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징비록‘ 코드읽기

입력 2015-03-2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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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경제국장 겸 정치경제부장

요즘 KBS 주말 드라마 ‘징비록’을 보는 재미에 흠뻑 빠져 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필자도 마찬가지. 사극이라면 태생적으로 담 쌓고 사는 젊은이들도 토요일, 일요일 밤이면 중년의 필자와 마찬가지로 채널을 자기도 모르게 이쪽으로 돌린다 하니 실로 대단한 드라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토록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걸까. 그건 바로 드라마가 전하는 ‘가슴 후벼 파는 울림’ 때문이다. 가히 위인다운 한 성현의 잔잔하지만 크나큰 울림 말이다.

더 의미 있는 건 드라마 ‘징비록’의 인기가 하늘 높이 치솟으면서 원작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도 우뚝 치솟은 점이다.

원작 ‘징비록’은 임진왜란 당시 전시 총사령관 격인 영의정 겸 도체찰사였던 서애 류성룡이 그 혹독하디 혹독한 전쟁 7년을 온몸으로 버텨낸 뒤 뒤 집필한 전란의 생생한 기록이다. 국정 최고의 요직에 있으면서 전란의 현장에서 목숨이 오늘내일 하는 조선을 이끌었던 그였기에 누구보다 임진왜란의 참혹함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류성룡이 의도했든, 아니든 이 책이 전하는 절절한 메시지는 그냥 허투루 넘기기 어려운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원작 ‘징비록’과 관련해서 필자가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건 바로 이 기록을 쓴 사람이 류성룡이란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류성룡은 전쟁의 모든 권한뿐만 아니라 책임까지 오롯이 짊어지는 영의정이었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불귀의 객이 된 사람과 집과 전답 다 잃고 피란민이 돼버린 사람이 얼마나 많았나. 범인 같으면 기록 하나 남기더라도 변명으로 철철 넘치는 뭔가를 남겼을 터. 그런데 류성룡은 전혀 반대다. 후세에 교훈을 남기고자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 글을 남겼다. 자신의 과오조차 거울처럼 투명한 눈으로 혹독한 비판의 칼을 가하는 그의 모습에서 서늘한 공포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건 제대로 된 뇌를 가진 사람이 아닐 것이다.

또 하나 우리에게 깊은 교훈으로 다가오는 것은 다른 파벌에 대해 기꺼이 정치적 파트너로 인정해준 그의 아량이다. 사실 누구도 늘 자신에게 반대 깃발만 높이 흔들었던 사람을 정치 파트너로 인정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달랐다. 반대한 사람도 인정했다. 그가 항상 하는 말이 “서인(반대파)도 배제하면 안 된다”라는 것이었다는 점은 그의 넓고도 넓은 아량을 기꺼이 웅변해준다. 또한, 세자를 세울 것을 주청했다가 임금 선조의 미움을 사서 귀양을 떠난 반대파 서인의 영수 정철에 대해 동인들은 죄다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지만, 그만은 유화적인 스탠스를 취했는데, 이 역시 상대를 한 정치 정파로 인정해주는 그의 소신과 무관하지 않다. 이 일로 인해 동인은 강경파 북인과 온건파 남인으로 갈렸지만 이런 연원이라면 갈라서더라도 이를 두고 분파주의라 비난할 순 없을 것이다.

백성에 대한 애틋한 사랑도 류성룡이 ‘징비록’을 통해 전하는 중요한 교훈이다. 류성룡은 당시 특히 폐단이 컸던 공납 대신 토지 면적에 따라 쌀로 받는 작미법을 시행했다. 작미법은 이이가 주장한 대공수미법을 손본 것으로 후일 대동법으로 이어진다. 나아가 사노비도 군역을 지도록 하고 공을 세우면 면천과 벼슬을 보장했다. 류성룡은 백성을 위한 시책이라면 당시 매우 혁명적이라고 저어할 수 있는 것도 마다치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작금의 정치인은 어떤가. 류성룡처럼 아름다운 정치인은 없고 죄다 추악한 인간밖에 없다.

우선 지금 정치인은 자기가 전적으로 책임질 일이 있어도 한 번도 자기 책임이라고 흔쾌히 인정한 적이 없는 족속들이다. 더 황당한 건 책임을 인정하기는커녕 상대에게 돌리는 이들의 태도다.

아울러 더 안타까운 게 있다. 현재 정치인 그 누구도 반대편을 정치를 함께하는 파트너로 인정한 경우가 없다. 그냥 저 자는 우리와 한배를 탈 수 없는 인간이라는 식으로 상대를 철저히 배제해버릴 뿐이다. 이 점에선 여당도, 야당도 한 치의 예외 없이 똑같다.

현재 정치인을 보며 가장 섭섭한 대목은 이들 그 누구도 국민에게 일말의 사랑이라도 준 적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선거 때는 국민에게 자기 자식까지 바칠 거 같이 하지만 그것도 단지 그때뿐이다.

물론 한국이란 지극히 비정상적 사회에서 정치해야 하는 정치인들의 고충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리고 정치인 가운데 존경할 대목이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한국 정치가 좀 더 소망스런 무언가가 되길 바라는 범인의 소소한 희망을 대변해 조금 쓴소리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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