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국남의 직격탄] 더 늦기 전에

입력 2016-09-0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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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평론가

‘Better Late than Never’. 미국 NBC가 8월 23일부터 방송하고 있는 여행 리얼리티쇼 프로그램 제목이다. 첫 방송부터 열띤 반응이다. 시청률 1%(시청자 800만 명)를 기록하며 CBS, ABC, FOX 등 미국 지상파 채널 중 같은 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Better Late than Never’는 tvN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 포맷을 수입해 리메이크한 것이다. 1970년대 시트콤 ‘해피 데이스’의 헨리 윙클러, 영화 ‘스타트렉’에서 커크 선장 역을 맡은 윌리엄 샤트너, 전 프로풋볼 선수 테리 브래드쇼, 전 세계 헤비급 복싱 챔피언 조지 포먼 등 인생 황혼기에 접어든 왕년의 스타 4명이 한국, 일본 등 4개국 6개 도시를 여행하며 벌어지는 돌발 상황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버킷리스트(Bucket list)를 완성해 나가는 포맷이다.

일본 도쿄 여행 에피소드를 다룬 첫 방송을 보고 ‘Better Late than Never’ 제목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늦더라도 안 하느니보다는 낫다’는 뜻으로 ‘더 늦기 전에’로 번역할 수 있다. 사람마다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자신만의 버킷리스트도 있다. 하지만 하지 못한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해 다음에 하자는 유보적 삶의 태도 때문이다.

사람들이 죽으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무엇일까? “미안하다”라는 말이라고 한다. 미안함은 부모, 남편, 아내, 자녀를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것을 비롯해,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와 자책의 마음에서 촉발되기도 한다.

“사람이 죽는다는 건 확실한 일인데도 나는 죽지 않는다는 무의식상의 신념 때문에 인간은 불행하다”라는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지적은 모든 이에게 적용된다. 평상시 죽음은 나와는 상관없고 시간이 많은 것으로 생각,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기에 문제가 생기고 불행해진다.

17세 때 “매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의인이 돼 있을 것이다”라는 경구를 접한 이후 스티브 잡스는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오늘이 내 인생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며 해야 할 일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잡스는 강조했다. “‘곧 죽는다’는 생각은 인생의 중요한 결단을 내릴 때 현명한 선택을 하게 도와준다. 외부의 기대, 자부심, 수치스러움, 실패의 두려움은 죽음 앞에서 모두 떨어져 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 남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 것은 너무 늦었다고 생각해 쉽게 포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만화가가 꿈이었다. 과학고와 서울대를 나와 대기업에 취업했다.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입사 1년 만에 임파선암 3기 판정을 받았다. 항암 치료를 받으며 웹툰 ‘암은 암, 청춘은 청춘’ ‘오방떡 소녀의 행복한 날들’ 등을 발표하며 수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감동을 선사했다. 만화가의 꿈을 이룬 것이다. 바로 필명 ‘오방떡 소녀’로 활동했던 조수진 씨다.

그녀는 암세포가 목숨을 위협하는 순간에도 씩씩하게 ‘2AM 콘서트 가기’ ‘방글라데시 여행 가기’ ‘젊음을 사진으로 남기기’ 등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완성해나갔다. 그리고 2011년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숨을 거뒀다. 조수진 씨는 온몸으로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것을 보여줬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늦게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입증했다.

온 가족이 모이는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면 올 한가위에는 “사랑한다”라는 말을 해보자. 갈등이 있는 가족들은 화해하고 용서하자. 더 늦기 전에. 나 역시 이번 추석 어머니에게 평생 한 번도 못한 “사랑한다”라는 말을 해야겠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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