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부채가 자본으로 변하는 마법

입력 2019-12-0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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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부채+자본. 가장 기초적인 회계 개념을 한눈에 보여주는 등식이다. 절대 불변의 법칙이라면 자본이 부채로, 부채가 자본으로 변하는 ‘마법’은 일어날 수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최근 자본시장에서 불문율을 깨는 사건이 일어났다. 최근 상장을 완료한 한 기업이 기존에 발행한 전환상환우선주(RCPS)의 전환권을 부채로 처리했다가 향후 상장 준비 과정에서 자본으로 재분류했다. 국제회계기준(K-IFRS)에 따르면 RCPS는 불확정적인 전환권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통상 부채로 분류된다. 더욱 의문스러운 것은 금융위원회에서 이를 용인했다는 점이다.

회계업계 관계자들은 금융당국의 이 같은 결정은 8년 전 ‘회제이-00094’로 인한 혼란을 피하기 위한 미봉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회제이-00094’는 특정 상황에서 전환상환우선주 전환권을 자본 처리할 수 있다는 내용이 골자다. 한국회계기준(K-GAAP)에서 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되던 시기에 한 대기업이 상장사협의회의 명의로 질의를 넣었고, 금감원이 비공개로 답하면서 나왔다.

이후 8년간 많은 기업이 이를 근거로 RCPS 등의 금융상품을 자본 처리한 만큼, 금융당국 입장에선 이제 와 문제로 삼으면 큰 혼란이 생길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 측은 기자에게 “상장사 대상으로 내린 회신인 만큼, 비상장사가 이를 원용하는 것에 대해 간섭할 수 없다”라고도 했다. 명백한 책임회피다.

문제는 이 같은 ‘좋은 게 좋다’식 회계처리가 향후 더 큰 파장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이번 사례로 인해 업계에선 코스피, 코스닥, 비상장사 간 복합금융상품 회계처리 기준이 달라 혼란스럽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연하게도 모든 기업이 부채를 줄이고 자본을 늘리고 싶어 하지만, 부채와 자본의 경계가 느슨해지면 기업이 현재 가지고 있는 자산 가치를 명확하게 판정할 수 없게 된다. 시장에서 혼돈이 일어날 것도 너무 자명한 일이다. 일부 기업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회계기준을 훼손한다면, 자본시장 내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된다는 점을 금융당국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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