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의 가족이야기] 숲길을 걷자

입력 2016-06-1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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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포천의 광릉수목원을 찾았다. 양평으로 사무실을 옮기기 전에는 매주 갔던 수목원이다. 선생님을 따라 손에 손을 잡고 수목원을 견학하러 온 어린이집 아이들이 병아리마냥 예뻤다. 유월이라 다소 더운 날씨인데도 숲으로 들어서니 전혀 덥지 않았다. 우리 부부가 가장 사랑하는 전나무 숲길은 여전히 한적하고 품위가 있었다. 즐겨 찾는 숲생태관찰로와 육림호를 돌아보는데 곳곳에 커다란 송충이가 떨어져 있었다. 연두색을 띤 송충이는 징그럽기는커녕 탐스러웠다. 잡초 전시회를 한다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잡초를 보는 새로운 시각, 잡초에 반하다!’ 그러고 보면 쓸모없고 하찮다며 이름 모를 풀들을 잡초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다. 돌나물과 고들빼기는 나물로 먹고 애기똥풀과 질경이는 예로부터 약용으로 썼다. 사무실 텃밭 옆에 피어 있는 ‘조금은 예쁜 잡초’라고 생각했던 것이 개망초임을 뒤늦게 알았다.

아내와 함께 숲길을 즐겨 걷는다. 작년에는 홍천 은행나무 숲에도 가고 곤지암 화담 숲도 걸었다. 분당으로 이사를 오면서 탄천길을 다시 걷고 있는데 길을 얼마나 예쁘게 가꾸어 놓았는지 세금을 낸 보람이 있다. 호젓하게 혼자 걸으며 자신과 마주하는 기쁨도 좋지만 아내와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즐거움도 크다. 아이들 얘기, 11월이면 태어날 손주 얘기도 하고 우리의 노후 준비와 우리 부부의 꿈, 그리고 우리의 죽음에 대해서도 참 많은 얘기를 나눈다. ‘무조건 빨리빨리’를 외치는 현대의 속도로부터 벗어나 천천히 걸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무척 많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어느 것 하나 예쁘지 않은 것이 없다. 허벅지만 한 잉어들이 사람 소리를 듣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도 장관이고 하늘에 걸린 초승달도 아름답다. 같은 길을 걷지만 한 번도 같은 길이 아니다. 계절과 시간, 날씨에 따라 그리고 내 기분에 따라 매번 다른 길을 걷는 셈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까지 가지 않아도 가까운 곳에 잘 가꾸어 놓은 길들이 많다.

숲길을 걷는 즐거움과 희열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온통 가린 채 눈만 내놓고 도심을 걷는 사람들을 본다. 그런데 맑은 공기를 마시며 푸른 숲길을 걸으면 그것 자체가 바로 힐링이다. 숲이라고 하면 나무와 풀만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그 나무들을 받치고 있는 대지와 땅을 적시는 시냇물, 숲 속을 떠돌아다니는 바람과 새, 벌레, 바위, 미생물까지가 숲인 셈이다.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차지도 덥지도 않은 보드라운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다 보면 행복이 따로 없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700만 년 전부터 숲에서 살았으며 숲으로부터 탈출한 시기가 1만 년에서 5000년 전이라고 하니 결국 인류 역사의 99.9%를 숲에서 수렵과 채취로 살아온 셈이다. 그러니 우리 몸에는 숲을 좋아하는 DNA가 있는 것이다. 나무를 안아보고 잎을 만져보고 꽃향기까지 맡아보면 온몸으로 숲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그 모든 것이 다 공짜이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유모차를 끌고 아이들을 안고 목말 태우고 수목원을 돌아보는 젊은 부부들의 모습이 참 예쁘다. 그들을 보며 태어나지도 않은 손주가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기에 편한 숲길을 미리 탐방해 두었다가 손주들을 데리고 더 자주 숲길을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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