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총의 映樂한 이야기] 잠시 쉬었다가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입력 2014-11-18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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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포스터)
◆'죽음'과 '삶' 사이

점심을 먹고 잠시 카페에 앉아있는데 아버지로부터 짧은 문자가 왔다. 눈뜬 지 한 달 된 우리 집 고양이 '치즈'가 개에 물려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가슴이 턱 막혀왔다.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고작 새끼 고양이의 죽음도 이럴진대 하물며 사람의 죽음은 얼마나 더 기가 막힌 일일까.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는 죽음의 냄새가 배어 있는 영화다. 허진호 감독이 가수 김광석의 영정사진을 보며 이 영화를 떠올렸고 유영길 촬영감독은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다만 영화가 죽음을 쾌쾌하거나 먹먹하지 않게 표현한 데는 이유가 있다. 허진호 감독이 봤던 영정사진 속 김광석은 활짝 웃고 있었고, 40년 동안 카메라를 잡았던 유영길 촬영감독은 마지막으로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어마어마한 유작을 남겼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때 아이들이 모두 가버린 텅 빈 운동장에 남아있기를 좋아했었다. 그곳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아버지도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사라져 버린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피아노와 어우러지는 한석규의 나지막한 나레이션을 들으며 '다시는 이런 영화가 한국에서 나올 수 없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세상은 제트기처럼 빨라졌고 자극적으로 변했다.

개인적으로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씬은 심은하가 세 번째로 사진관에 찾아오는 장면이다. 심은하는 "아저씨 나 여기서 좀 쉬었다 가도 돼요?"라고 물었고 한석규는 "예 그러세요"라고 답했다. 심은하는 "저 지금부터 잘 테니까 말 시키지 마세요"라고 말했고 한석규는 "허허허" 웃으며 선풍기를 틀어줬다. 기가 막히게 로맨틱한 장면이다.

(사진=영화 스틸컷)
◆ '8월의 크리스마스' 음악

흔히 '8월의 크리스마스' 음악을 떠올리면 "지금 이대~애로 잠들고 시~이퍼"라는 한석규의 느릿느릿한 목소리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8월의 크리스마스'에는 이 외에도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음악들이 정갈한 반상처럼 차려져 있다. 기타, 피아노, 관현악 오케스트라 등이 중심이 된 선율들은 중요한 순간마다 산타할아버지처럼 등장해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순간으로 만들어버린다. 함께 스쿠터를 타고 달리던 동네길, 사진관 창을 사이에 두고 치던 장난들, 팔짱을 끼고 귀신 얘기를 하던 밤 등의 순간에서 음악은 영화와 함께 호흡한다.

특히 버스에서 흐르는 추억의 곡, 산울림의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는 영화 '별빛 속으로'에 등장하는 현경과 영애의 '그리워라'처럼 영화 속 기막힌 선곡으로 기억된다. 후에 허진호 감독은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고 밝힌 바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 음악감독은 조성우다. 다소 생소할 수 있겠지만 그의 필모그래피를 들어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약속",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봄날은 간다", "만추" 등.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음악을 고려하지 않은 컷 연결이다. 특히 중간중간 삽입된 브릿지 음악은 갑작스럽게 뚝 끊기거나 애매한 페이드아웃으로 사라진다. 그럴 때면 꼭 큰일을 보고 뒤처리를 제대로 안한 기분이다. 감정을 부추기는 격양된 음악 역시 영화 몰입을 방해하는 약간의 아쉬운 부분이다.

(사진=영화 스틸컷)
◆사진은 '살아있음'의 증거

사진에는 다양한 삶이 들어있다. 우리는 저마다의 사진을 통해 순간을 추억하고 의미를 다진다. 그런 점에서 사진은 살아있음의 증거다. 죽은 사람에게는 아무도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는다. 물론 현장검증사진과 부검사진은 예외다.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된 '8월의 크리스마스'는 사진에 대한 다양한 의미를 우리에게 설명한다. 한 장의 사진에는 따귀 머리에 대한 아가씨의 고집과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향한 마음, 재수 없게 걸린 불법 주차 딱지의 기억, 권투선수의 승리에 대한 소망, 죽음을 기다리는 할머니의 마음 등 다양한 인생이 담겨있다.

편지 한 장조차 전하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 한석규와 심은하를 연결해주는 것도 역시 한 장의 사진이다. 심은하가 초원사진관 앞에서 자신의 사진을 바라보는 순간 흘러나오는 나레이션은 아이러니하게도 조성우 음악감독의 글이다.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삶들처럼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납깁니다."

(사진=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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