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우리는 모두 디자이너다

입력 2020-04-08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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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현 퍼셉션 대표

당연했던 일상이 당연하지 않게 되고, 문제가 아니었던 것들이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이다. 먹고 사는 일, 주변과의 관계, 즐기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달라지고 있다. 매식으로 일관되던 식습관은 집에서 먹어야 한다니 그 방법에 대해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에게 낯선 재택근무는 사람도 시스템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단 시작해야만 했다. 자발적인 시도나 선택지 같은 아름다운 상황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시시때때로 울리는 경고 메시지를 매번 보기도, 보지 않기도 어려운 매일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대한 해석에도 갑론을박이 보인다. 사람들이 덜 움직이니 자연은 신이 난 듯, 하늘은 더 파랗게 꽃은 더 만발하며 우리에게 그동안의 시간들을 자꾸 되돌아보라 하는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생존을 위해 해야만 하는 일들을 어떻게든 해내야만 하는 상황이 우리의 오늘이다.

모 기관에 연구개발(R&D) 제안서를 제출하고 발표평가 일정을 궁금해 하던 중, 영상으로 대체한다는 안내에 당황스러움은 잠시 접고 아쉬운대로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치를 만들어 내는 데에 집중했다. 현상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조금 더 괜찮은 방향의 대안을 만들어내는 게 익숙한 디자이너들이라 갑자기 닥친 무언가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많이 당황하지 않으니 스스로 대견해 하기도 한다. 가만 보면 꼭 디자이너만 그런 게 아니라 원래 인간은, 특히 우리 민족은 주변을 날카롭게 바라보고 깊게 고민해 무언가 아이디어가 생기면 기민하게 움직여 해내고야 마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지난주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몇몇 지인들이 랜선미팅을 통해 온라인 화상강의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고 긍정적 대안을 찾는 모임을 진행하는 것을 보았다. 한 달 전만 해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 한숨만 가득했던 이들의 대화가 이제 서로를 독려하고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분위기로 변하고 있다.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가 갑자기 바뀌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아니,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팀도 외부 파트너들과 화상회의를 진행하면서 어떤 프로그램이 조금 더 효과적인지,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지, 온라인과 오프라인 미팅의 차이는 무엇인지 계속 고민하고 대안을 실천하는 중이다. 모두가 프로그램 전문가 같고 모두가 UI(User Interface: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이너 같다. 평소에는 자세히 보지 않고 그냥 넘기던 것들을 꼼꼼하게 보게 되니 신기하기도 하고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미충족 욕구에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을 가열차게 하기도,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이상해진 일상에 머리와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듯한 심리적 압박이다. 조금은 느슨해진 타임테이블에 책도 더 읽고 생각할 시간도 더 갖겠다는, 바쁘다는 이유로 멀리했던 근본적인 고민들을 해보겠다는 다짐은 사실 머리로만 할 뿐 조금씩 꼬여버린 프로젝트 때문에, 개학이 늦어진 아이들 때문에, 발이 묶인 답답함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얻는 에너지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등 수도 없이 많은 ‘때문에’ 때문에 불면증을 겪는다. 아마도 가장 큰 걱정은 우리가 당면한 이 시국이 꽤 길어질 수 있고, 끝난다 하더라도 정말 끝나는 게 아닐 수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최근 몇 년간 큰 화두로 떠오른 주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였다. 살만해지니 별 고민을 다한다는 둥 세대의 특성이라는 둥 뭘 그리 답 없는 것을 고민하냐는 의견들도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모두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고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안되는 강제적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빨리’, ‘대충’, ‘일단’, ‘그냥’ 하는 일은 최대한 지양하고 진짜 해야만 하는 것들을 해야 한다. 일을 하다보면 어떤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인지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 늘 생기는데 맥락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지지만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은 ‘본질가치와 의도에 충실한가’, ‘문제를 해결(기능적 대안 혹은 심미적/감성적 대안)하는가’, ‘존재의 이유가 명확한가’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진짜에 조금은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일상과 미래를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만들어야 할 과제를 부여받았다. 어떻게 진짜를 찾아낼 수 있을까.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것들, 쓸데없는 고민이라며 생각 저편(디자인에서는 블랙박스 또는 신뢰 외 구간의 아이디어에서 혁신의 단초를 찾기도 한다)으로 미루어 놓았던 것들을 다시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나와 나와의 관계로부터 가족과 동료 등 주변과의 관계, 현상에 대한 관점, 일을 대하는 자세에서 고민의 가짓수를 조금 줄이고 하나하나를 자세히 보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래야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지켜야 할 것과 바꾸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의 기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줌인만 하기보다 각자의 렌즈를 밀었다 당겼다 하며 멀리 떨어져야만 가능한 객관적인 시각으로도 바라봐야 하겠다.

그저 보기 좋게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일, 생각을 가시화해서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상태로 만드는 것이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더 단단해진다. 필요하다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없애는 일이 디자인일 수도 있다. 지금은, 과시적인 디자인보다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야 할 때이다. 맹목적인 추종이나 지극히 개인적 취향에만 매여 있기보다 프로세스적으로 사고하고 실천해야 지속가능한 일상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우리는 모두 디자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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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현은

크리에이티브 컨설팅 그룹 퍼셉션의 대표로 브랜드경험디자인과 디자인매니지먼트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학부에서는 디자인을 석사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을 전공, 다양한 분야를 연결해 디자인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value creator이자, 집단지성을 활용한 크리에티브 워크숍에서 facilitator로 활동중이다. 플레이스캠프제주의 브랜드경험디자인을 구축하고 현재 크리에이티브디렉터를 맡고 있으며, 할리스커피의 BI와 SI 리뉴얼을 진행한 바 있다.

도시와 사회, 공간에 관심이 많으며 인문학과 심리학에 기반해 인간의 삶에 대해 탐구하고 크리에이티브한 솔루션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내외의 기관, 기업, 대학에서 디자인, 브랜드경험설계, 공간브랜딩과 관련해 다수의 강연 및 세미나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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