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로 산다는 것]1000대 1 뚫었는데… 사표 던진 그들

입력 2015-02-2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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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올해 SBS는 두 명의 아나운서를 공개 채용했습니다. 몇 명을 채용할지 미리 결정하지는 않았지만 결과는 남녀 각각 한 명이 선발됐습니다. 단 두 명을 선발했는데 2000명이 넘는 인원이 응시를 했으니 경쟁률이 1000 대 1이 넘은 셈 입니다.’ SBS 박상도 아나운서가 지난해에 썼던 자유칼럼에 기고한 ‘아나운서 되기’ 칼럼의 일부다.

#2.‘오정연 KBS 아나운서가 지난 2월 5일 사직했다.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활동할 오정연 전 아나운서와 2006년 함께 입사한 KBS 32기 아나운서인 최송현, 전현무, 이지애 역시 방송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배국남 닷컴의 최근 기사 중 일부다.

사뭇 상반된 두 개의 풍경은 오늘의 아나운서 위상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장예원이 2012년 SBS 아나운서 시험에 19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것에서 잘 드러나듯 KBS, SBS, MBC 등 주요 방송사 아나운서 시험 경쟁률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만큼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그런데 KBS, MBC, SBS 등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타 아나운서들 상당수가 경제적 이유나 방송활동 영역, 조직문화, 아나운서의 역할 변화 등으로 인해 방송사를 박차고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나서고 있다.

아나운서의 역사는 한국 방송 역사와 궤를 함께한다. 우리 방송 사상 최초의 아나운서로는 1930년대 라디오 방송인 경성방송국에서 활약한 김영팔, 박충근 등을 들 수 있다. 박충근은 최초로 스포츠 중계 방송을 담당해 눈길을 끌었다. 최초의 여자 아나운서로는 김문경, 최정석 등을 들 수 있다. 1961년 KBS를 시작으로 TV 시대가 열리면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MBC TV 임택근 아나운서 등 스타 아나운서들이 속속 배출되며 스타 연예인을 능가하는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다. 1970~80년대 차인태, 변웅전, 김동건 등은 교양 프로그램에서부터 예능 프로그램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나서 눈길을 끌었다. 또한 1970년 10월 앵커 시스템을 도입한 MBC ‘뉴스데스크’ 등 방송사 메인 뉴스 프로그램에서 신은경, 백지연, 김주하 등 여자 아나운서들이 남자 기자 앵커와 호흡을 맞추며 유명인 스타 반열에 올랐다. 이후 1990년대 손석희, 정은아, 이금희부터 최근의 장예원 아나운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아나운서들이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스타 방송인으로 부상했다.

“1950년대까지는 방송이 곧 아나운서였다.” ‘아나운서 통사’를 저술한 김성호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의 말에서 알 수 있듯 한국 방송사의 초창기에는 아나운서는 방송에서 진행부터 제작까지 주도적 역할을 했고 이후 TV시대가 열리면서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송의 간판 역할을 해왔다. 또한 아나운서는 바른 한국말의 전령사로서 역할도 톡톡히 했다. KBS 강성곤 아나운서는 “현재 언론에서 보도하고 있는 것은 아나운서의 일부분이다. 아나운서는 프로그램 이면에서 보이지 않는 중요한 역할이 많다. 아나운서는 바르고 정확한 우리말을 바탕으로 뉴스, 교양, 오락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이다”고 했다.

1990년대 들어 연기자, 가수, 예능인 등 연예인들이 프로그램 진행을 독식하고 기자들이 뉴스 프로그램을 주도적으로 이끌면서 아나운서는 설자리가 좁아지고 과거에 비해 역할이 크게 협소해졌다. 또한 1995년 케이블 방송 개국으로 인해 활동 범위가 넓어지면서 방송사 아나운서들의 프리랜서 선언이 잇따랐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이계진, 원종배, 정은아, 이금희, 정지영, 박나림, 임성민, 왕종근, 손범수, 진양혜, 최은경 등이 속속 방송사를 떠나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한때 주춤하던 방송사 아나운서의 프리랜서 바람은 최근 들어 더욱 거세지고 있다. KBS 전현무·이지애·오정연, MBC 오상진·서현진·최현정, SBS 윤영미 등 수많은 아나운서들이 프리랜서로 나서고 있다.

스타 아나운서들이 안정된 방송사를 박차고 나오는 이유는 방송사에서의 아나운서의 입지와 역할이 갈수록 좁아지는데다 JTBC를 비롯한 종편 등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많아지고 경제적인 수입도 많이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임성민, 최승현처럼 연기자로 활동하는 등 아나운서 때 하지 못한 새로운 영역에서의 활동도 자유로이 할 수 있다는 점도 스타 아나운서들의 탈 방송사행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와 함께 다양한 스포츠 전문채널이 생기고 방송사의 장르별 전문 분야를 주로 맡는 아나운서가 생기면서 아나운서의 전문화, 세분화가 가속화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나운서의 위상 하락과 역할의 협소화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아나운서협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아나운서의) 전문가의 의식, 전문가 윤리, 전문가 책임의식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고 그에 따라 실천의 수행성을 평가하기에 집단 단속의 힘, 결속은 크게 부진한 반면 개인별 특이성이 더욱 뚜렷하게 가속되고 있다. 의식과 의지로 붙들어 매왔던 아나운서계의 단일사회의 신화가 깨지고 말이 아닌 그림(영상)의 문법이 지배하는 뉴미디어, 디지털의 새로운 사회적 환경 속에서 아나운서들은 직위의 급격한 추락을 경험한다. 자본이 경영하는 스타 시스템의 유혹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신분위기의 압박으로부터 아무도 자유롭지 않다”고 주장했다.

1000~2000 대 1이라는 엄청난 경쟁률에서 알 수 있듯 대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 중 하나가 아나운서다. 하지만 방송사의 스타 아나운서들은 속속 방송사를 떠나고 있다. 두 가지의 상반된 모습이 방송사 아나운서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배국남 기자 kn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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