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비트는 지난 27일 4대 가상자산 거래소가 설립하기로 한 트래블룰 공동대응 합작법인에서 빠지겠다고 돌연 선언했다. 지난 6월 29일 합작법인 설립에 관한 MOU를 맺은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일부 사업자의 연대를 통한 공동 행위로 볼 여지가 있다는 이유였다.
업계 관계자는 “(참여자가) 4개에서 3개로 줄어든 만큼 지분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조율 중”이라며 “업비트가 빠진다고 해도 합작법인 논의가 좌초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업비트는 두나무의 블록체인 연구소 람다256이 개발한 시스템으로 트래블룰에 자체 대응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업비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트래블룰은 국제기구인 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요구하는 사안이다. 가상자산을 송금할 때 송금, 수취기관 모두 관련 정보를 수집·보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트래블룰이 시행되는) 내년이면 거래소 간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유해야 하는데, 왜 업비트가 독자 노선을 걷는다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라며 “본인들의 시스템도 계열사도 있으니 시장을 독점하겠다고 하는 것 같은데 일방적으로 MOU를 파기하는 방식이 옳은지 모르겠다”라고 비판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업비트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80.6%다. 올해 1월 기준 55.8%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이와 관련해 국내 거래정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업비트가 이를 타 거래소와 공유하기 꺼려 합작법인 설립에서 빠졌다는 해석 또한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업비트 관계자는 "독점을 위해 합작법인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며 "합작법인에 지분 참여를 하지 않는 것일 뿐 트래블룰 준수를 위해 필요한 정보 교류나 연동 협력은 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애초 MOU 체결 당시 제일 미적지근했던 게 업비트”라며 “1등 사업자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정보를 노출하기 싫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표준화를 둘러싼 신경전도 업비트의 탈주 이유로 꼽힌다. 업비트와 빗썸은 트래블룰에 대응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에서 이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비트는 자회사를 통해 구축한 람다256을 표준으로, 빗썸은 웁살라시큐리티와 함께 구축한 시스템을 표준으로 삼고 싶어했다는 후문이다.
빗썸 관계자는 "솔루션 관련해서는 거래소들과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웁살라시큐리티와는 관계가 없는 내용"이라고 선을 그었다.
3개 거래소가 합작법인을 유지하는 이유로 민간에서라도 트래블룰에 대응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꼽힌다. 금융위는 9월 24일 가상자산 신고 기한을 두고 트래블룰에 대해 살필 여력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FATF의 트래블룰 관련 내용을 아직 들여다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3개 거래소는 논의가 되레 물살을 탈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어느 정도 특금법에 맞춘 시스템이 갖춰진 거래소만이라도 트래블룰 기준을 구축해둬야 한다고 의견을 모은 상황”이라며 “내년 1월에는 가상자산 과세 이슈가, 3월에는 트래블룰 이슈가 불거질 만큼 논의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