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유권자 사표를 내고 싶다

입력 2016-03-29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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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4·13 총선이 겨우 보름 남았지만, 투표할 마음이 전혀 나지 않는다. 대선이고 총선이고 투표권을 얻은 이후 단 한 번도 기권한 적이 없는데, 이번엔 정말 유권자 사표를 내고 싶어진다.

이유는 다 알겠지만, 화풀이든 넋두리든 한번 이야기해보자. 원래 19대 국회에 대한 환멸과 혐오가 하도 커서 현역은 한 명도 뽑아주지 말자는 글을 쓴 바 있다. 역대 국회와 비교할 때 가장 일을 하지 않았고, 부정과 비리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박탈당하거나 자진 사퇴한 의원이 가장 많은 게 19대 국회다.

그런데 20대 국회는 더하면 더했지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여든 야든 공천과정은 절로 욕지기와 넌덜머리가 날 만큼 엉망이었다. 저러고도 표를 달라고 할 염치가 있을까. 이 사람은 왜 공천을 받고 저 사람은 왜 탈락하는 건가? 나라와 국민을 위해 뭘 하겠다는 사람들이 아니라 어떻게든 취직을 하려고 별별 추태를 다 보이는 자들 같았다.

막공천(막장공천이라는 말이 싫다)의 눈대목은 3월 23일에 볼 수 있었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탈당 기자회견에서 한 말을 새겨보자. “정당정치를 뒤로 후퇴시킨 무원칙한 공천의 결정체” “어리석은 공천” “권력이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정당화할 수는 없다.” “권력이 정의를 이길 수 없다.” 그로부터 꼭 8년 전인 2008년 3월 23일에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친박계 후보들이 줄줄이 공천에서 떨어지자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그렇다. 20대 공천과정에서 국민은 속았다. 남에게 속은 사람은 남을 속인다.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는 ‘배신의 정치’ ‘자기 정치’를 하는 사람을 축출하려고 갖은 수단을 다 쓰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눈 밖에 난 사람을 그렇게도 찍어내고 싶다면 공작이라도 치밀하게 하지 시간만 끌다가 오히려 꽃가마를 태워준 꼴이 됐으니 못나도 이렇게 못난 행태가 없다. 완장을 찬 사람들의 때맞지 않는 호루라기 소리만 소란스러울 뿐이었다.

어지럽고 시끄러운 공천의 배후에 ‘알파박’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알파박’은 이번 총선 결과와 내년 대선 이후를 묶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것은 여러 색이 어우러져 조화롭고 기운(氣韻) 생동하는 화폭이 아니다. ‘진실한’ 색깔과 충성심 정체성만 덧칠되는 단색조 화면이다.

야당도 다를 바가 없다. 탈당은 왜 했는지, 탈당을 하고 나서 왜 또 연대나 합당 이야기를 한 건지 모르겠다. 비례대표 구성에서도 여야 모두 도덕성, 품위, 정치적 능력, 전문성은 뒷전이었다. 자기 세력 확대를 위한 영입경쟁만 보여주었을 뿐이다.

이렇게 공천과정에 감동이 없으니 선거가 민주주의의 축제가 되기 어렵다. 아마 최악의 투표율을 기록할지 모르겠다. 깨끗하게 경선 결과에 승복하고, 다른 선거구에 보내주겠다는 당의 호의를 사양한 조윤선 전 정무수석이 돋보이는 정도였다.

정치판이 혐오스럽다 보니 나도 언론인이지만 정치 보도를 하는 언론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옥새투쟁이라니 옥새는 무슨 옥새? 당인(黨印)투쟁이나 도장투쟁이라면 모를까. 셀프공천이라는 말도 자가공천, 자기공천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이러다가 자살도 셀프살해라고 보도할까 겁난다. 그런 식이면 이번 공천은 모두 특정한 사람이나 세력으로부터 다운로드받은 거라고 보도해야 어울릴 것이다.

20대 총선은 선거구 획정부터 늦어지더니 공천에 따른 반발과 혼란으로 정치염증과 선거 거부감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민주시민이 어찌 기권을 할 것인가. 앞으로 남은 기간은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는 기간이 될 것이다. 차선도 없으면 차차선이라도, 중상품도 없으면 하상품이라도 골라야 하는 게 민주시민의 일이며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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