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지금] 코로나가 부른 G제로 시대, 존재감 없는 유럽

입력 2020-04-28 17:52 수정 2020-04-28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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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억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팟캐스팅 안쌤의유로톡 운영자

“중국 바이러스다.” “미국에서 바이러스가 전파되었다.”

미국과 중국이 코로나19 발생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며 자주 내뱉는 발언이다. 가짜뉴스가 아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늦장 대응으로 수만 명의 사망자를 낳았다는 폭풍 비판을 모면하기 위해 계속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국 바이러스임을 강조한다. 반면에 중국은 외무부에서 공식적으로 미국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퍼트렸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양국의 말 전쟁은 그칠 줄 모르고 강도도 더해진다.

2017년 1월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은 급강하했다. 이번 코로나19로 세계 최강국 미국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세계 사망자의 25% 정도인 5만 명이 훨씬 넘는 시민들이 숨졌지만 미국의 의료체계는 이들을 치료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국내에서 코로나19를 대처하지 못하는데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할 리가 만무하다. 미국 우선정책과 보호무역을 내세우며 스스로 리더십의 지위를 포기해오던 터라 이번 세계적 바이러스 대유행에서 미국의 행보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반면에 중국은 코로나19 대처에서 초기 대응에 실패했고 투명성이 매우 부족했다. 공개된 자료조차 신뢰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탈리아나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 의료품을 제공하지만 책임 있는 강대국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단지 공산주의 독재국가가 신속하게 코로나19에 대처했기에 미국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보다 뛰어나다는 프레임 뒤집기용 대외 선전에 열을 올린다.

코로나19는 쇠락 중인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팍스 아메리카나)에 가속 페달을 밟아주고 있다. 1991년 냉전이 붕괴 중일 때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찰스 크래우트해머는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등극했다며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단 그는 미국에서 큰 위기가 발발한다면 팍스 아메리카나가 더 빨리 붕괴될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2008년 9월 15일은 미국에서 경제위기 도화선이 댕겨진 날이다, 미국 4위의 글로벌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이날 도산했다. 금융위기가 실물 경제로 옮겨가면서 미국발 세계 경제위기가 발발했다. 기축통화 달러를 보유하며 첨단 금융자본주의를 달리던 미국에서 설마 경제위기가 발생할까라는 일말의 바람이 송두리째 파괴됐다. 이 위기의 진앙지가 된 미국을 리더로 보는 시각은 줄어든 반면에 중국은 급부상했다. 당시 세계 경제위기에서 중국은 구원투수 역할을 수행했다. 두둑한 외환보유액을 비축했던 중국은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실행해 세계 경제의 위기 탈출에 기여했다.

이번에 터진 세계적 바이러스 대유행은 미국과 중국이 말로만 외쳤던 신형 대국관계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강대국들이 패권경쟁을 벌이기보다 서로 협력해 위기를 극복하는 데 모범을 보여줄 수 있고 위기 극복에 동참하는 주요국과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 이처럼 국제공조가 이루어진다면 위기 극복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정반대의 상황이 전개된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를 비난하면서 국제공조와 협력은 점점 멀어진다.

유라시아그룹의 이언 브레머 회장은 2012년 앞으로 ‘G제로 시대’가 온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중국의 G2가 아니라 국제무대에서 지도력이 없는 시대가 온다고 내다봤다. 최근 그는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G제로 상황에서 겪는 최초의 글로벌 위기”라며 이번 위기를 우려했다.

세계적 바이러스 대유행 앞에서 ‘유럽’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이 코로나19로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그래도 자유무역과 다자주의 질서 유지에 안간힘을 쓰던 유럽연합(EU)의 모습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일부에서는 EU가 야심차게 추진해온 기후위기 대응정책 ‘그린딜’조차 실행이 어렵지 않겠냐는 관측을 하기도 한다.

EU는 계속해서 이번 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공조를 외치지만 미국과 중국은 제 코가 석 자여서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서로 싸우기에 바쁘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침체가 예상되는 이번 위기에서 불황이 깊고 오래 지속될수록 혼란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보호무역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 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은 미국이 주도하던 팍스 아메리카나 질서 쇠락을 촉진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큰 격변기에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에게는 자유무역 질서 유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같은 정책 목표를 지닌 EU와 같은 지역블록 및 국가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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