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원에서 50억까지.. '천차만별' 형사 사건 성공보수 사라진다

입력 2015-07-2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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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사는 허모 씨는 부친이 절도 사건으로 구속되자 조모 변호사를 찾아가 사건을 맡겼다. 허씨는 착수금으로 우선 1000만원을 지급하고, 부친이 석방되면 사례금을 지급하는 내용이었다. 얼마 후 허씨는 조 변호사에게 1억원을 지급했다.

이후 허씨의 부친은 보석허가로 풀려났지만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고, 항소심에서 형이 확정됐다. 허씨는 조 변호사에게 지급한 1억원이 너무 과다하다고 주장하며 돈을 돌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조 변호사는 "석방에 대한 사례금을 먼저 받은 것이고, 부당하게 과다한 금액도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반환을 거부했고, 허씨는 소송을 냈다.

앞으로는 형사사건에서 이러한 '착수금+성공보수' 구조에서 유발되는 다툼이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형사사건에서 변호사와 의뢰인이 성공보수를 정하는 계약은 공서양속에 반하는 것으로, 무효"라는 첫 판결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23일 의뢰인 허씨가 조 변호사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소송 상고심에서 성공보수 1억원 중 4000만원을 돌려주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판결로 앞으로 형사사건의 성공보수 계약을 체결할 수 없게 돼 변호사업계의 수임료 체계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 대법원, "형사 사건은 민사와 달라… 성공보수 지급하는 것은 도덕 관념에 어긋나"

재판부는 "변호사가 대가로 받는 보수는 의뢰인과 자유로운 합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형사소송권은 국가형벌권을 실현하는 절차로써 변호사의 공공성과 윤리성이 절실히 요구된다"며 "형사사건에 대한 변호사의 보수는 단순히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대가 수수 관계로 맡겨둘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성공보수 약정이 '공서 양속이나 사회질서에 반하기 때문에 무효'라고 보는 근거로 △변호사가 성공보수를 받기 위해 직·간접적으로 수사나 재판 담당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할 수 있고 △ 의뢰인도 변호사가 부적절한 방법을 사용해 사건의 처리결과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할 가능성이 있으며 △성공보수가 정당한 수사나 재판결과도 마치 부당한 영향력 행사로 인한 성과인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 위험이 있고 △ 의뢰인이 구속돼 있거나 형사처벌 될 지 모른다는 불안한 상황에서 대한 과다한 성공보수를 약정할 위험이 큰 점 등을 들었다.

■ 500만원에서 50억까지… 변호사 업계 성공보수 '천차만별'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판·검사 출신이 아닌 보통 변호사의 경우 착수금 200~500만원을 받고 형사사건을 수임하고, 이후 무죄나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내면 500만~1000만원 정도의 성공보수를 받는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액수는 사건의 성격과 의뢰인의 경제능력에 따라 천차 만별이다. 당연히 법원과 검찰 출신 변호사인 경우는 성공보수도 그만큼 올라간다. 과거 한 재벌총수가 횡령과 배임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을 때 한 고등법원 출신 변호사는 50억 원, 대형 로펌에는 100억원 대의 보수를 받기로 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퇴임하자마자 한해에 200억원대 수입을 올려 '전관효과'를 톡톡히 누린 사례도 법조인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는 사례다.

이번 판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최성식(46·사법연수원 33기) 변호사는 "전관 변호사들이 그동안 실질적으로 하는 일 없이 수임료 인플레를 부추겨 변호사시장의 '명품백' 같은 역할을 했다"고 표현했다.

전관 변호사들이 사건을 맡아 결과가 나쁘면 착수금만 받지만 결과가 좋을 경우 자신들 덕으로 돌리고 거액의 성공보수를 챙기는 일종의 '겜블적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최 변호사는 "미국에서는 변호사들도 실체적 진실 발견에 기여하는 당사자로 인정을 받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 재판부가 형사사건에서 변호사를 믿지 못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며 "변호사가 (성공보수를 포기하는 대신)공적인 지위와 독립성을 보장받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 변호사업계 반응 엇갈려… "돈없으면 변호사 선임 못하게 될 것" vs "부당한 관행 바꿔야"

서초동의 한 유명 변호사는 "국민 입장에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성공보수였는데, 이번 판결로 착수금만 올라가게 생겼다"고 우려했다. 앞으로 한꺼번에 거액의 착수금을 지급해야 하는 만큼 돈 있는 사람들은 대형로펌으로, 없는 사람들은 국선변호인을 선임하게 되는 '양극화 현상'이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성공보수가 사라지는 만큼 동기부여가 안돼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 변호사가 늘어나 변호사-의뢰인 간 분쟁이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의뢰인 입장에서도 예전보다 큰 돈을 맡기면 나쁜 결과가 나왔을 때 불만이 더 클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최성식 변호사는 "변호사 수가 예전보다 크게 증가한 상황에서 착수금이 많이 올라가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며 "착수금이 올라가 의뢰인이 변호사를 구하는 데 진입장벽이 될 것이라는 것은 기우"라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송기호(52·30기) 변호사도 "대형로펌은 여전히 기업이나 고소득자 위주의 서비스로 갈 것이고, 저소득층 시민들은 국선변호사를 찾겠지만 중간층 수요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변호사들이 문턱을 낮추면 의뢰인이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 대법원, "이미 체결된 성공보수 약정은 유효… 판결 이후에는 무효"

대법원은 그러나 이미 체결된 성공보수 약정은 무효가 되지는 않는다고 봤다. 다만 이번 판결을 통해 성공보수 약정이 무효라는 것을 밝혔는데도 향후 계약이 체결된다면 무효가 된다는 게 이번 판결의 내용이다. 실제 이번 소송을 낸 허씨도 이미 체결한 성공보수 약정에 따라 지급된 1억원 중 6000만원은 돌려받지 못했다.

이 부분은 대법원이 현실적인 고려를 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 민법상 계약이 무효로 되면 특정 시점부터 무효가 아니라 원래부터 무효인 게 원칙이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로 기존에 성공보수를 지급한다는 수많은 계약을 모두 무효로 만든다면 수임료가 문제되는 분쟁이 폭주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대법원이 판결을 하면서도 무리가 있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며 "무효라고 하는 건 원래부터 무효인 것인데, 왜 앞으로만 무효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고, 장래적으로 무효라고 해도 이미 계약을 체결한 의뢰인들도 성공보수를 주지 않을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성공보수 문제를 공론화해서 여러 의견을 반영한 뒤 입법으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한데, 대법원이 해석론으로 결론을 지은 점은 아쉽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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