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4월 21일 덕혜옹주(德惠翁主)-웃을 일이 한 번도 없었던 비운의 마지막 왕녀

입력 2016-04-2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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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권 미래설계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덕혜옹주(德惠翁主·1912.5.25~1989.4.21)는 고종이 회갑 되던 해에 귀인 양씨로부터 얻은 고명딸이다. “회갑 해에 태어난 자식은 그 어버이를 똑같이 닮는다”는 속담대로 덕혜옹주는 고종의 축소판 같았다. 바로 그 전해에 엄비를 잃은 고종에게 왕녀의 탄생은 큰 기쁨이었다. 산모 양씨에게 복녕당(福寧堂)이라는 당호를 내리고, 다음 날 산실에 아기를 보러 갔다, 실록은 왕녀 탄생이 이토록 환영받은 전례가 없다고 적었다.

덕혜옹주는 서녀(庶女)라는 이유로 일제의 제지에 의해 왕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여섯 살이 되어서야 황적에 입적됐다. 열세 살 때는 일제의 요구에 의해 강제로 일본으로 갔다. 여자학습원을 다닐 때, 항상 말이 없고 급우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옹주가 커가면서 슬픔도 같이 커졌다. 순종이 위독해 귀국했으나 일제는 국장 참석을 허락하지 않았다. 생모 양 귀인이 영면했을 때도 귀국했지만 복상(服喪)을 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다. 옹주는 급기야 몽유증 증세가 깊어져 조발성치매증(조현증)이라는 병을 얻었다.

일제는 1931년 쓰시마(對馬島) 도주의 후예인 소 다케유키(宗武志)와 강제 결혼을 시켰고, 옹주는 다음 해 딸 정혜(正惠)를 낳았으나 병이 깊어져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결국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자 이혼했다. 그 후 약 15년간 정신병원에서 지냈다. 1956년 결혼한 딸은 이내 이혼했고, 3개월 뒤 유서를 남기고 일본 남알프스 산악지대에서 실종됐다.

덕혜옹주는 광복한 조국으로 돌아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당시 정부는 귀국을 거부했다. 1962년 귀국했지만 실어증과 지병으로 고생하다 1989년 4월 21일 낙선재에서 77세를 일기로 물기라고는 한 점 없는 박제(剝製)같이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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