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영화판, 세상판] 차라리, 할리우드 영화만 같기를

입력 2017-02-0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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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그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해피엔딩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선한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가 크든 작든 결국엔 보상받는 모습을 보여 준다. 설혹 악인이더라도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뒤로 가면 적어도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고, 그래서 자신이 불리한 결론에 다다를지언정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한다. 아니 취하는 척이라도 한다.

사람들은 늘 잘못을 저지르기 마련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받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참회를 해야 하는데, 그 반성의 기초는 자기 잘못에 대한 깨달음에 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영화는 대체로 그러한 내러티브의 구조를 유지한다. 미국인들의 오랜 기독교적 전통에 의하면 그것이야말로 신의 뜻이자 세상의 섭리라고 그들은 믿는다.

그런 오랜 ‘주의(主義)’가 영화에 DNA처럼 배어 있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는 그래서 일정한 이념적 편향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영화는 역사가, 중간이 아무리 힘들어도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보여 주려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할리우드 영화에 몰리는 것은 그래서 다 이유가 있다. 영화에서나마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죄인을 보고, 용서함으로써 함께 구원받고 싶기 때문이다. 그건 역설적으로 죄인은 죄인이 아니고, 선인은 선인이 아닌 상황이 점점 질곡(桎梏)을 향해 치닫고 있음을 보여 준다.

요 며칠 사이에 은근히 화제를 모으고 있는 ‘컨택트’ 같은 영화는 여러 이유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상념에 빠지게 한다. 이 작품이 개봉한 지 채 일주일이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40만 관객에 육박하는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이유는, 영화적으로 다양하고 수많은 함의(含意)를 지니고 있어서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이 결국 이 영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소통의 쾌감’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갑자기 지구 상에 나타난 외계 비행체와 그 안에 타고 있는 비(非)지구인을 놓고 혼란과 공포에 빠진 세계의 뉴스로 시작된다. 뜻하지 않은 UFO의 출현으로 사람들은 오히려 스스로 간의 대화를 곡해하고 차단한다. 저들은, 상대는,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과연 무엇을 원하는가. 그건 ‘내가 그들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라는 선제적 자각과 자성을 이루어 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불필요한 정서일 뿐이다.

영화 속에서 언어학자인 루이스 박사(에이미 애덤스)는 사람들과 다른 질문을 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외계인에게 당신들은 누구이며, 왜 여기에 왔는가를 끊임없이 물어대지만, 루이스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그에 비해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언어 체계가 다른 그들에게 그저 자신이 루이스임을 밝히는 일이다. 이후 과정에서 외계인들이 그녀에게만 자신들의 언어를 가르치고 그 이상의 기프트(gift)를 주게 되는 것은 그녀가 쌍방의 소통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태도를 올바르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난 20일 동안 쿠바를 거쳐 선댄스영화제가 열리는 미국 솔트레이크와 파크시티를 경유하는 비교적 긴 외유(外遊)의 기간에 많은 ‘외계인’들과 섞여 지냈다. 쿠바의 물라토(스페인 백인과 아프리카 흑인들 사이에서 태어난 세대)들, 선댄스에서 만났던 미 대륙과 동서 유럽의 영화인들과 함께 지내면서 서로가 가진 짧은 언어의 능력과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그들과 함께 지내는 게 불편하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돌아왔다.

그러나 한 달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기에는 적대적인 ‘외계인’들이 더 많이 상륙해 있음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의식이 없는 대통령, 그녀를 옹호하느라 눈과 귀를 막은 채 그저 자기들 얘기만 하는 국회의원들, 오로지 인생에서 군대를 갔다 온 것이 유일한 전성기였다는 양 길거리에서 군복을 입고 활개를 치고 다니는 노년의 남자들, 도널드 트럼프가 어떤 행태를 보이는지도 모르면서 대형 성조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는 늙은 여자들. 모든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외계인과 그 비행체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저들을 어쩔 것인가. 영화에서처럼 저들이 좀 자각 있는 외계인이었으면 하는 것은 쓸데없는 환상이자 헛된 욕망일 뿐일까. 우리가 루이스처럼 올바른 대화의 태도를 취하고 있음에도 저 외계인들은 끝까지 소통하려 하지 않는다는 데서 영화와 현실의 큰 벽이 존재함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저들과는 결국 ‘우주 전쟁’을 벌여야 하는 것일까. 극장 밖의 현실이 극악하다.

이 나라는 언제 영화보다, 아니 영화만큼이라도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인가. 대통령은 과연 언제 스스로 그만둘 줄 아는 인성(人性)을 회복할 것인가에 답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참으로 더디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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