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재벌개혁, 아직도 꿈만 꾸고 있는가

입력 2018-07-30 10:32 수정 2018-07-30 14:44

이진우 산업1부장

최근 경제 위기감이 대두되면서 규제 위주의 대기업 정책이 완화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 피부에 와닿는 그런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목이 쏠렸던 공정거래법 개편안만 해도 그렇다. 공정거래위원회 특별위원회가 29일 공개한 안을 보면, 종전의 규제는 강화됐고, 벤처업계와 대기업이 원했던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은 허용되지 않았다.

대통령을 비롯해 여러 장관이 기업을 찾고 있지만, 기업 이익 중 일부를 다른 곳에 떼어 주는, 다시 말해 기업에 일방적인 투자를 요구하는 기본 틀은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소득 주도 성장’이란 말 대신 ‘포용 성장’이란 표어를 내세웠지만, 어감이 좋게 바뀌었을 뿐 무엇이 현실적으로 다른지는 여전히 아리송하다. 이런 구조에서 기업은 그저 계속 개혁의 대상일 뿐이다.

“재벌 3세의 세습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행되는 무지막지한 일감 몰아주기는 그동안 재벌 기업과 거래하던 수백 개 중소기업의 일감을 끊어 버리고, 수만 명의 생계를 어렵게 만들었다. 재벌가 자녀들의 고상한 취미 생활과 무모한 과시욕은 수천, 수만의 자영업자들을 사지로 몰았다. 재벌가의 끝없는 탐욕이 나라 경제를 죽이고 있다.”

조선 중기 허균의 ‘홍길동전’에 나오는 개혁 격문을 연상케 하는 이 문구는 이동걸 산업은행장의 글이다. 이동걸 회장이 2012년 문재인 당시 후보자의 대선 출정식을 기념한 책 ‘그 남자 문재인’에 담은 글이다.

이 책에는 이동걸 회장뿐 아니라 조국, 한승헌, 박원순 등 이른바 문재인의 싱크탱크 100여 명의 글이 있다. 이동걸 회장은 재벌과의 타협을 미리 예견하고 차단한다. 보수세력과의 차단과 거부가 진정한 경제 개혁이요, 민주화임을 분명히 한다.

“재벌들이 그동안 불법, 탈법, 편법으로 중소기업과 소비자들을 희생시키면서 축적한 모든 기득권을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모두 다 인정해 줄 테니, ‘앞으로는 그런 일을 절대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하더라도 당분간은 좀 양해해 달라고 재벌들에게 조건부 동의를 구걸하는 식의 재벌 개혁,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그 ‘내 꿈’이 진정 내 꿈인지, 아니면 사회 기득권층의 꿈인지 분간이 안 되는 그런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에 속아서는 안 된다.”

이동걸 회장은 순환출자 규제, 금산분리 강화, 공정거래법 엄격 적용, 집단소송제 실시, 일감 몰아주기 처벌, 프랜차이즈 가맹점 보호 및 골목상권 보호 강화 등을 강조했는데, 마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말을 듣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이런 대기업 규제를 통한 부의 평등화 개념은 그대로 정책에 반영되고 있다. 산업은행이 어떤 곳인가. 수많은 기업의 자금줄을 쥔 곳이다.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글도 담겨 있는데,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교수답게 처음부터 끝까지 분배를 강조하고 있다. “재벌 대기업의 나홀로 성장에서 상생과 협력적 성장으로”, “시장 진입 규제로 중소기업 소상공인 보호”, “불공정 하도급 거래 근절과 이익분배제도 개선으로 협력적 성장” 등 그의 주장은 일관성이 있다.

사회 정의와 경제 정의를 동시에 실현하려는 생각은 바람직하다. 우리는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소위 ‘재벌 개혁’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경제는 꿈으로 먹고 살 수만은 없다. 국내 주요 기업의 경쟁 상대는 해외에 있다. 국내만 규제한다고 기업이 개혁되는 게 아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기업의 해외 경쟁력만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기업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면 정부가 그토록 원하는 일자리는 더 줄어들게 된다.

진정한 재벌과 기업 개혁은 현실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현실이 바뀌었으면 그것에 맞게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 그것을 ‘개혁의 후퇴’라고 규정하고 미리 차단한다면 새로운 세상은 열리지 않는다. 국제화 시대에 기업을 조선시대의 못된 벼슬아치나 탐욕적인 양반으로 처음부터 못 박는 것은 지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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