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語 달쏭思] 정월 대보름 (3)

입력 2019-02-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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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

정월 대보름날 밤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거의 다 밖으로 나와 달구경을 했다. 아이들은 못을 이용하여 표면에 구멍을 뚫은 깡통을 철사 줄에 매달고, 철사 줄의 다른 한쪽 끝에는 막대 손잡이를 달아 불놀이 기구를 만든다. 깡통 안에 짧은 장작을 넣고 불을 붙여 큰 원을 그리며 돌리면 불이 훤히 지펴진다. 이 ‘불 깡통’을 거푸 돌리면서 아이들은 목청껏 ‘망월(望月)이야!’를 외쳤다. 이런 불놀이는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빈 들녘에서 이루어졌다. 추수가 끝난 논들이 온통 불놀이 놀이터가 되는 것이다.

불놀이와 달구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부럼을 깠다. 호두, 잣, 은행 등 견과류를 이로 깨물어 까서 먹는 것이다. 다른 지방에서는 아침부터 부럼을 깐다고 하는데 필자가 살던 시골마을에서는 밤에 모여 앉아 부럼을 까먹었다. 그때 먹었던 호두나 잣의 고소한 맛을 잊을 수 없다. 식품영양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견과류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식물성 지방은 혈관에 쌓인 동물성 지방을 녹이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학자들은 설을 쇠기 위해 장만한 많은 기름진 음식을 며칠을 두고 먹는 동안 몸에 쌓인 동물성 지방을 보름날 저녁에 부럼을 깨어 먹음으로써 다 용해시켰다고 말한다. 조상들의 지혜가 참으로 놀랍다.

부럼을 깨며 식구들끼리 정담을 나누는 사이 달은 어느덧 서쪽으로 기울고 정월 대보름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간간이 아직도 달구경과 불놀이를 즐기는 동네 사람들이 외치는 “망월이야!” 소리를 아스라이 들으면서 우리는 꿈나라로 갔었다.

참 행복했던 추억이다. 물론 한동안은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워서 노적도 제대로 못 먹고 부럼도 까지 못했던 때도 있었지만, 어릴 적 정월 대보름 풍경은 내 머릿속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뚜렷이 남아 있다. 그러나 나보다 약간 젊은 층마저도 이런 아름다운 풍경과 풍습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때의 그 평화와 행복을 어디에서 다시 찾아 느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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