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의 통계로 경제읽기] 시장경제와 독과점

입력 2020-01-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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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박사, 전 통계개발원장

시장경제체제에서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경제주체가 스스로의 이익을 좇는 과정, 이것을 다른 말로 경쟁(competition)이라 표현할 수 있다. 경쟁이란 경제주체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나아지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기업은 스스로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기업들에 비해 더 좋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싼 값에 공급하려 하며, 소비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더 싸고 더 좋은 품질의 상품을 선택하게 된다. 이러한 기업과 소비자들의 이기적 행동이 바로 경쟁이며, 경쟁은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기본질서로서 경쟁이 없는 시장경제는 더 이상 존재가치를 상실한다.

시장경제체제 하에서 경제적 효율성은 시장에서 경쟁이 얼마나 활발하게 이루어지는가에 의존한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의 위원장이었던 퍼츠슈크(M. Pertschuk)는 1973년 미국상원 ‘반트러스트 및 독점 소위원회’에서 “독점화된 경제는 사회주의보다 더 나쁘다. 국가는 최소한 윤리의식이라도 갖고 있지만, 독점화된 사기업은 그것마저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증언한 바 있다.

그러면 시장경제체제 하에서 어떻게 하면 경쟁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할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시장에 많은 수의 경쟁자가 존재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식당, 주유소, 동네슈퍼, 전자상거래 등과 같은 수많은 경쟁자로 이루어진 많은 시장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에서는 가격이 높거나 품질이 낮으면 소비자들이 찾지 않기 때문에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사업자들이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싼 가격과 좋은 품질의 제품을 공급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또 시장에 소수의 사업자만이 존재하는 수많은 독과점적 시장 역시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TV 등 가전제품, 핸드폰, 자동차, 맥주 등 많은 상품시장에는 소수의 사업자들이 독과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시장구조가 독과점인 시장은 아무래도 기업 간 경쟁이 약하고, 그로 인해 높은 가격, 저품질이 상품이 공급되기 쉽다. 우리나라는 미국에 많은 가전제품이나 자동차를 수출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상품을 우리나라에서 구입하는 경우보다 미국에서 구입하는 것이 훨씬 싼 경우가 적지 않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미국시장이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경쟁적이라는 것이 큰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독과점적인 시장에서는 시장환경이나 시장에 임하는 기업들의 행동방식에 따라 경쟁이 활발해질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정부는 국민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고 소비자이익을 확대하기 위하여 항상 시장에서 활발한 경쟁이 일어나도록 하여야 하며,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는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정부의 기본적인 임무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경제전반에 걸쳐 경쟁도를 높이려는 정책을 일반적으로 ‘경쟁정책’이라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공정거래정책’이라 한다. 미국에서는 이를 ‘반트러스트 정책’, 일본에서는 ‘독점금지정책’, 중국에서는 ‘반농단정책(=반독점정책)’이라 하는데, 명칭은 국가마다 다르지만 추진하는 정책의 내용은 유사하다.

공정거래정책이 수행하는 기능은 첫째, 시장이 가능한 한 경쟁적인 구조로 유지되도록 함과 동시에 기업결합이나 담합 등을 통해 시장이 인위적으로 독과점화되는 것을 방지하며, 둘째, 이미 독과점화 되어 있는 시장에서는 독과점기업이 시장지배력을 함부로 남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경쟁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장구조가 경쟁적이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정부가 기업간 경쟁을 억제하는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광업 및 제조업부문은 약 500개 정도의 업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업종에서 상위 3사의 출하액 집중률(CR3)는 2017년 현재 평균 44.1%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으로부터 근 40년 전인 1980년에는 상위 3사 평균집중률이 62.4% 정도로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이후 산업발전에 따라 기업 수가 크게 늘어나 시장구조도 점차 경쟁화되면서 2000년 무렵까지 상위 3사 평균집중률이 거의 20%포인트 가까이 낮아졌다. 그렇지만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산업집중률이 크게 변하지 않으면서 45% 정도로 일정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광업 및 제조업 부문은 약 2200개 정도의 세부 품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7년 현재 이들을 시장구조 유형별로 보면 독점형 시장(상위 1위사의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인 품목)이 전체 품목의 32.0%를 차지하고 있으며, 고위과점형 시장(상위 3사의 시장점유율이 75% 이상인 품목)이 13.3%를 차지하고 있어, 광업 및 제조업 부문 전체의 약 절반에 해당되는 품목이 독과점적인 시장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비스업에 비해 특히 제조업 부문은 규모의 경제, 새로운 기업의 진입의 어려움 등으로 시장구조가 어느 정도 독과점화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이러한 독과점적인 시장에서는 기업의 반경쟁적 시장행동으로 인하여 국민경제의 효율성이 저하되고, 소비자 이익이 침해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시장구조를 경쟁화하는 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에 비록 독과점적인 시장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경쟁적인 동인을 항상 유지시켜 나가야 할지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중요한 역할이라 할 것이다.

최근 배달앱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배달의민족과 요기요의 기업결합이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고위 과점적인 배달앱 시장에서 이들 기업 간의 기업결합은 사실상 시장의 독점화를 의미한다. 벌써 독점기업의 출현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많은 소비자들과 소상공인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공정거래법상 독점적 기업결합을 예외적으로 허용해 줄 수 있는 사유로는 ①(국민경제적)효율성 향상효과와 ②도산의 회피 두 가지 뿐이다. 필자로서는 이번 기업결합이 이 두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데,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사건을 어떻게 판단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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