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개헌하자 말자 할 자격이나 있나?

입력 2014-10-2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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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네댓 살 먹은 아이들에게 열 조각짜리 예쁘고 간단한 퍼즐을 줬다고 하자. 그리고 먼저 맞추는 아이에게 큰 상을 준다고 했다 하자. 아이들이 어떻게 나올까? 아마 진지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누가 빨리 맞추나 경쟁을 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도저히 풀 수 없는 천 조각짜리 어려운 퍼즐을 줬다고 생각해 보자. 퍼즐은 풀 수 없고 상은 타고 싶은 상황, 이 상황에 아이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어차피 맞출 수 없는 퍼즐에 내 것을 맞추기보다는 상대가 어쩌는가에 더 신경 쓰지 않을까? 그래서 상대가 나쁜 짓을 했다 이르기도 하고, 급기야 퍼즐 조각을 집어 상대의 얼굴을 향해 날리는 짓도 하지 않을까?

누구의 모습인가? 바닥에 떨어진 정책역량에 경쟁이 아닌 싸움만 하고 있는 우리 정당과 정치인의 모습이다. 실제로 우리 정당과 정치권의 역량은 다섯 살짜리 아이만도 못하다. 지역구도로 인한 도덕적 해이에 계파주의, 그리고 비전도 가치도 없이 여론만 따라가는 지도자 등 문제가 첩첩이 쌓여 있다. 여기에 대의민주주의가 갖는 본질이고도 구조적인 한계, 즉 빠르고 전문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문제까지 겹쳐 있다.

이에 비해 이들에게 던져진 정책적 문제들은 몇 천 조각짜리 퍼즐 같다. 대량으로 발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념과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여기에 신속하고도 전문적인 처리를 요하기도 한다. 우리 정당이나 국회의 역량과는 거리가 멀다.

문제를 풀 능력은 없고 권력은 탐이 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별 수 있나. 푸는 척하며 상대방 비방이나 하는 것이 상수다. 또 퍼즐 조각을 싸움의 도구로 쓰는 아이들처럼 경제문제든 안전문제든 손에 잡히기만 하면 상대를 죽이는 수단으로 쓴다. 멀리 갈 것 없이 세월호 참사만 해도 그런 것 아니겠나. 안전을 위한 진지한 고민은 애초에 찾아볼 수도 없었다. 상대를 몰아세우기 위한 수단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런 정치권이 이번에는 개헌문제를 손에 잡았다. 하자는 쪽과 말자는 쪽, 바로 싸움이 붙었다. 하지만 한마디로 가관이다. 이쪽저쪽 할 것 없이 정말 개헌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된다. 결국 정국 주도권 다툼이나 하고, 조잡하고 난잡한 현실 정치의 원인을 잘못된 헌정체계로 돌려 면피나 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개헌 이야기를 하자면 최소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 헌정체계의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하고도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쪽저쪽 할 것 없이 아무리 봐도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경제사회 변화에 대한 인식은 천박하기 짝이 없고 개헌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인식도 없다.

작은 예가 되겠지만 대통령직에 대한 이해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제왕적 대통령’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대통령의 안정적 국정수행 운운하며 4년 중임제 개헌을 이야기한다. 제왕적 대통령이면 그 자체가 ‘지나친 안정’인데 도대체 뭣 때문에 ‘안정적 국정운영’이 또 필요하나.

국회의 권한에 대해서도 그렇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가 분명해지고 있는 상황에 툭하면 개헌을 통한 국회권한 강화 어쩌고 한다. 이 역시 다른 나라들이 의회권한을 종적·횡적으로 어떻게 분산시키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기본이 안 되어 있다.

더 큰 문제는 개헌에 선행되거나 개헌과 같이 가야 할 정치개혁이나 정당쇄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다는 점이다. 정치권 전체의 통렬한 반성과 자신을 죽이는 개혁과 혁신 없이는 개헌을 열 번 백 번 해도 나아질 것이 없다는 사실을 몰라서 그러고 있는 것인가? 국민의 입장에서는 왠지 무슨 철면피 같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힘이 든다.

개헌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반대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어느 쪽이건 생각을 갖추고 하라는 말이다. 이 중대한 시기에, 정말 그렇지 않아도 어렵고 힘든 시기에 퍼즐 조각으로 상대방 얼굴이나 때리는 짓을 해서야 되겠나. 하자고 하건 말자고 하건 제발 똑바로 좀 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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