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5월 8일 장 앙리 뒤낭 적십자를 창설한 첫 노벨평화상 수상자

입력 2016-05-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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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환 편집위원

1858년 뒤낭은 자신이 경영하는 제분회사의 수리권(水利權)을 얻고자 북이탈리아로 나폴레옹 3세를 찾아간다. 나폴레옹 3세는 솔페리노에서 사르데냐ㆍ프랑스 동맹군을 지휘하고 있었다. 가던 길에 솔페리노 전투에서 부상한 수만 명의 군인들을 목격한다. 고통을 절규하는 그들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1862년 7월, 제네바로 돌아온 뒤낭은 그때의 참상을 기록한 ‘솔페리노의 회상’이라는 책을 낸다. 그 책에서 그는 ‘부상과 간호를 위해 열성적이고 헌신적인 자원 봉사자들로 평시에 구호단체를 조직할 수는 없을까’를 깊이 고민한다. 뒤낭이 국제적십자위원회를 창설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다름 아닌 솔페리노 전투였던 것이다.

장 앙리 뒤낭(1828.5.8~1910.10.30)은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젊어서부터 다양한 사회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제네바의 빈민촌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고, 1844년엔 기독교 사회운동 단체인 YMCA(기독교 청년연합회) 창설에 참가했다. 이후 은행에 들어가 알제리로 건너갔으며 1853년 사업을 하려고 은행을 그만두고 제분회사를 차린다. 그리고 그를 사업가에서 적십자 운동의 아버지로 변신시킨 운명의 솔페리노 전투를 목격하게 된다.

1862년엔 전시(戰時) 부상자 구호를 위한 중립적 민간 국제기구 창설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 제안은 유럽 각국으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받아 1863년 드디어 국제적십자위원회가 창설된다. 다음 해인 1864년엔 정치, 종교, 이념의 중립성 유지, 국적에 구애받지 않는 구호활동을 원칙으로 하는 제네바 협약이 체결된다.

뒤낭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19세기 최고의 인도주의의 성과물인 적십자사의 탄생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1901년 제 1회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daehoan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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