지 생각하면 배당은 장기 투자자들에게 어마어마한 차이를 낳는다.

배당은 지배구조와도 밀접하다. ‘경영 효율성’ 차원에서 배당은 고도의 경영행위이므로 회사 자율에 맡기는 게 온당할지 모른다. 수익성이 높은 투자안은 회사 내부의 경영진이 가장 잘 안다. ‘시장이 효율적’이라면 이러한 효과는 주가에 그대로 반영되고, 투자자도 배당이 필요한 만큼 주식을 매각하면 되므로 배당정책이 불필요할 수도 있다(MM이론, Modigliani & Miller, 1961). 하지만 현실적으로 잉여 현금이 많으면 경영진이 수익성이 낮은 곳에 투자하거나 직간접적으로 사적 이익을 위해 사용될 가능성을 막을 방법이 없다. 이때 배당으로 ‘대리인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Easterbrook, 1984). 실제 알짜 상장회사의 이익이 될 것을 친족 지분이 많은 다른 계열사에 몰아주든지(터널링), 우선 지배주주 지분이 많은 지주회사에 로열티 등으로 넘긴 후에야 배당하는 사례는 지금도 많다. 이 경우, 상장사가 바로 배당을 하면 일반 주주들과 공평히 과실을 공유할 수 있다. 주주의 당연한 권리이므로, 효율성 이전에 공정성의 문제다.

배당은 정보면에서 열위에 있을 수밖에 없는 주주들에게 일종의 시그널을 주는 효과도 있다(배당신호이론, Bhattacharya, 1979). 배당을 인상하는 기업은 재무안정성과 더불어 앞으로도 이익이 증가할 수 있다는 신호를 암시한다는 것이다. 배당은 안정적이어야 하고 이익 증감에 따라 바로 변화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다. 애플은 8년 연속 배당을 늘렸고, 최근 5년간 연평균 8%의 배당 성장성을 보였다. 버핏이 코카콜라에서 이룬 ‘배당수익률의 마법’처럼, 장기 투자 시 배당수익률은 저절로 급격히 상승한다. 분모인 ‘주식 취득가는 고정’되어 있는데, 분자인 ‘배당금은 매년 증가’하기 때문이다. 2019년 말 기준 버크셔해서웨이의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애플 비중이 35.44%로 단연 1위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애플은 엄청난 배당주였다. 주가 상승은 덤이다.

배당수익률의 마법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주가 폭락장에서는 주가를 탄탄히 지지해 준다. 분자인 배당금이 안정적인 상태에서 분모인 주가가 확 떨어져서 배당수익률이 폭등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코로나 사태로 시장이 모든 주식을 내던질 때, 경기변동을 타지 않고 60여 년간 배당금을 늘려온 코카콜라 주식을 사두면 보유하는 내내 엄청난 수익률을 누릴 수 있다. 이익이 오르면 주가가 오르고 배당은 덩달아 오른다.

선진국들은 시장 전체에 대해서도 이런 특성을 지혜롭게 활용한다. 배당 증가를 통해 자본시장의 변동성을 줄이고 주가의 하방경직성을 만드는 방식이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후 5년이 지난 국가들의 공통적 효과로 배당성향이 늘어났다. 네덜란드의 배당성향은 55%에서 69%로, 영국은 69%에서 75%로, 캐나다는 48%에서 73%로 각각 증가했다. 투자자로서 기업에 가장 쉽게 요구할 수 있는 주주권 활동도 역시 배당이다.

한국에서 배당의 활용성과 효과는 엄청나게 평가절하되어 있다. 배당은 개별 기업의 투자자뿐 아니라 자본시장과 경제 발전을 위해 모두가 주시해야 할 지배구조의 소중하고도 탁월한 에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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