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금] 미국이 격해지고 있다

입력 2016-07-0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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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월 반 전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가 치열한 예선경쟁을 하고 있을 때 네바다주 민주당 당원대회에서 고성과 삿대질이 오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샌더스 지지자들이 네바다 당 조직이 공정하게 대회를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항의하면서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소란을 보도하던 어느 TV 진행자는 이 와중에 샌더스 지지자가 의자를 던지는 일까지 일어났다면서 한국 국회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 미국 정치 현장에서 일어났다는 논평을 했습니다.

1주일 전 미국 의사당에서는 170여 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총기법에 관한 표결을 하지 않는 것에 항의해 의사당에서 24시간 농성을 했습니다. 공화당 의원들은 이러한 행동이 의회 기능을 저해하고 혼란으로 몰아넣는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네바다 민주당 당원대회나 의사당 농성사건은 미국 정치가 격해지고 있다는 것을 상징해주는 것입니다. 미국 정치는 대결보다는 토론과 타협에 강점이 있는 것으로 인식됐으나 갈수록 양보와 절충문화가 실종되고 있습니다.

9·11 이후 가장 큰 테러사건이 6월 12일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LGBT(레스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 나이트클럽에서 발생한 뒤 여기에 반응하고 대응하는 정치권의 모습이 서로의 가치관에 따라 달랐습니다. 대통령 선거철이라 민주당과 공화당의 접근 방법은 더욱 격렬했습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힐러리와 민주당은 49명의 생명을 앗아간 LGBT 학살을 증오범죄와 총기 규제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힐러리는 범인이 테러 감시 명단에 있었던 사람으로 자동 소총을 구입할 수 있는 현재의 총기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총기법 개정을 역설했습니다. 공화당이 총기법 개정을 거부하고 민주당의 안건을 다루지 않자 민주당 의원들이 농성에 들어간 것입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트럼프는 범인이 무슬림이란 것을 강조했습니다. 범인은 이라크전쟁으로 무고한 동족들이 살해된 것에 분노를 느꼈다는 아프가니스탄 아메리칸 2세 무슬림으로 ISIS를 찬양하는 젊은이였습니다. 트럼프는 무슬림 이민을 잠정적으로 금지할 것을 역설한 자신의 주장이 적중한 것이라고 말하고 오바마 대통령이나 힐러리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공격했습니다.

LGBT 학살 사건이 초반에는 무슬림 논쟁으로 초점이 맞추어지다가 총기 규제 문제로 옮겨 갔습니다. 총을 소유하는 것은 미국의 수정헌법 2조에 근거하는 것으로 신성불가침의 영역입니다. 총기법 개정을 추진하는 민주당 법안은 테러 감시 대상자에게 총기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아주 소극적인 접근이지만 공화당은 완강하게 거부하고, 표결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LGBT 학살 사건 2주 뒤에 일어난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에 대한 접근도 가치관에 따라 시각이 다릅니다.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기로 한 국민투표 결정이 미국에도 커다란 충격을 던져 주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브렉시트가 무엇이고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인지 잘 모릅니다.

브렉시트에 대한 상식적 진단은 무슬림과 동유럽 이민이 증가하는 것에 대한 영국인들의 불안이 고조되었고, 영국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경제가 악화되는 것에 대한 불만, 영국의 정체성에 대한 위기의식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반이민, 고립주의, 민족주의 흐름이 브렉시트로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브렉시트가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고 세계 경제를 교란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미국 국민들 생각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좀 더 관망하자는 태도입니다.

브렉시트로 인해 지금이 유럽 여행을 할 호기라고 말하고, 이미 유럽 여행을 예약했더라도 취소하고 다시 계약하면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경제적 조언도 나오고 있습니다. 예금 금리와 주가가 떨어지고 주식시장이 불안하지만 그것은 투자 능력이나 여윳돈이 있는 사람들의 문제이고 중산층 이하 소시민들은 이자율 인하로 주택 융자 이자율이 내려갈 것이라는 기대로 오히려 반기는 모습까지 있습니다.

무슬림이나 동유럽 이민을 금지해야 한다는 영국인들의 반이민 정서는 많은 백인 미국인들의 생각과 상통합니다. 그런데 영국인들의 반이민 기류와 미국의 반이민 정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크게 다릅니다. 무슬림이나 멕시칸을 문제 삼는 트럼프까지도 이민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합법적인 이민을 늘려 우수한 외국인을 유입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정서는 반이민이 아니라 멕시코 국경을 계속 넘어오는 불법 밀입국자 문제와 자생적 테러 세력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무슬림 이민 문제입니다.

잇달아 발생한 터키 이스탄불의 테러 사건에 대해서도 트럼프가 워터보딩(waterboarding) 고문을 다시 거론하면서 정치 문제로 비화했습니다. 워터보딩 고문은 얼굴에 헝겊을 씌우고 물에 집어넣어 호흡을 힘들게 하는 야만적 물고문으로 지탄받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ISIS나 극단적인 테러리스트들은 선량한 시민의 목을 베고 손발을 자르는 잔혹한 고문을 하는데 미국이 신사적인 심문만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물고문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존 맥케인 상원의원은 “이것은 우리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상대방이 야만적이고 잔혹하게 행동해도 미국의 본질적인 가치관과 인격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과 가치관은 존경받는 것이고, 미국인들에게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져 왔지만, 9·11 테러와 ISIS 잔혹 행위로 도전받고 있습니다. 신사적인 방법으로는 테러리스트의 입을 열게 할 수 없고 이로 인해 수많은 무고한 생명들이 계속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트럼프는 물고문을 주장하면서 “불에는 불로 싸워야 한다”는 이열치열(以熱治熱) 방법론을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불안에 있는 미국인들의 속마음에 의외로 공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정치가 설득과 타협으로 가지 않고 대결과 극단주의로 가는 것은 미국인들 의식의 반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을 갈수록 극단주의로 만드는 것은 가치관의 차이가 심화되고 있는 것을 말해 줍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가장 치열한 가치관의 싸움을 일으켰던 낙태 논란이 아직도 계속되는 가운데 여기에 동성애 문제가 곁들여지고, 최근에는 LGBT로 확대되고, ISIS 만행이 극심해지고, 테러 위협이 증가하면서 과거의 합리적 가치관 논쟁이 문화 전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올랜도 LGBT 학살 사건은 미국의 가치관 문제를 복합적으로 내포하고 있습니다. 범인은 무슬림이고, 희생자는 LGBT이고, 이들 희생자 대부분은 히스패닉입니다. 여기에는 증오, 무슬림, LGBT, 총기, 폭력 문화의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의 문제로 규정짓는 것은 정치 논리, 이념 논쟁으로 본질에서 빗나간 진단입니다.

영국의 브렉시트, 터키의 공항 테러 사건이 미국의 문제와 연결되면서 국민들의 가치관 갈등과 혼란은 심화되고 있습니다. 표면에 나타난 브렉시트, 이스탄불 테러 사건에 대한 미국 반응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바닥에 깔린 미국의 좌절과 불안의 뿌리가 깊고 복잡합니다. 불확실한 미래, 불안한 미래가 미국인들을 실의에 빠지게 하고 있습니다.

미디어에 나타나는 의견이나 여론조사에 나타나는 숫자만으로 미국인의 진의와 속마음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많은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불안과 좌절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여론조사가 엇갈리고 널 뛰듯 달라지는 것은 이러한 불안정한 심리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막연한 심리입니다.

이 막연한 심리가 가치관이나 시국관에 맞물리면 격화되고 극단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부화뇌동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자신의 좌절과 불안을 속 시원하게 배설해 준다는 감정은 이들을 열광적이고 극단적인 사람들로 만듭니다. 미국의 지도층과 정치인들은 과거 미국 정치에서 볼 수 있었던 절제력과 관용을 잃어가고, 개인의 이익보다 국가의 이익을 염두에 두었던 정치 인격을 상실한 채 오히려 양극화를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은 방향을 상실해 가고 큰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정치 인격이 격하되고 의식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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