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작은 결정이 그리 어려웠다

입력 2015-10-27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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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호 OGQ 의장

뉴욕에서 워싱턴D.C.를 향한 지 약 2시간쯤 경과해 살렘 운하를 통과해 델라웨어(미국 오하이오주 중부에 있는 도시)에 진입하기 전이었을 것이다. 텀블러의 존 말로니 회장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데이비드 카프 대표와 만나 텀블러의 아시아 사업을 OGQ와 진행하는 것에 대해 들었고, 이와 관련해 오후 5시께 만나자는 것이었다.

수차례 이메일을 보내도 텀블러의 카프 대표는 회신이 없었다.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텀블러가 있는 뉴욕 한 건물의 1층 로비에서 무작정 기다리기 시작했다. 손에는 OGQ 김무궁 대표가 개발해 둔 ‘텀블러 안드로이드 버전’이 있었다. 로비를 계속 서성이자 새하얀 눈동자의 여성 경비원이 나를 불렀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면 건물 밖에서 대기하라고 했다.

혹독한 바람이 부는 뉴욕의 거리에서 기다리느니, 위풍당당 체구의 이 여성을 설득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왔고, 텀블러의 카프와 만나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메일에 회신이 없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니, OGQ가 만든 안드로이드 버전의 텀블러를 한번 봐 달라고 청했다. 두툼한 검은 손으로 텀블러 모바일을 여러 번 살피더니 대뜸 말을 건넸다. “데이비드는 점심경에 보통 회사에 출근해요. 우선 올라가서 다른 사람을 만나보는 게 어때요?”

2011년 10월 27일. 그렇게 해 결국 데이비드를 만나 OGQ가 만든 모바일 텀블러를 보여줬다. 그리고 중국·일본·한국 시장을 위해 OGQ와 합작하자는 뜻을 전했다. 39명이 일하던 텀블러 구성원 중 안드로이드 폰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조슈아라는 CTO(최고기술책임자) 1명이었다. 그마저 테스트 폰이었다. 데이비드와 조슈아는 텀블러 안드로이드 버전을 신기하게 살피며 아시아 시장을 함께 해 나가자는 제안에 즐거워했고, 말로니 회장과 상의하고 답변을 주겠다고 했다. 살렘 운하를 지나던 순간 수신한 존 말로니의 메일은 바로 그 논의를 위해서였다.

‘뉴욕으로 차를 돌려?’ 이미 4시간 넘게 호텔방에서 혼자 기다리다 뒷좌석에서 잠든 아들의 모습에 고민이 됐다. 얼마 만의 여행인데 또 기다리게 한다는 것이 강한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이미 워싱턴D.C.를 향해 출발했으니, 이메일로 얘기하면 어떻습니까?’

결국 텀블러는 2013년 5월 20일 야후에 1조2000억원의 가치로 매각됐다. 그렇게 OGQ에 다가온 기회는 봄바람 휘날리듯 스쳐 지나갔다. 그때 살렘 운하에서 차를 뉴욕으로 돌렸다면, OGQ는 달라졌을까?

당시엔 그 작은 결정이 그리 어려웠다. 돌이켜 보면 다른 선택이 보이건만, 그 시간을 뛰어갈 때는 넓게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툭툭 털고 일어나 달려가고 있는 것은 살아 있고 열정을 잃지 않는 한 기회는 다시 온다는 분명한 사실 때문이다.

이 시간 더 좋은 서비스를 위해 고뇌하고 매진하는 많은 스타트업들의 운명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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