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조의 생각] 조영남 대작사건의 핵심은 윤리

입력 2018-11-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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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 교수

조영남 ‘대작(代作)사건’은 항소심에서 무죄로 판단했지만, 전국의 많은 미술단체들이 무죄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제1심 법원은 조영남의 병마용(兵馬俑)이나 화투 그림에서 거의 대부분의 표현작업이 송모 대작 작가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하고, 그림 판매 시 이런 사실을 고지하지 않아 피해자들을 속인 것이라고 보아 사기죄 성립을 인정했다.

그러나 항소심 법원은 화투나 병마용을 소재로 미술작품을 만든 것이 조영남의 고유한 아이디어라는 점을 강조하고, 송모 작가는 보수를 받고 그러한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위한 기술 보조일 뿐이라고 하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일반인들은 화가가 모두 손수 미술작품을 만드는 고독한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조수의 도움을 받아 걸작이 탄생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가까운 동양을 보면, 16세기 남종화의 대가로 알려진 동기창(董其昌)은 대작을 서슴지 않고 심지어 위작(僞作)에도 서명해주면서 돈과 여색을 밝힌 것으로 유명하다. 서양에서는 프랑스 예술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으로부터 소위 개념미술이 본격화하면서 표현보다 아이디어가 더 중요한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앤디 워홀(Andy Warhol)은 공장에서 상품을 만들 듯이 많은 조수를 고용해 아이디어 작품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1962년에 만든 코카콜라 그림은 그 회사의 광고용 디자인과 다를 바 없는데, 미국의 대통령부터 모든 국민이 모두 똑같은 콜라를 마시고 있고 대통령이라고 해서 더 많은 돈을 내고 더 좋은 콜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앤디 워홀의 아이디어에 기반한 작품이다. 앤디 워홀은 뉴욕에서 작업하는 스튜디오의 명칭을 아예 ‘공장(The Factory)’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대작이 미술계의 윤리에 반하는 것인지 여부에 관해서는 논란이 일 수 있지만, 대작 작품을 판매하는 것이 사기죄에 해당되는지의 문제는 조금 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사기죄는 상대방을 속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속이는 행위를 해서 재산상의 이익을 취한 경우에 한해 성립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영남이 대작을 담당한 송모 작가를 단순 조수로 평가하며 노동 가치를 무시하고 편의점 알바 임금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을 강요하는 행태는 윤리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예술계의 ‘갑’이 ‘을’의 노동을 착취하거나 노동 결과를 빼앗아가는 것은 예술계 ‘갑’의 횡포 가운데 아주 심각한 횡포다.

‘갑’에 의한 착취 내지 편취는 예술인 복지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저작권 보호의 문제일 수도 있다. 예술계에서 ‘슈퍼 갑’에 해당되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만든 흥행작 가운데 심각한 표절 의혹이 제기되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MBC 드라마 ‘선덕여왕,’ KBS 2TV의 드라마 ‘아이리스’ 등 몇몇 지상파 드라마는 시청률이 높았던 성공작이지만, 다른 작가의 극본이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무단 도용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소송에서 저작권 침해 책임은 면했으나 드라마 제작에 참고한 ‘을’의 아이디어나 표현에 대한 적절한 보상 내지 출처 표시를 하지 않은 윤리적 비난은 면키 어렵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이용하면서 매입이나 라이선스의 적법한 방법을 선택할 때 비로소 우리 경제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것처럼, 예술계에서도 ‘갑’이 ‘을’의 창의적 아이디어나 표현을 인정해주고 적절한 보상을 하는 관행과 실무를 확립해야 예술 수준이 높아질 수 있다. 조영남 대작 사건을 계기로 예술계의 윤리를 되돌아본다면, 그 핵심은 ‘갑’의 ‘을’에 대한 착취나 횡포를 방지해야 창작 생태계가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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