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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관점' 내던진 여성연합, 도 넘은 이용수 할머니 비난에도 '침묵'

입력 2020-05-27 17:03

친여 커뮤니티 네티즌 "할머니, 세뇌당한 듯"

(뉴시스)
(뉴시스)

'메시지를 반박할 수 없으면 메신저를 공격하라.'

정치권에서 격언처럼 여기는 말이다.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의 말을 반박할 수 없을 때, 메신저의 약점이나 치부를 건드려 신뢰를 떨어뜨리는 방식이다. 신뢰를 잃은 메신저가 쏟아내는 주장은 자연스레 힘을 잃는다.

이용수 할머니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후원금을 피해자에게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성노예'라는 단어가 싫지만, 정의연이 지금껏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할머니는 윤미향 국회의원 당선인을 강하게 비판했다. 피해자를 이용해 돈을 모금했고, 국회의원 비례대표가 됐다면서 사리사욕을 챙긴다고 했다. 이후 정의연의 기부금·지원금 회계 부정 의혹과 안성 쉼터 고가 매입 의혹, 윤미향 당선인 개인계좌로 모금된 기부금 문제 등이 터져 나왔다.

윤미향 당선인이 코너로 몰리자 일부 친여권 인터넷 커뮤니티는 '위안부 피해자'인 할머니를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여기에 방송인 김어준 씨는 '배후설'을 제기하며 진정성에 의문을 던졌고, 성폭력 문제에 있어 '피해자 관점'을 주장하던 여성단체는 할머니가 아닌 정의연을 옹호하는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친여권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출처=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친여권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출처=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세뇌당한 듯"…할머니를 향한 공격·조롱하는 댓글도

25일 진행된 이용수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일부 친여권 커뮤니티에서 할머니를 비난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네티즌들은 "특별대우를 바라는 것이냐. 저쪽 진영(보수) 애들 이야기에 세뇌되신 것 같다"라거나 "늙으니 서운한 것이 많은가 보다", "기자회견 보니 윤미향 씨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겠다"라는 글을 다수 올렸다. 특히, 빨래 사진을 올리며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를 조롱하는 댓글도 발견됐다.

방송인 김어준 씨가 배후설을 제기하자 친여권 커뮤니티는 크게 동조했다. 김어준 씨는 "기자회견문을 읽어 보면 이용수 할머니가 쓰신 게 아닌 게 명백해 보인다. 누군가 왜곡에 관여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친여권 커뮤니티 네티즌들은 "기자회견 전날 밤 7~8명이 모여 회견문을 작성했다는데 그게 배후 아니고 뭐냐"라면서 "언론은 왜 할머니 주위 사람들에 대한 보도는 왜 안 하느냐. 김어준 공장장님 감사하다"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서울의 한 대학교 사회학과 김모 교수는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피해자를 이렇게 비난할 수 있는지 놀랍다"고 말했다. 그는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를 향한 비난은 내부 고발을 더욱 어렵게 만들 여지가 있다"라며 "우리 사회가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지 않았느냐. 정의연 회계처리, 윤미향 당선인의 개인계좌 모금과 부동산 매입 등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할 사안이 많다"고 말했다. 자칫, 맹목적 비난은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성노예'라는 단어가 싫다는 이용수 할머니의 주장에도 정의연은 '일본군성노예제'라는 말을 쓰고 있다. (출처=정의연 홈페이지 캡처)
▲'성노예'라는 단어가 싫다는 이용수 할머니의 주장에도 정의연은 '일본군성노예제'라는 말을 쓰고 있다. (출처=정의연 홈페이지 캡처)

◇'성노예' 싫다는 할머니…여성계 "'피해자 관점' 중요"

이용수 할머니는 '성노예'라는 표현에 불쾌감을 나타냈다. 이용수 할머니는 "성노예라는 단어 싫은데 왜 자꾸 사용하냐고 하니, (정의연 측에서) '그래야 미국이 무서워한다'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정의연은 "성노예는 위안부 피해 실상을 가장 잘 표현하는 개념"이라는 입장이다.

문제는 성폭력 문제에 있어 '피해자 관점'을 주장한 여성계의 기류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여성계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넘어 '피해자 관점'으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피해자의 요구를 전적으로 실현', '적극적으로 지지 지원'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피해자의 주관적 감정에 지나치게 독점적 권위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오용됐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에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는 2017년 '공동체 내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 토론회에서 "'피해자 관점'에서 사건을 보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피해자의 고통이 존중되어야 한다. 피해자 관점에서 여성의 주관은 '중요한 증거'로 사용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토론회에 참석한 이소희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도 "피해자가 놓인 고통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서 반(反)성폭력 운동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자에게 주도권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연 옹호하는 여성연합…진중권 "노골적으로 당파적"

여성단체는 침묵을 지킨 채 정의연을 옹호하는 모양새다. 성폭력 피해자인 할머니를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한 적이 없다. 전국 7개 지부, 28개 회원 단체로 구성된 한국여성단체연합(여성연합)은 할머니의 1차 기자회견 이후 "국내 최초의 미투 운동이었던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분열시키고 훼손하려는 움직임에 강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2차 기자회견 이후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여성연합은 수요집회 주관 단체이며, 김영순 대표는 정의연 이사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는 여성연합의 행태를 비판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과거에도 어느 정도 편파성은 있었지만, 권력을 잡아 이권에 가까워져서 그런지, 요즘은 단체든, 매체든 무슨 충성 경쟁을 하듯이 아주 노골적으로 당파적”이라고 글을 올렸다. 이어 “34개 여성 단체에서 진상도 파악하기 전에 일단 스크럼부터 짜고 집권 여당의 당선자를 옹호한다"고 언급했다.

김 교수는 "성 문제에서 피해자 의견에 공감하고 그것에 맞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기본적인 원칙"이라며 "국제사회에 호소한다는 이유로 할머니의 의견을 배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친여권 인사인 윤미향 당선인이 공격당한다고 해서 여성단체가 정의연을 옹호한다면 성폭력 피해자와 여성을 위한다는 존재 이유를 스스로 져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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