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넘어 ‘점프 코리아’③]“성차별 호소에 ‘군대나 가라’ 논점 벗어난 대결은 그만”

입력 2020-01-06 06:00 수정 2020-01-0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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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서 불안감 얘기하는데 병역문제로 갈등 확산 옳지 않아

“젠더 갈등 때문에 남성들이 밤길을 두려워하나요, 원룸 주거지에서 불안한가요, 공중 화장실 불법 촬영을 염려하나요, 회식 자리 성추행에 화가 나나요, 아님 사이버 성폭력에 부당함을 느끼나요?” 남성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젠더 갈등’은 프레임일 뿐 실재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할 때 한 말들이다.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남성 혐오 온라인 커뮤니티의 남성 비하 발언을 마치 전체 여성 혹은 모든 페미니스트의 주요 발언인 양 ‘젠더 전쟁’이니 ‘젠더 갈등’으로 몰아가는 언론의 보도 방식에 문제 제기하고 싶어서였다. “그렇군요, 정말 그렇네요”를 연발하던 그는 그러나 나의 말을 기사로 쓰지는 않았다. 엄청난 인터넷 댓글이 버거워서였을 거라 짐작했고,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페미니즘이 제도화된 1970년대 이전부터 반세기 넘게 한국 사회에서 호주제를 비롯, 사회와 제도의 불공정한 여러 문제를 공론화해 온 여성주의 운동가와 학자들의 발언은 무게 있게 다루지 않던 언론이 몇 년 전 구성된 그 소수 특정 그룹의 발언은 확성기를 단 듯 과장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보도한다. 그래서 ‘젠더 갈등’이라는 웃지 못할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한국과 일본 간 이견이 최근에야 ‘갈등’으로 성립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양측의 대등한 힘과 서로에게 미치는 비슷한 수준의 존재감이 있다. 한국 입장에서 보자면 1960~1970년대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마찬가지로 여성과 남성 사이에 ‘갈등’이 성립하려면 주요 의제에 대한 의사결정권이나 서로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엇비슷한 수준은 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 상황이 어디 그런가. 여성들은 지위고하 ·연령에 상관없이 일상적 수준에서 불안함과 부당함을 느낀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패키지처럼 따라오는 문제 제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남성들의 ‘병역’이다. 이 문제 제기는 ‘집, 학교에서 부당하게 맞고 군대 가서 또 맞고 군복무 때문에 학업과 취업이 지연됐고 그런데도 ‘여성 우대’ 정책으로 승진에서 밀렸다. 그래서 남자도 억울하다’로 전개된다. 남성들과 달리 여성들은 일상의 거의 모든 공간이 적지 않은 가해 남성 때문에 안전하지 않다고, 그래서 한국 사회가 성평등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데 “억울하면 군대 갔다 와라”는 주문은 동문서답치고도 매우 생뚱맞다.

‘부당한 군 경험’은 인권 관점으로 고쳐야 할 제도의 문제이자 한국 남성 문화가 풀어야 할 숙제이지 일상적 불안함과 부당함을 호소하는 여성들도 경험해야 할 일은 아니다. 비민주적 군 경험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몫이지 여성 일반이 감당해야 할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게다가 (성평등을 말하려거든) “여자도 군대에 가라”는 주장은 여군들이 군에서 당하는 성폭행과 성차별을 설명하지 못한다.

사실 비민주적 군대에 대해 가장 많은 문제 제기를 한 학자군은 페미니스트이다. 검색창에 필자의 이름만 넣어도 군사주의에 대해 분석하고 비판한 논문들이 여럿 검색된다. 이렇듯 최근 훨씬 높아진 군 인권 감수성에는 페미니스트들이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여성들의 성평등 문제 제기는 결국 민주주의에 기초한 일상 회복에 관한 것이고, 그렇게 회복되는 일상은 분명 군대 내 인권 문제 해결에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 또 누가 알겠는가. 한국 군대가 성별 불문, 생애주기 일정 기간 시민성, 리더십, 애국심 등을 배우러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조직이 될지.

예를 들어 여성 가해자의 성폭력 때문에 남성들도 밤길이 두렵고 공중 화장실이 불안하고 회식 자리가 꺼려진다면, 그래서 남성들의 일상도 불편부당하다면, 젠더 갈등은 프레임이 아니라 실재하는 거다. 특정 페미니즘 표방 그룹 말고 오랜 역사를 가진 페미니스트 활동가와 학자들의 이론, 상식을 가진 다수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면 “여자도 군대에 가라”는 주장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일상과 군대 내 민주주의 확산에 힘써 온 페미니스트 그룹의 도움을 받아 지금까지처럼 군 문제는 군 문제대로 해결하고 ‘젠더 갈등’이라는 프레임은 걷자. 처음부터 불가능한 개념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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