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공간] 하지 감자는 더 맛있다

입력 2016-06-2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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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밥

하지가 지나고

햇감자를 물에 말아 먹으면

사이다처럼 하얀 거품이 일었다

그 안에는 밭 둔덕의 꽃들이나

소울음이 들어 있었는데

나는 그게 먹기 싫어서

여름내 어머니랑 싸우고는 했다

시집 『뿔을 적시며』에서

지금은 제철 음식이 따로 없다. 시절을 앞당기거나 한참 지난 뒤라도 원하는 걸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보관기술도 발전했지만 인공 재배를 하거나 수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감자밥도 그렇다. 내가 어렸을 때는 하지가 되면 감자밥을 먹었다.

하지는 보통 유월 21일께 들게 마련이고 이는 일 년의 절반에 해당하는 시기다. 이때가 논농사로는 애벌 김매기를 하고 밭에서는 보리를 베는 시기이다. 보리보다는 감자를 많이 심는 강원도에서는 여름 한철 식량을 감자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자 포기를 들추고 새알 같은 감자를 확인해 보다가 하지가 되면 수확이 시작되는 것이다.

밥이 채 잦기도 전에 솥뚜껑을 열고 감자를 꺼내 먹다가 어머니에게 혼이 나기도 하는 게 이 무렵이다. 감자를 으깨어 물에 말면 미세한 가루가 풀어지며 거품 같은 게 일었다. 어린 시절 나는 그게 사이다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새롭고 맛있는 것도 한두 끼이고 이내 물리기 마련이다. 만날 감자만 먹냐고 투정을 해 보지만 어머니라고 무슨 뾰족한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마당 한편에서는 모깃불이 타고 소가 누워 가끔 꿈꾸는 소리를 한다. 어머니는 내일 먹을 감자를 깎고 아버지야 무슨 걱정이 있든 말든 멍석에 누워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을 세기도 하고 형들과 간지럼을 먹이며 키득거리다가 잠들곤 했다. 어른들 말로는 누워서 바라보는 은하수가 입속으로 들어올 때쯤이면 이밥을 먹는다고 했다. 가을 별자리를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아침에 깨어나면 나는 방에 들어와 있었다. 마당에서 잠든 나를 어머니가 안아다 눕힌 것이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그때는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기 때문에 우리 집만 못산다든가 하는 생각은 전혀 안 했던 것 같다.

본격적인 더위가 온다. 여름이면 아이들은 가족과의 물놀이나 캠핑을 꿈꾼다. 그게 어려우면 집 옥상이나 거실에 텐트를 치고 캠핑 놀이를 하는 아이들도 있다. 거기에 비하면 여름 내내 별을 바라보며 꿈꾸는 소 잠꼬대를 듣거나 멍석으로 뛰어들다가 쫓으면 오줌을 싸고 도망치는 개구리들과 야영을 즐기며 자랐으니, 먹을거리가 좀 부실했다 하더라도 그만하면 행복한 유년을 보낸 셈이다. 세상이 바뀌고 사람은 변했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하지가 되었고 둥글둥글 감자는 여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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