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형근의 거리와 사연들] 신길동인데 왜 보라매역일까?

입력 2014-12-1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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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7호선 보라매역은 행정구역상 영등포구 신길동 혹은 신풍로에 속하지만, 역명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1974년 8월 15일. 수도권의 혈관이라 불리는 지하철이 처음 개통한 날입니다. 이후 40여년 간 지하철역은 서울 도심 곳곳에 자리 잡게 됐죠.

한국의 첫 지하철은 서울시 1호선(구 종로선) 서울역~청량리 7.8㎞, 9개역, 전동차 60량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십년의 세월과 함께 9개 노선(중앙선 제외)에 300개역 이상의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하루에만 약 718만명이 지하철을 애용합니다.

산지나 외진 곳을 제외하곤 서울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지하철역. 그러나 간혹 의문이 들 때도 있습니다. 역명 가운데 보라매, 애오개, 노들 등 다소 생소한 단어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지명과도 상관없이 말이죠.

한 예로 7호선 보라매역은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508(신풍로 113)번지에 속합니다. 근방에 영등포역, 신길역, 신풍역 등이 있어서인지 몰라도 역명에서 영등포구, 신길동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습니다.

이 같은 행정구역과 이름의 차이는 역명을 지을 당시 역사문화 전문가, 국립국어원 등 각 분야의 문헌 참조와 고증을 통해 제정했기 때문입니다. 행정 편의상 지명을 사용하는 게 편하지만, 지역 고유의 특색을 보전하는 조치인 거죠.

실제 역명을 정할 때에는 '옛 지명'을 최우선 순위로 정하고, 다음으로는 고적·사적 등 문화재, 고유명사화된 공공시설 명칭 등의 순으로 정하게 돼 있습니다. 서울시의 설명에 따르면 지하철 역명은 그 어떤 시설물보다 지역 고유의 역사와 특색을 잘 담은 지표로 볼 수 있다는군요.

▲공군사관학교의 옛터인 보라매공원에는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공원 내에 전투기 등이 전시된 '에어파크'가 조성 돼 있다.(사진=뉴시스)

다시 보라매역으로 돌아가 보면 명명의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보라매'는 태어난 지 1년이 안 된 매를 가리키는 순 한글 단어입니다. 현재 우리 공군의 상징으로 불리고 있죠. 1958년부터 1985년까지 이곳에 있던 공군사관학교 덕에 일대 동네가 '보라매'와 친숙했던 것이죠. 아직도 이곳에는 보라매역 외에도 보라매공원과 공군회관 등 '보라매'와 관련된 여러 시설이 있습니다.

보라매역의 명칭이 인근에 있었던 공군사관학교에서 유래됐다면 5호선 애오개역은 그 지역에 내려오는 전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옛날 한성부에서 서소문을 통해 시체를 내보냈는데 아이 시체는 이 고개를 넘어 묻게 했다는군요. 과거 기록에도 애오개역 인근에는 곳곳에 아이 무덤이 있었다는 오싹한 얘기가 적혀있습니다. 이외에도 고개가 아이처럼 작다는 뜻에서 아이 고개, 애고개라 불리면서 '애오개'란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지난 2009년 7월 개통한 9호선 노들역에선 '노들'이란 단어에서 과거 이 근방의 자연생태를 엿볼 수 있습니다. 노량진과 흑석역 중간에 있는 이 역은 과거 노량진 일대가 '노들나루'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노들'은 '백로가 노닐던 징검돌'을 뜻합니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과거 백로들이 뛰놀던 곳이 현재의 노들역 인근이란 거죠.

이외에도 뚝섬역(2호선), 버티고개역(6호선), 까치울역(7호선) 등 순 한글로 된 역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숫자는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미미합니다. 서울 지하철 전체 302개 역 중 29개 역(9.6%)이 한글로 돼 있거나 나루·여울 등 한글을 포함하고 있을 뿐입니다. 나머지 역명은 한자어가 대다수입니다.

한자어 지명이 익숙해져 버린 우리. 신라 경덕왕 한자어 지명이 보급된 이후부터 1500년이 지난 현재까지 우리 인식 속에 한자어는 순 한글보다 고급스러운 상위어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순 한글로 돼 있는 지하철역 이름이 어색하단 게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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