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자아성찰

입력 2015-04-13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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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현직 검찰총장과 함께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기자들이 모인 자리다 보니, 검찰의 공보업무가 화제가 됐고 총장은 한 지방검찰청 차장검사와의 일화를 꺼냈다.

차장검사 중 한 명이 '기자들이 이러이러한 사실이 맞느냐고 묻는데, 긍정을 하건 부정을 하건 결국은 피의사실을 공표하게 된다'는 하소연을 하더라는 것이다. 총장은 '야 이 촌놈아, 서울에서는 원래 다 그렇게 해. 아닌 건 부인하면 되고, 맞는 건 답변해줄 수 없다고 하고. 다 그렇게 하는 거지 뭘.' 이렇게 면박을 줬다는 이야기다.

언론의 펜은 검찰의 칼보다 앞선다. 그 중에는 합리적인 예측이나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근거로 한 것도 있지만, 근거가 약한 상태에서 나가는 추측성 보도도 많다. 이렇게 나간 보도는 확대·재생산 된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 절차도 거치기도 전에 이미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검찰이)제 마누라와 아들까지 뒤져가면서 가지치기를 했다'며 하소연했다. 검찰은 기소 전 단계에서 혐의액수를 언급하기도 했다.

성 전 회장이 결백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누가 묻는다면 혐의사실 중 상당 부분이 사실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피의사실이 유출되고, 이 내용이 부풀려지는 게 정당한가는 다른 문제다. 아무리 심지가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버티기가 힘들다. 배짱 좋게 정면 돌파하는 스타일로 정치를 하던 전직 대통령도 이런 상황을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동안 변한 건 아무 것도 없다. 여전히 검찰은 흘리고, 언론은 확대·재생산한다. 누구나 그게 잘못됐다는 걸 알지만, 조직의 이해 관계 속에서 개인은 무기력하다. 검찰에 화살을 돌리기 전에, 나부터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되짚어 본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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