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키워드] 개그하는 대통령- 오바마는 따뜻하고, 박근혜는 썰렁해

입력 2016-11-2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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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포스코저널 논설주간

대통령과 최순실 무리에 질리신 분들, 거짓말 같은 사실과, 사실 같은 거짓말이 넘치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에 이제는 짜증을 참지 못하시는 분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TV 코미디나 토크쇼에 출연해 시청자들을 웃긴 개그 몇 개를 알려드릴게요. 이미 보도된 것들이지만 그냥 한 번 더 웃을 만은 합니다.

오바마가 코미디언 제리 사인펠드를 대통령 리무진에 태우고는 이렇게 자랑했답니다. “이봐, 제리. 이 차에서는 핵잠수함도 호출할 수 있다고. 물론 전 좌석 열선은 기본 옵션이지!”

지난 대선 당시 트럼프가 TV쇼에 나온 오바마에게 “당신은 최악의 미국 대통령으로 물러날 것”이라고 트위터를 날리자 “그래도 나는 대통령으로 물러나잖아?”라고 받아쳤습니다. ‘당신은 선거에서 떨어질 것’이라고 한 건데, 많은 사람들이 엄청 웃었다지요.

오바마는 자학(自虐) 개그, ‘셀프 디스’에 뛰어납니다. 퇴임을 앞둔 오바마가 재취업 인터뷰를 하고 있는 설정으로 진행된 코미디 쇼의 한 장면입니다.

면접관: (오바마의 이력서를 보면서) “지난 8년 동안 한 번도 승진을 못했네?”

오바마: “전 직장에 승진 자리가 별로 없어서요.”

면접관: “수상 경력은?”

오바마: “노벨평화상이란 걸 받기는 했지요.”

면접관: “뭘로?”

오바마: “글쎄요. 아직도 왜 받게 됐는지는 모르겠어요.”

오바마의 셀프 디스에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공화당은 늘 (흑인 등) 소수 인종에게 손을 내민다고 한다. 눈앞에 있는 소수 인종(오바마)은 안 보이나?”라든가, “올해는 내 지지율이 상승해 대통령 욕을 해야 먹고사는 코미디언들이 힘들어졌다며?” 등입니다.

하지만 오바마 셀프 디스의 대표작은 이겁니다. 역시 토크쇼에서 한 겁니다.

MC:“역사상 미국 최후의 흑인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 같다. 기분이 어떠냐?”

오바마: “그래서 의료보험만큼은 확실히 만들어 놓고 물러나려 한다.”

2014년 미국에서 처음 시행된 의료보험제도가 흑인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제도임을 설득하려 터뜨린 이 자학 개그는 오바마의 인기를 솟구치게 한 기폭제였습니다. 이 쇼의 당일 조회 수는 1100만 건이 넘었고, 2000만 명이 새로 의료보험에 가입했습니다. 오바마의 ‘개그 정치’가 가져온 효과입니다.

오바마의 개그는 여러 명의 연설문 집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짜낸 것이 대부분일 터인데, 소화 역량이 없다면 대본이 아무리 좋아봤자 청중이 그처럼 뜨겁게 호응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데이비드 리트라는 연설문 집필자는 “클린턴이나 부시도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국민을 즐겁게 했지만 오바마 수준은 아니었다. 그는 청중의 취향과 타이밍을 짚어내는 센스가 탁월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요건 제가 옮긴 오바마 개그가 재미없다면, 그건 제 탓이지 오바마가 웃기지 못해서가 아니라는 변명도 되겠습니다.

오바마가 얼마나 재미있고 주변 사람들을 따뜻한 웃음으로 인도하는지를 알려드리기 위해 오바마 사진 사이트 하나를 소개해드릴게요. 피트 수자라는 백악관 사진사가 ‘내가 좋아하는 오바마 사진’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건데 주소는 ‘http://9gag.com/gag/ajqEV90’입니다. (제 페이스북에 이미 공유되어 있습니다.)

▲카펫에 엎드려 아기를 어르며 장난치는 오바마.
▲카펫에 엎드려 아기를 어르며 장난치는 오바마.

수십 장의 사진 가운데는 체중을 재는 보좌관 몰래 뒤에서 무게가 더 나가라고 저울에 한 발을 턱하니 올려놓고 능청을 떠는 사진이나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려고 카펫에 엎드린 채 장난스런 표정을 짓는 사진도 있습니다. ‘사랑과 선의, 신뢰는 저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백악관에서 열린 회의에서 자기 자리를 회의를 주재하는 보좌관에게 넘겨주고 한쪽 구석 말석에 앉아 다른 이들의 발언을 경청하는 모습이나 쏟아지는 비를 셔츠 차림으로 철철 맞으면서 연설하는 사진들은 리더십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이번 글에서는 우리 대통령의 무엇을 콕 집어서는 비난을 안 하려 했는데, 글이라는 게 항상 그렇듯 생각과는 달리 쓰다 보면 제멋대로 흘러가는 것이어서 결국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네요. 우리 대통령 개그는 어떤 게 있나 찾아봤다는 말입니다. 그중 하나를 옮겨볼게요. 올 8월 11일 새누리당 새 지도부를 청와대에 불러 점심을 같이하면서 한 것입니다.

대통령: “경상도 말로 ‘할머니 비켜주세요’를 세 글자로 하면 뭘까요?” 아무도 못 맞혔습니다. “할매, 쫌”이라고 정답을 말한 대통령은 “두 글자로는요?” 역시 아무도 못 맞히자 “할매!”라고 답을 가르쳐줬습니다.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한 글자로는요?”라고 물었습니다. 이번에도 정답은 대통령만 알고 있었습니다. “쫌!”이 정답입니다.

제가 대통령의 이 개그에서 어떤 암시를 읽어낸 첫 번째 기자는 아닙니다. 이 개그가 보도된 직후 어떤 젊은 기자가 이미 자기 칼럼에 이 개그를 옮겨 쓴 후 조만간 대통령에게 부메랑처럼 돌아갈 것이라고 예지력(叡智力)을 발휘했더라고요. 어쨌거나, 만약에 이번 주말 촛불시위에서 시민들이 ‘할매, 쫌!’, ‘할매!’, ‘쫌!’ 중 어느 것을 소리 높여 외쳐도 그 저작권은 저나 그 젊은 기자의 것이 아니라 대통령(아니면 최순실?) 것임은 알고 나가시길 바랍니다. (이 글이 대통령의 개그만큼 썰렁하지는 않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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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펫에 엎드려 아기를 어르며 장난치는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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