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이야기-고두심] 어머니, 훗날 제딸로 태어나 주세요

입력 2016-02-01 10:35 수정 2016-02-0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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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꽃보다 아름다워’에서 가족을 위해 한 평생 희생하고 치매에 걸렸지만 자식들에게 끝까지 부담 주지 않으려는 우리시대의 어머니를 연기한 고두심.
▲드라마‘꽃보다 아름다워’에서 가족을 위해 한 평생 희생하고 치매에 걸렸지만 자식들에게 끝까지 부담 주지 않으려는 우리시대의 어머니를 연기한 고두심.

며칠 있으면 설이군요. 하늘에 계신 어머니를 한번 불러 봅니다. 참 많이 보고 싶습니다. 좋은 일이나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어머니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기쁨은 배가 되고, 슬픔은 반으로 줄어들기 때문인가 봅니다. 어머니는 살아서는 저를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하셨고, 돌아가셔서는 하늘에서 무언의 응원으로 항상 지켜주고 있으시니까요.

KBS 주말극 ‘부탁해요, 엄마’로 지난해 12월 31일 ‘2015 KBS 연기대상’에서 과분한 대상을 받고 보니 또 어머니가 생각나네요. 그것도 자식들 억척스럽게 키우다 병들어 죽는 엄마 역을 연기한 것으로 수상하니 더욱 그래요.

제가 연기대상을 받을 때마다 어머니와 관련된 소감을 말한 것은 연기자 고두심, 그리고 오늘의 고두심은 모두 어머니의 힘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1989년에 처음 KBS 연기대상을 수상할 때 “어머니! 제가 해냈어요”라고 수상 소감을 말했지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기자가 될 때부터 단역을 전전하며 힘들 때 말없이 손을 잡아주면서 “내 딸은 잘할 수 있어”라는 말로 저를 지켜주신 어머니에게 정말 감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온몸으로 절감했기에 2004년 KBS 연기대상을 수상하며 “나는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어머니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어머니의 힘은 위대합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를 사랑합니다”라고 했지요.

어머니만 생각하면 왜 이리 미안하고 가슴이 아려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연기자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도, 연기대상을 받을 수 있는 것도 다 어머니의 희생 덕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요. 어려운 형편에 7남매를 키우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제주 해녀의 삶의 자세를 보게 됩니다. 한 번 자맥질에 얼마나 오랫동안 호흡을 끊고 견디느냐가 가족의 생계와 직결되는 제주 해녀의 삶처럼 어머니도 억척스럽게, 그리고 강하게 살아오셨지요.

여자가 섬을 나가는 것도 쉽지 않은데 거기에 부정적인 인식이 많은 연예인이 된다고 했을 때 집안에선 난리가 났지요. 하지만 어머니는 말리지 않고 뭍으로 나서는 저의 손을 묵묵히 잡아주셨지요. 그 손길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따스한 어머니의 손길을 제 가슴이 늘 기억하기에 힘든 것을 잘 견딜 수 있었지요. 연기자로서는 늦은 나이인 스물네 살에 MBC 공채 탤런트로 나서 가정부, 호스티스 등 단역을 전전하고 그나마 배역도 없이 녹화장 주변을 서성거리는 신세를 면치 못해 무역회사 경리 생활을 병행해야만 했을 때에도 어머니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제 단역 연기가 최고라고 말씀하셨지요. 처녀 때도 늘 아줌마, 할머니 역을 해 근사한 멜로드라마 주인공 한 번 못한 저에게 어머니는 “동네 어른들이 좋아하신다. 열심히 해”라며 격려를 해줬지요.

이런 어머니의 묵묵한 지지가 없었다면 ‘전원일기’ ‘춤추는 가얏고’ 등 수많은 드라마 등을 통해 수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연기대상을 수상하는 것도 불가능했겠지요.

어머니는 제 인생의 버팀목이기도 하셨지요. 제가 22년간의 결혼 생활 끝에 이혼할 때 어머니의 가슴은 피멍이 들었을 텐데 제 걱정이 먼저였어요. 저도 연예인이기 전에 사람이잖아요. 여자이고요. 많이 힘들어 울기도 했어요. 그때마다 저를 일으켜 세운 건 어머니였어요. 자식 눈에서 눈물이 나면 어머니는 피눈물을 흘리고, 자식 속이 상하면 어머니 속은 썩어 문드러지잖아요.

소설가 황석영씨가 과찬했지요. “고두심은 삶과 연기가 일치되는 이 시대의 최고로 아름다운 어머니”라고요. 그런 삶을 살라는 격려로 받아들여요. 그런 격려를 받을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렇게 살아온 어머니의 삶을 닮으려고 했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자식을 키우고 결혼을 시키면서 어머니의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제 어머니만 그러셨겠어요? 이 땅의 모든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그런 존재일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머니를 생각하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용기를 얻고 아무리 어려워도 엇나가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얻는가 봐요.

‘어머님/ 꿈에 보는 어머님 주름살을/ 말로 하려면 목이 먼저 메이고/어머님/ 꿈에 보는 어머님 주름살을/ 그림으로 그리려면 눈앞이 먼저 흐려집니다’라는 전봉건 시인의 시(‘뼈저린 꿈에서만’)처럼 어머니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는가 봐요.

올 설에 하늘에 계신 어머니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어요. 제가 출연한 영화 ‘엄마’의 마지막 대사예요. “훗날 어머니가 꼭 제 딸로 태어나세요. 어머니가 저에게 한 것처럼 제가 어머니에게 할게요.” 대사처럼 정말 그렇게 하고 싶어요. 평생 저에게 모든 것을 희생한 어머니에게 다음 생에는 제가 그렇게 해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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