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 칼럼] 리더여, 치(治)고독력을 길러라

입력 2016-12-2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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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리더십의 키워드는? 한 단어를 꼽는다면 고독이 아닐까. 이는 2013년 그의 리더십을 분석한 책 제목이 ‘고독의 리더십’인 것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박 대통령은 칩거로 인한 수동적 고독이든, 선택으로 인한 적극적 고독이든 그 어떤 전직 대통령보다도 고독에 이골이 난 리더다. “국가와 결혼했다”는 말마따나 주말은 물론이고 연휴에도 별다른 일정 없이 관저에서 보내는 박 대통령에게 “외롭지 않으냐”는 질문을 할 때마다 한결같이 “외로울 틈이 없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작금의 사태를 보면 그는 외로울 틈이 없거나, ‘고독’에 단련되거나 담금질된 것도 아니라 단지 은둔형 리더였던 것 같다. 속닥속닥 극소수의 비선에 의지해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모토로 내걸고 동굴에서 은둔한 리더였다고나 할까.

고독과 은폐, 은둔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는 ‘공주와 무수리의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유머형 퀴즈에 비유해 답할 수 있다. 공주와 무수리는 사람들이 모두 보는 밖에서 하는 표면적 행동은 같을 수 있지만, 혼자 있을 때 하는 행동이 다르다는 점에서 결정적으로 갈린다. 즉 공주는 혼자 있을 때도 공주처럼 행동하지만 무수리는 혼자 있을 때는 함부로 행동해 이중적이란 내용이다. 고독형 리더와 은폐형 리더도 이와 다르지 않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고독은 정신력을 발전시킬 수 있지만, 사람을 우둔하고 고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말한 것도 이 맥락에서다.

알고 보면 고독은 리더가 피해 갈 수 없는 숙명이자 리더의 필수품이다. 많은 리더들이 고독의 문제로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다. 자리가 주는 중압감, 의사결정의 책임감, 늘 감정을 절제하고 풀어진 모습을 보여주지 말아야 하는 긴장감,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 같은 막막한 불안감…. 고도(孤度)는 고도(高度)와 비례한다. 오죽하면 ‘울고 싶으면 젖은 수건을 물고 화장실에 가서 숨죽이며 울었고, 그 리더의 고독 때문에 몸에서 서리서리 사리가 나올 것 같다’는 고백을 하는 리더도 있겠는가. 많은 리더가 독방살이의 고독을 겪는다. 구성원들은 힘들 때 술 한잔 걸치며 ‘공공의 적’을 공격할 수 있지만, 정상의 리더는 씹을 대상도, 펀치를 날릴 대상도 없다. 외로워도 슬퍼도 힘들어도 맘대로 내색하기도 힘든 것이 리더다. 욕받이가 되는 수밖에 없다. 리더가 눈에서 레이저를 쏘는 순간, 만인의 기가 죽는다. 만인의 관심은 바꿔 말하면 만인의 감시의 눈길에서 한시도 자유롭지 못함을 의미한다. 모두가 우러러본다는 것은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과 같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어떤 리더는 이를 ‘어항 속 물고기’ 신세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일거수 일투족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능사이고, 카리스마를 돋보이는 것’이라며 동굴 속에 숨는 것은 은폐일 뿐 고독이 아니다.

고독의 외로울 고(孤)자를 한번 들여다보라. 고(孤)는 열매 자(子)와 오이 과(瓜)가 합해진 글자다. 오이가 덩굴 끝에 덩그러니 달린 모습이다. 독(獨)은 개사슴 변에 애벌레를 뜻하는 촉(蜀)이 붙어 있다. 개사슴은 개와 같은 동물을 뜻한다. 개는 양처럼 떼를 지어다니는 군집동물이 아니다. 외로이 홀로 있는 것을 좋아한다. 고립무원(孤立無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오이, 홀로 외롭게 포효할 수밖에 없는 개, 늑대의 신세다. 단지 감정적으로 외로워하는 고독감(loneliness)과 감성적으로 자신의 내공을 단련하는 고독력(solitude)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바로크 시대의 군주들은 국사를 잊고 칩거할 작은 성을 만들어 고독, solitude라고 불렀다. 나를 위해 만드는 고독의 성, 그것이 집이다. 또 solitude와 같은 어원의 solitar는 여러 개의 다이아몬드 가운데 단 한 개를 중앙에 박은 보석이란 의미도 갖고 있다. 카드놀이를 할 때 패를 주도적으로 돌리는 것이란 뜻도 있다. 중심에 박힌 보석이든, 카드의 패를 돌리든 그만큼 적극적 의미를 지닌 것이 솔리튜드, 고독감이 아닌 고독력이다. 고독력이야말로 리더가 견뎌야 하는 왕관의 무게 그 자체다.

리더의 고독은 ‘남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성찰과 신독(愼獨)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치우친 결정을 위한 비선의 소그룹에 의지하는 불통과 차단의 시간이 된다면 그것은 건강한 고독이 아니라 위험한 은폐일 뿐이다. 고독은 편치 않은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시공간이 아니라 만만치 않은 세상을 만나기 위한 내공 충전의 시공간이 되어야 한다. 즉 진정한 고독은 고독에 처연하게 빠지는 것이 아니라 초연하게 빠져나오는 데 있다. 고독에 치이느냐, 고독을 다루느냐가 리더십을 가른다.

부정적 고독으로 방전되기보다 긍정적 고독으로 충전하는 게 역전의 방법이다. 예전에 오랑캐를 막는 최고의 방법은 이이제이(以夷制夷), 즉 오랑캐로 오랑캐를 다스리는 것이었다. 공자나 예수나 모두 성인이 되기까지 ‘광야의 고독’이라는 수련기간이 있었다. 고독에 갇힌 것이 아니라 고독 속에서 자신을 직면하는 것이다. 쓰나미에 대처하는 방법은 도망이 아니라 그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즉 자신을 만나고, 본질이 무엇인가를 천착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유교에서 ‘신독’은 수양의 주요 항목이다. ‘중용’에 “숨겨진 것보다 잘 나타나는 것이 없고, 작은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 없으니, 그러므로 군자란 홀로일 때 조심하는 것이다”(莫見乎隱 莫顯乎微 故 君子愼其獨也)라는 구절이 나온다. 숨겨진 것은 나타나게 마련이고, 작은 것이라 해도 끝까지 감출 수가 없듯이 사람의 은밀한 행동이나 작은 실수들이 결국 남의 이목에 띄지 않아도 자신의 인격이나 업무 수행의 결과에 반영된다는 이야기다. 홀로 있을 때 더욱 조심해 수양해야 한다는 뜻이다.

고독력은 혼자 있는 시간의 양이 아니라 어떻게 보내느냐의 질로 축적된다. 고독감에서 비롯된 은둔은 인간관계에 대한 친밀함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은 것에서 오는 불안감, 불쾌감, 심하게는 배신에 대한 공포에서 오는 도피성이 강하다. 반면에 고독력은 자신을 응시하는 용기와 내공의 힘을 축적하는 시간이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혼자만의 시간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겨야 함께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심리학자들은 “고독으로부터 얻은 통찰은 혼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가 하는 시간적 개념과는 상관이 없다. 그보다는 자기 자신이 소화한 시간의 질에 좌우된다. 양질의 고독 시간, 솔리튜드를 통해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고수 리더들은 나름의 솔리튜드 활용 방법을 체득하고 있다. 중국의 상인들은 집안 곳곳에 거울을 걸어 두고 자신의 마음 상태를 성찰했다고 한다. 중국의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런정페이 회장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도박에 중독되는 성향이 있다. 반드시 자신을 조절하고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며 관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 모두는 자신을 냉철하게 비평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은 영원한 부정을 통해 발전해왔다. 자기 반성이 기업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 몸으로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것만이 유성으로 지지 않고 항성이 되는 비결이라는 지적이다.

자기 반성, 성찰로 자기를 만나는 시간을 갖는 것이 고독력을 높인다. 주위의 아부와 비난으로부터 흔들리지 않게 한다. K 사장은 비망록을 작성한다고 한다. 글을 쓰는 동안 마음이 가라앉고 생각도 정리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다. 힘들 때는 물론 기쁠 때도 이른바 ‘해피노트’라는 이름의 비망록을 작성한다. 힘들어서 억장이 무너진 일, 또는 흐뭇했던 일들을 읽기도 하고, 쓰기도 한다. 당장은 힘들어서 분노가 치솟거나 힘들었던 일이라도, 몇 달 지난 후 읽어 보면 ‘뭐 그런 일 갖고 그랬나’라는 자성의 마음이 들기도 해 고독 치유 효과는 물론 예방 효과도 크단다. 서원에 가서 역사 속 현자들과의 대화를 즐긴다는 리더도 있다. 중요한 것은 질문을 통해 목표를 돌아보고 본질을 살펴봤다는 것이다.

고독에서 도피해 은둔하기보다 고독을 직면하라. 고독은 리더의 숙명이다. 같은 고독이라도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누군가에겐 고독이 병이 되지만, 누군가에겐 약이 된다. 당신에게 지금 고독의 시간은 약인가, 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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