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눈] 이진희 은행나무 편집주간이 말하는 정유정의 '종의 기원'

입력 2016-08-19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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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제 할 일을 잊는 법이 없다…올 것은 결국 오고, 벌어질 일은 끝내 벌어진다.’ (종의 기원 중)

정유정의 소설은 막강한 흡입력을 자랑한다. 정유정의 신작 ‘종의 기원’ 출간 과정을 함께한 이진희 은행나무 편집주간은 “정유정의 소설은 모든 일을 처리한 다음에 읽는다. 지금까지 늘 받은 원고를 한번 잡으면 끝까지 읽어야 하는 일이 많았다”라고 털어놨다.

그 바탕에는 자칫 뻔할 수 있는 이야기를 깊이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정유정의 문장력이 자리 잡고 있다. 이 편집주간은 “처음 읽었을 때는 뭔가 이 작품에 목덜미를 잡힌 상태로 사방 벽에 내던져진 느낌이다. 불편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두 번, 세 번 읽다 보면 느낌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몇 번씩 읽다 보니 문장이 너무 좋더라. ‘어떻게 살인자의 이야기를 쓰면서 이렇게 잘 쓸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문장이 가지는 힘, 서사가 끌고 나가는 힘이 느껴진다. 치밀하게 짰다는 느낌을 받는다. 문장 하나하나, 이야기가 넘어가는 플롯에서도 모든 게 느껴진다”라고 덧붙였다.

보통은 살인 장면을 쓸 때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해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정유정은 자극적인 장면에서는 도리어 문학적으로 표현한다. 자극적으로 쓰지 않았는데도 읽다 보면 상상으로 그 장면을 따라가게 된다. 이 편집주간은 “살인의 장면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 속 주인공 ‘유진’의 심리를 묘사한다. 독자로 하여금 그 당시 살인자의 마음이 될 수 있도록 한다”라고 설명했다.

‘수천 개의 감각들이 느릿느릿 나를 통과해갔다. 머리를 얼리는 한기, 내장을 뒤틀며 맹렬하게 번지는 불의 열기, 신경절 마디마디에서 폭발하는 발화의 전율, 규칙적으로 뛰는 내 심장소리. 왼쪽에서 출발한 칼날은 삽시에 오른쪽 귀밑에 이르렀다.’ (종의 기원 중)

이 편집주간은 정유정의 이런 강점이 한국문학을 이끌어갈 원동력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이 정도의 스토리를 써내는 작가가 한국에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문장 구조가 뒷받침되는 상황에서 스토리도 흡입력 있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다른 작가가 쓰면 참 별 볼 일 없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특히 ‘종의 기원’은 자칫 잘못하면 장르문학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정유정이 썼기 때문에 어떤 내용인지 뻔히 아는 상태에서도 책을 놓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유정의 소설에 대해 말할 때 대부분 독자들은 ‘이제까지 한국 문학에 없었던 스타일이다’라고 말한다”며 “처음 등장했을 때는 ‘낯설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28’을 거치면서 지금은 하나의 장르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정유정은 문학성을 갖췄다. 이 편집주간은 “장르기반에 발을 담근 것처럼 보이지만 제대로 문학상을 통해 등단해 문학성을 충족시키는 면이 있다”며 “또 독자에게 던져주는 질문들이 있다. 이것이 문학성이 아닌가 한다. 이야기에 따라 몰입해 읽다 보면 묘한 여운이 남는다. 인간 스스로에 대해, 세상에 대해 독자 스스로 질문을 찾을 기회가 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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