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산은, 기업보다 정부와 먼저 싸워야 하는 이유

입력 2016-02-23 11:50 수정 2016-02-23 11:5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이진우 금융시장부장

현재 상황만 놓고 본다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유동성 위기를 겪는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채권단의 출자전환이 자구안에 포함됐다는 것은 자신보다 더 많은 주식을 가진 이가 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채권을 주식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최대주주가 채권단으로 바뀐다는 얘기다.

채권단이 출자전환을 안 해주면 현대상선은 법정관리가 불가피하다. 채권단이 외면하면 그다음 단계는 법정관리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현정은 회장은 상선의 경영권을 포기해야 한다.

출자전환 때는 경영권을 채권단에 넘기는 것이고, 법정관리 때는 법원에 뺏기는 것이다.

그런데도 현대상선에 대한 산업은행의 입장을 사석에서 들어보면 산은이 언제부터 이렇게 법과 원칙을 준수하는 기관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산업은행은 현대상선의 주채권은행이다. 현대상선의 목줄을 쥔 은행이다.

이런 현대상선은 올해 4월 약 1200억원, 7월 약 2400억원의 공모사채를 이월해야 한다. 그런데 돈이 없어 채권단에 도와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원칙적으로 신규 지원은 없다고 못 박았다. 현대상선의 자구안이 잘 실행되는지를 보고 1분기 내로 채권을 주식으로 바꿔주는 출자전환 정도는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일단은 내버려두겠다는 의미다.

사전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이유는 분명하다.

산은은 현대상선의 주주가 아니다. 채권자일 뿐이다. 따라서 기업에 문제가 발생하면 주인인 현정은 회장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상법에서 정한 대로다.

또 지금은 개입할 단계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현대상선은 단 한번도 은행에 대출 이자를 연체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 기업에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상선이 원하는 자율협약을 통한 채무조정도 당장 받아주기 곤란하다는 쪽이다.

자율협약이 성립되려면 채권자뿐 아니라 비채권협약자, 다시 말해 채권단이 아닌 채권자에게도 다 채무 동결 동의를 받아야 한다.

현대상선이 불굴의 의지로 동의를 받아온다면 한번 자율협약을 검토해볼 수는 있지만, 그 실효성에 산은은 또 의구심을 드러낸다.

조선업황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사업재편안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으면 기업의 영속성이 보장될 수 없다는 논리에서다.

사업적으로 보면 배 빌린 값, 이른바 ‘용선료’ 협상이 포인트다.

현재 용선료가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장기계약 때문에 5배의 가격을 그대로 지불하고 있어서다.

현대상선은 자회사인 현대증권을 팔아 약 1100억원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유동성 위기 해결에 턱도 없다는 게 산은의 입장이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기업을 칼같이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대우조선해양 때도 그랬을까.

대우조선에는 수년간에 걸쳐 유상증자, 출자전환, 신규자금 지원 등을 포함해 총 4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했다.

대우조선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부산·울산·경남 지역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산은이 대우조선을 자회사로 편입한 후 부실이 더 커졌다는 논란은 여전한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유례없는 자금 지원에도 대우조선이 살아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기 정권에서 대우조선 지원 문제가 청문회에 오르내릴 것이란 관측은 이런 이유에서다.

산은이 대우조선처럼 현대상선을 살려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적어도 구조조정에 기준과 철학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에 따라, 정권에 따라 원칙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

산은은 국책은행이니 산은이 추진하는 기업 구조조정은 정부 정책과 무관할 수 없다. 모두가 외면할 때 국책은행은 국익을 위해 나서야 한다. 다만, 원칙을 지키기 위해 때로 정부와 각을 세울 때도 있어야 한다.

국책은행이 가져야 할 자긍심을 버려서는 안 된다.

정권을 의식한 정책적 판단은 정권이 바뀌면 부메랑처럼 돌아와 자신의 목을 칠 수 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지난해 가장 잘 팔린 아이스크림은?…매출액 1위 공개 [그래픽 스토리]
  • 개인정보위, 개인정보 유출 카카오에 과징금 151억 부과
  • 강형욱, 입장 발표 없었다…PC 다 뺀 보듬컴퍼니, 폐업 수순?
  • 큰 손 美 투자 엿보니, "국민연금 엔비디아 사고 vs KIC 팔았다”[韓美 큰손 보고서]②
  • 항암제·치매약도 아닌데 시총 600兆…‘GLP-1’ 뭐길래
  • 금사과도, 무더위도, 항공기 비상착륙도…모두 '이상기후' 영향이라고? [이슈크래커]
  • "딱 기다려" 블리자드, 연내 '디아4·WoW 확장팩' 출시 앞두고 폭풍 업데이트 행보 [게임톡톡]
  • '음주 뺑소니' 김호중, 24일 영장심사…'강행' 외친 공연 계획 무너지나
  • 오늘의 상승종목

  • 05.23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4,398,000
    • -2.58%
    • 이더리움
    • 5,280,000
    • +2.05%
    • 비트코인 캐시
    • 678,000
    • -2.8%
    • 리플
    • 734
    • -0.27%
    • 솔라나
    • 238,800
    • -4.17%
    • 에이다
    • 649
    • -2.55%
    • 이오스
    • 1,141
    • -3.06%
    • 트론
    • 160
    • -4.19%
    • 스텔라루멘
    • 151
    • -1.95%
    • 비트코인에스브이
    • 88,500
    • -4.99%
    • 체인링크
    • 22,280
    • -2.37%
    • 샌드박스
    • 613
    • -3.01%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