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키워드] ‘임금님 귀냄새’-‘극강(極强)’의 뒷담화

입력 2017-01-2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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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명절이니 가족들이 모이겠지요. 이번에도 ‘뒷담화’가 넘치겠어요. 더군다나 정치의 계절이니!

‘뒷담화’라는 단어가 언제 언중(言衆)에게서 사용 승인을 받아 늙은이, 젊은이(중고교 학생들도 포함),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방송-물론 주로 종편-과 신문에까지 등장하게 됐는지 아세요? 아마도 ‘뒷다마’라는 격 떨어지는 단어가 ‘뒷담화’로 살짝 격상된 이후부터일 거예요.

원래 당구 용어인 ‘뒷다마’는 어감도 좋지 않고, 음험한 뉘앙스까지 풍기는지라 남 등 뒤에서 험담, 모략, 중상을 할 필요가 있는, 세상 물 좀 먹은 남자들이 쓰던 속어였지요. 하지만 전보다 더 치사하고 복잡하게 세상을 살게 된 젊은이들과 여인네들도 늙다리 남자들 못지않게 이 단어를 자주 쓸 필요가 생기면서 ‘다마’라는 일본말(구슬-玉, 당구공)을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담화(談話)’라는 점잖은 한자로 격상/순화해 놓지 않았나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러면서 사용법도 ‘뒷다마를 치다’에서 ‘뒷담화를 하다’로 부드럽게 변한 게 아니냐 이겁니다. ‘뒷다마를 치다’는 ‘뒤통수를 치다’처럼 폭력을 연상시키지만 ‘뒷담화를 하다’는 오로지 말로만 그쳐, 뒤통수를 맞을 때의 둔통(鈍痛) 같은 것과는 연결되지 않지요. (어떤 이는 ‘뒷다마를 치다’에는 불결하고 냄새나는 성적 암시도 있다고 주장하더라고요. 받아들이거나 말거나!)

▲‘뒷다마치기’는 하얀 공으로 (뒤에 있는) 빨간 공을 치는 것이다.
▲‘뒷다마치기’는 하얀 공으로 (뒤에 있는) 빨간 공을 치는 것이다.

‘뒷담화’는 험담, 특히 남 등 뒤에서 하는 험담입니다. 험담이 지나치면 모략을 거쳐 중상이 되고 최악의 경우는 그 사람 등에 칼이 꽂히지요. 그래서 ‘험담하지 마라’는 (남자)사람들이 지켜야 할 중요 덕목이 됐지요. ‘뒷담화하는 자를 무시해라. 어차피 그들은 네 뒤를 따를 뿐’, 혹은 ‘사람들이 네 등 뒤에서 험담을 왜 하나? 네가 이미 그들 앞에 있기 때문이다’라는 서양 격언은 ‘뒷담화는 하지도 말고, 듣더라도 무시하라’는 가르침 아니겠어요? 이런 격언은 뒷담화를 하는 사람에게 죄책감도 심어줍니다.

그런데 뒷담화는 인간 본능이며, 문명의 기원이자, 장려해야 한다는 주장들을 접하고는 생각을 달리할까 싶어요.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언론, 저 같은 사람이 종사하는 직업도 뒷담화를 전하는 게 원래의 기능이라 했으니 생각을 달리하고 말고 할 게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만.

뒷담화가 본능이라는 주장은 ‘불평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깊숙한 욕구이다.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인간은 언어를 발명했을 것이다’가 대표적입니다. 언어가 문명을 촉진했다면, ‘언어는 불평을 담은 뒷담화로 발전됐다’는 주장이지요. ‘남의 뒷얘기는 물과 같다. 약한 곳을 찾아 표면을 살피다가 끝내 침투할 곳을 찾아낸다’는 소설 구절도 있어요. ‘모든 약자, 정치 사회 경제적 약자들에게 뒷담화가 가장 잘 침투하고 그곳에서 가장 잘 유포된다’는 이야기랍니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조롱할 수 있을지언정 뒷담화는 막을 수 없다. 뒷담화는 억압된 자들의 아편이다’라는 한 여성 소설가의 선언은 ‘뒷담화에는 아편처럼 치명적 유혹이 있어 누구도 억누를 수 없다’는 말이지요.

아무리 점잖은 사람들만 모인 사적 자리라도 마지막 화제는 험담으로 낙착되기 마련이니 뒷담화는 가장 밑바닥 사람들만 즐기는 게 아닌가 봅니다. “내 이런 말 안 하려 했다만, 말 나온 김에 그치에 대해 한마디만 하자”고 점잖게 시작하지만 한마디가 열 마디 되고, 다른 이까지 가세하면 순식간에 백 마디 천 마디로 늘어납니다.

“뭐든 재미있는, 악의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게 가장 어렵다는 거예요. 독기 있는 얘기만 재미있잖아요?” 점잖은 모임이 약간 지겨워질 무렵, 뒷담화를 끌어내기 위한 ‘원초적 대화’입니다.

이처럼 여러 소설과 학술서적들이 ‘뒷담화’의 본질을 파헤쳐 놓자 뒷담화의 순기능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옥스퍼드대학 진화심리학 교수인 로빈 던바는 “뒷담화는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털어놓을 수 있는 중대한 정보”라고 했지요. 사람들을 가족과 친구로 묶어 놓는 게 뒷담화이며, 동물은 할 수 없는 뒷담화는 인간을 최초로 집단화하고, 그 집단이 문명의 기본 단위가 됐다는 거지요.

작년에 ‘사피엔스’ 책 한 권으로 우리나라 독자들까지 사로잡은 유발 하라리도 “뒷담화는 악의적 능력이지만,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을 하려면 꼭 필요하다. 효율적인 소문 공유 수단이다. 누가 신뢰할 사람인지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가 있으면 작은 무리는 더 큰 무리로 확대될 수 있다”고 썼지요. 뒷담화는 이익 공유를 위한 협동의 기본 장치라는 말인 듯해요.

하지만 요즘에는 이익 공유가 아니라 이익 극대화를 위해서 뒷담화를 하는 사람이 많지요. 이 글 제목을 ‘귀냄새-극강의 뒷담화’라고 한 것도 그게 이유입니다.

<한 총신(寵臣)이 큰 공을 세우자 임금이 “한 가지만 들어주겠다. 네 소원이 뭐냐?”고 물었다. 그는 “전하를 뵐 때마다 ‘귀냄새’만 맡게 해주십시오”라고 조아렸다. 임금은 “그렇게 하도록 하라”며 괴이하지만 소박한 이 소원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다음부터 그는 궁에만 들어오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임금의 귀에 코를 대고 ‘귀냄새’를 맡았다. 다른 신하들은 그가 임금에게 초강력, 극강의 뒷담화를 하는 걸로만 알았다. 그들은 그에게 꼼짝도 못했다. 돈 뜯긴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라가 망했다.>

다음 대통령은 누구에게라도 자기 ‘귀냄새’를 맡도록 하지 않을 걸로 믿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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