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대목동병원과 ‘무도한 공권력’

입력 2018-03-0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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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독일 TV 화면에 비친 ‘별난 공권력’이 유독 기억에 남아 있다. 1960년대 일본 정계의 한 거물급 인물이 무슨 정치자금 스캔들에 얽혔는지 그의 집을 일본 경시청이 급습해 압수수색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공무 집행요원들이 각기 무거운 종이 박스를 소형 버스에 옮기는 장면이 이어졌다. 얼마 전 일본 여행 중 비슷한 장면을 TV에서 보고 그런 압수수색 관행이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근래 우리 사회의 ‘일상적 그림’이 되어버린 압수수색 장면과 어쩌면 그리도 비슷한지 놀랍고 한편으론 부끄럽기까지 했다. 압수한 자료를 담아 나르는 정형화된 박스까지 말이다. ‘흉내 낼 게 없어서 저런 것을….’ 이런 언짢은 마음도 들었다.

여기서 필자의 마음을 가없이 무겁게 하는 것은 공권력의 집행 행태이다. 재판에서 죄명을 확정 판결받은 것도 아니고 단지 피의자 신분임에도 이미 어떤 결론이 난 듯 공포 분위기에서 공권력을 집행하는 게 다반사이다. 서구 문화권에서 이런 양태(樣態)는 국가 안전을 위협하는 테러범을 수색·체포할 경우가 아니면 쉽게 볼 수 없다.

필자는 그동안 국내 언론에 비치는 공권력의 폭거를 경계하는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그런 가운데 지난해 12월 중순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에서 발생한 불행한 사건과 관련해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을 가눌 수 없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4명의 어린아이가 세상에 나와 엄마 품에 안겨보지도 못한 채 사망했다는 사실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것도 꺼져가는 생명을 지킨다는 마지막 보루(堡壘), NICU에서 집단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사건 발생 몇 주 후, 의료계 동료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대병원 사고’가 화제에 올랐다. 사고 당시 의료진의 간접 진술도 들을 수 있었다. 어떤 설명도 신생아들이 죽음에 이른 결과를 덮을 수는 없기에 이야기를 듣는 내내 참담하고 안타깝기만 했다.

그런데 대화 도중 내가 잘못 들었나 싶을 정도의 공권력 폭거 행태가 드러난 것이다. 남아 있는 12명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의료진이 필사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압수수색대가 몰려왔다고 한다. 공무 집행 요원들이 “손도 씻지 않고 감염 보호 가운도 입지 않은 채 신고 온 구둣발로 NICU에 난입했다”는 것이다. 준(準)무균(無菌) 상태를 유지하여야 할 공간인 곳을 말이다.

게다가 “치명적 감염원으로 작용해 남은 아이들의 건강을 절벽 밑으로 밀어버릴 수도 있는 의료 폐기물을 NICU 바닥에 함부로 쏟아 붓는” 믿기지 않는 행동도 했다고 한다. 실로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는 듯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범과 규칙은 있게 마련이다. 이를 지키지 않은 부하 직원의 비시대적, 비문화적 공무 폭거에 대해 총책임자인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책임을 지고 반성해야 한다. 지겹게 남발되는 구호처럼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그 현장에 투입된 부하 직원들이 지켜야 할 행동 지침이 있는지, 또는 그 지침을 잘 지켰는지 정도는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피의자는 아직 ‘멀쩡한 사람’이지 재판을 거쳐 죄를 선고받은 ‘죄인’이 분명 아니다. 그럼에도 공권력의 행태는 마치 죄인 다루듯 한다. 그런 횡포를 너무 자주 보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번 ‘이대목동병원 압수수색’ 건은 공권력 폭거의 결정체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오래전 독일의 문호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는 두 가지 형태의 평화로운 권력이 있는데, 하나는 법(法)이고 다른 하나는 예(禮)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법을 집행하는 공권력이 ‘평화롭지’ 않은 게 문제라는 생각을 숨길 수 없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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