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금] 트럼프 정치의 요체는 이익과 승리

입력 2016-11-1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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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8일의 미국 대통령 선거는 미국 정치에 거대한 지각 변동을 일으킨 대지진이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리라고 예상치 못했습니다.

숫자로 보면 트럼프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선거였습니다. 모든 여론조사가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을 예측했고 특별히 대통령 당락을 결정하는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 경합 주) 통계를 보면 대부분이 힐러리 쪽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힐러리가 이기는 것은 물론 그 승리가 압도적일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모든 여론조사를 비웃고 트럼프를 승리의 무대에 서게 한 것은 ‘숨은 백인들’이었습니다. 과학적 숫자를 지나치게 의존하는 선거 전문가들은 이들 ‘숨은 백인들’의 표심을 간과했습니다. 이들 숨은 백인들은 트럼프를 찍겠다고 마음의 결정을 했으면서도 여론조사를 거부하거나 의사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트럼프 지지 세력의 주종은 ‘대학을 나오지 않은 블루 컬러’ 백인들로 분류되었습니다. 이들 블루 컬러들은 트럼프 연설을 듣기 위해 다섯 시간, 일곱 시간을 줄 서서 기다리고 집 마당에 트럼프 사인 판을 꽂아 놓는 열성 지지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숨은 백인들은 정반대였습니다. 이들은 ‘학력 수준이 높은 전문직 중산층’ 백인들로, 그들의 속마음을 숨겼습니다.

언론으로부터 ‘인종주의자’ ‘나치 동조자’ ‘여성 차별자’ ‘성범죄자’라는 비난을 받는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하면 이것을 용인하거나 동조하는 사람으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로 인해 자신의 인격과 도덕성을 의심 받고 조롱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트럼프를 지지하면서도 표시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투표장으로 나왔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힐러리는 나와야 할 사람들이 덜 나오고, 지지도 덜 했습니다. 힐러리 지지세력인 흑인, 라티노, 아시아 인, 여성 표가 생각보다 적었습니다. 흑인은 92% 지지로 압도적 지지를 해 주었지만 오바마 당시만큼 투표에 참여하질 않았고, 라티노와 아시아 인은 70% 지지로 생각보다 지지도가 낮았습니다. 또 다른 요인은 민주당 예선에서 버니 샌더스를 지지했던 젊은 표가 제 3당으로 가거나 투표장으로 가지 않은 것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트럼프는 이밴제리컬(Evangelical), 즉 복음주의 기독교인의 지지를 예상보다 훨씬 많이 얻었습니다. 지지율이 81%에 달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하고 신앙심이 깊은 이들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앙과는 거리가 먼 도덕성과 인격을 가진 트럼프를 지지한 주요 이유는 대법원 판사 임명 때문이었습니다. 오바마 정부에서 동성애 결혼이 합법화되고 이제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수술자) 빗장까지 열려고 하는 마당에 힐러리가 진보적 판사를 임명하면 최후의 둑이 무너진다는 위기감이 팽배했습니다.

무슬림 문제도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에게는 심각한 도전입니다. 무슬림 피난민을 대거 받아들이려는 힐러리와는 달리 트럼프는 무슬림 이민의 일시 중단을 공언했습니다. 무슬림 이민은 기독교인들만이 아니라 침묵하는 다수 백인들도 거부 심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슬림 피난민들 가운데 IS(이슬람국가) 동조자가 포함될 수 있는 것은 물론 이들의 자녀가 자생적인 테러리스트가 되어 미국의 안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입니다.

트럼프를 당선시켜 준 백인들의 또 다른 심리는 불법 체류자 문제입니다. 1200만 명에 달하는 불법 체류자를 추방하고 멕시코 국경에 담을 쌓겠다는 트럼프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는 않지만, 힐러리보다는 문제 해결을 더 실질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불법 체류자 문제는 미국이 안고 있는 큰 짐입니다. 이들의 신분이 합법화될 때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복지 기금, 의료비, 교육비, 사회보장이 엄청나게 투입되어 빚에 허덕이는 미국의 적자 재정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불안 심리가 있습니다. 경제적 이유보다 더 큰 불안은 이미 15%에 달하는, 13%의 흑인 인구를 넘어선 라티노가 미국의 문화 의식을 바꾸고 정치 지도를 바꾼다는 것입니다. 도덕적·인격적으로 도저히 트럼프를 찍어주기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이러한 이유로 트럼프를 택했습니다.

그동안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다렸으나 말로만 끝났기에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분노로 변했습니다.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숫자가 70%에 이르고 이들은 획기적이고 파격적인 변화를 목말라하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정치판을 갈아엎자’는 현상 타파 심리로 끓어올랐습니다. 힐러리가 똑똑하고 자질과 경험이 있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들에게 힐러리는 부패한 기득권의 상징이었고 개혁의 대상이었습니다.

여기에 트럼프가 불을 질렀습니다. 이들에게는 트럼프의 인격과 도덕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워싱턴 분위기를 바꾸는 것입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에 자질이 부적합하다는 숫자가 65%에 달하는데도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트럼프를 찍었습니다. 트럼프의 괴팍하고 괴물적인 언행은 오히려 이러한 정치판을 바꿀 수 있는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역설 심리도 트럼프 선택에 일조했을 것입니다.

아웃사이더를 자처했던 트럼프가 어떻게 미국의 기득권 정치를 흔들지는 알 수 없습니다. 트럼프가 정책을 수행하려면 의회의 협조를 얻어야 가능합니다. 트럼프는 상원과 하원 모두를 공화당이 장악하는 정치적 행운을 얻었으나, 정치인의 협조를 얻는 일과 기득권 정치를 바꾸는 일은 서로가 상충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트럼프의 최대 과제는 저질화 선거전으로 깊어진 상처와 분열을 아물게 하고 화해시키는 일입니다.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분노한 백인들, 침묵하는 다수와 트럼프에게 적대적 감정을 가진 흑인, 히스패닉, 무슬림, 여성들 사이를 가르는 골이 깊습니다.

트럼프는 대외 정책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러시아와의 관계가 개선되는 대신 중국과의 관계가 경색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선거운동 기간 중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 무용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등거리 정책, TPP(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 탈퇴, 중국에 대한 시장 압박 증가 정책을 주장하고 한국, 일본, 독일 등 해외 미군 주둔국에 경비 부담을 증가시킬 것을 강조하면서 여기에 불응하면 주둔 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는 발언까지 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이 핵무기를 개발, 보유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면서 “한국이나 일본이 핵무기를 개발해서 자기를 지키는 것이 미국의 핵우산에 기대는 것보다 낫다”는 충격적인 발언도 했습니다. 그리고 김정은을 만날 수 있다는 발언도 했습니다.

그러나 선거운동 당시의 이러한 발언을 말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고 이것을 정책화하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부분이 트럼프 자신이 소화하지 못한 즉흥적이고 일시적 발언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트럼프는 자신의 대외 정책 기조를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예측 불가 외교 정책(Unpredictable Foreign Policy)’으로 밝힌 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대외 정책을 상황과 필요에 따라 바꿀 수 있고 국가 이익을 위해서는 기존의 틀을 바꾸고 파격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핵무장 정책이 현실화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트럼프의 한반도 정책, 특히 북한 정책은 김정은의 태도에 따라 화해로 갈 수도 있고 강공으로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미동맹에 이상 가능성은 없지만, 미국 정부의 정책에 따라 예측 불가의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놔야 할 것입니다.

정치 초년생인 트럼프 당선자는 그러나 흥정을 하면서 돈 버는 일로 일생을 살아온 사업가입니다. 트럼프는 모든 것을 협상하고 타협할 수 있을 정치인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트럼프를 신랄하게 공격하고 비하했던 반대자 중에는 어쩌면 트럼프는 융통성 있고 생각보다 유능한 대통령이 될지 모른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선거전에서도 보여주었지만 트럼프 철학의 요체는 이익과 승리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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