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기획 도전하는 여성_(16)박소령 퍼블리 대표]“콘텐츠만으론 돈 못번다? 값어치 있는 기록엔 지갑 열죠”

입력 2016-10-13 10:58 수정 2016-10-1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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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북페어·버크셔 주총 등 기존 미디어 담지 못한 생생한 분석

▲ 서울 성수동 카우앤독에 자리잡은 퍼블리 사무실에서 박소령 대표가 자신의 사업과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 서울 성수동 카우앤독에 자리잡은 퍼블리 사무실에서 박소령 대표가 자신의 사업과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미디어 종사자들 사이에서 자조적으로 떠도는 명제가 있다. “콘텐츠 자체로만은 돈을 벌 수가 없다”란 것.

매대(賣臺)에 올린 건 분명 콘텐츠인데 뒷거래를 통해 수익을 올려 생존한다. 콘텐츠는 공짜로 주고 미디어란 플랫폼에 각종 광고를 실어 돈을 벌어왔다. ‘돈 내고 볼 만큼’ 수준 있는 콘텐츠가 없기 때문이란 지적도 함께 나온다.

그렇지만 콘텐츠에 대한 소비욕이나 소비력은 분명 많고, 증가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 공간에선 보인다. 팔딱팔딱 뛰는 생생하고 영양가 많은 콘텐츠들만 골라다가 공유하고 재가공해 유통하는 열정적 움직임을 보면 기존 미디어들의 ‘푸시(push)형’ 콘텐츠 생산과 유통이 얼마나 시장 비친화적인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또한 기존 미디어 콘텐츠라도 뉴욕타임스(NYT)나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많은 경우 기꺼이 돈을 주고 구독을 한다. ‘돈 내고 읽을 만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퍼블리(www.publy.co)가 작년 이맘때 존재를 알리며 매대에 올린 것은 ‘2015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취재 보고서였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콘텐츠 상품을 판다고 했다.

신선함에 끌렸다. 주변에선 아직 보고서를 보지도 않았는데 선뜻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의심많은 나는 관찰자이기만 했다. 기존 미디어나 출판사들도 보고 오는 이 크고 오래된 북페어를 왜 취재하겠다는 것인지, 어떤 정보를 주겠다는 것인지, 그 보고서엔 과연 돈을 내고 볼 만한 콘텐츠가 담길 것인지 등이 모두 궁금했다. 성수동 카우앤독에서 박소령 퍼블리 대표를 처음 만난 건 그런 궁금함을 풀어보기 위해서였지만 만족할 만큼의 답은 얻지 못했다. 퍼블리도 막 실험을 시작한 단계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체 플랫폼을 통해서는 처음이었던 그 프로젝트는 바이럴(viralㆍ입소문)을 일으키고 수익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퍼블리는 곧 공격적으로 계획했던 여러 프로젝트들을 매대에 올리기 시작했다.

프로젝트는 각 분야에서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만한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저자(writer)를 섭외해 진행한다. 저자의 콘텐츠 생산 계획을 소개, 크라우드 펀딩으로 취재 등에 필요한 자금을 모은다. 투자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중에도 가능하고 인기 있을 경우는 기간을 연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소비자이자 투자자가 된 이들의 투자 규모, 성향 등에 걸맞는 상품을 세분화해 내놓는다. 보고서를 출판(publication)해 보내주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투자자도 있지만 마치 펍(pub)과도 같은 분위기의 오프라인 만남에서 저자와 직접 대화하는 것을 원하는 이도 있다. 그래서 개별 프로젝트마다 투자금을 달리해 몇 가지 옵션을 덧붙여 가며 상품을 차별화해 판매한다.

SXSW(South by Southwest),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 칸 국제 광고제와 같은 굵직한 행사들에 저자를 보내 생생한, 그리고 기존 미디어들이 미처 담아내지 못하는 정보까지 꼼꼼하게 담아 투자한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피아니스트 정한빈과의 만남이나 ‘인터넷의 여제’ 메리 미커의 연례 전망 보고서로 도슨트 살롱도 열었다. 최근엔 위기에 처한 조선업이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40년 역사를 짚어보는 보고서도 냈다. 프로젝트 대부분은 더 수준 높은 콘텐츠를 원하고 지적 수준을 높이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제대로’ 건드렸다.

‘2016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프로젝트도 시작됐다. 1년 만에, 마치 대나무 마디 하나가 더 생긴 듯 회사의 정체성이 더 분명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 전 미처 묻지 못했던 아주 기본적인 질문부터 던져봤다. 왜 콘텐츠 사업이었냐고.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컨설팅사에서 경험을 쌓았고 하버드대 공공정책대학원(John F. Kennedy School of Government)을 나온 이 젊고 능력 있는 재원은 왜 이 길을 택했을까. 매일 같이 100m 달리기를 전력질주하는 것처럼 힘들다면서도 반짝이는 눈을 보면 이 궁금증이 일지 않을 수 없다.

답은 단순명료했다. “콘텐츠를 좋아해서”였다.

“읽는 것을 워낙 좋아했어요. 어려서부터 집에 배달되는 종이신문을 꼼꼼히 읽었고 학교 공부보다도 책을 읽는 것이 훨씬 재미있었죠. 경영학을 전공하게 된 것도 결국은 책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내내 이과 공부를 했던 제가 고3 때 서점에서 우연히 ‘하버드 MBA 365일(절판)’이란 책을 보게 됐어요. ‘아, 이런 세계가 있구나’란 깨달음과 함께 엄청나게 매력적인 존재로 경영학이 다가왔죠. 진짜 입학해선 그렇게 재밌지만은 않았지만요.”

‘콘텐츠 포식자’로서의 박소령 대표는 소비만으론 만족을 못 한다. 그래서 퍼블리를 통해 생산과 소비가 공존하는 생태계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혹시 음악회에서 합창석에 앉아 보셨나요? 저는 합창석에 앉았던 경험이 지금 퍼블리를 하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일반 관람석에서는 지휘자의 뒷모습만 보게 되지만 합창석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리고 지휘자의 표정은 어떤지를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거든요. 판이 움직이는 걸 더 내밀하게 들여다본다는 느낌이랄까요. 연주만 들어서는 깨달을 수 없는 걸 깨닫게 되죠.”

저널리스트가 될까를 고민하기도 했다. 대학 시절 읽은 책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저자 토마스 프리드먼은 미래 사회에 꼭 필요한 직업으로 전략가와 저널리스트를 꼽았기 때문이었다. 박 대표는 무엇을 하든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문제를 정의하고 그것을 해결해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 생각했고 컨설팅 업력을 거치며 그것을 익혔다. 무엇보다 이 시기에 퍼블리를 공동 창업한 김안나 씨를 만났으니 다시 돌아가도 꼭 거쳐야 했을 길일 것이다.

“안나 님은 무엇보다 엄청나게 빠르게 콘텐츠를 소비해요. 그러면서도 핵심을 간파해내는 능력이 있죠. 콘텐츠를 통해 사회에 올바른 방향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는 저의 동기에 안나 님의 능력이 결합되면 시너지 효과가 나죠. 저는 여름 휴가로 미국 여행을 떠나면서도 긴급 연락처로 안나 님의 전화번호를 적을 정도로 신뢰합니다. 창업을 한다는 것, 리더가 된다는 것 모두 저에겐 엄청난 도전이었는데 ‘안나 님이 없었더라면’이라는 가정을 하기 어려울 정도죠.”

유학 시절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것도 공공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였다. 석사 논문(Crisis Communication Policy in the Age of Social Media)도 에드 데이비스 보스턴 경찰청장이 2013년 4월 벌어진 보스턴 마라톤 테러 이후 시민들과의 쌍방향 개방형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활발하게 정보를 공유하며 신뢰를 쌓았고, 이를 통해 소통의 리더십으로 위기를 극복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박 대표는 퍼블리가 한국 사회 각 영역의 의사 결정자(decision maker)가 될 젊은 전문가가 모여 있는 지적 플랫폼이 되길 지향한다. 자신은 그들을 모으는 ‘자석’과 같은 사람으로 역할하면서 사회적 영향력을 갖춘 리더로 성장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그가 쓴 단어 가운데 ‘값어치’란 말이 확 들어왔다.

“값어치 있는 기록을 더 활발하고 끈기 있게 만드는 저자와 이를 읽어주는 독자가 계속 존재했으면 합니다. 중요한 이슈와 고민들은 기록으로 남아야 다음 세대에 교훈으로 전수될 수 있습니다. 뉴턴이 ‘거인의 어깨 위에 서라’라고 했다는데 우리는 어깨는커녕 다 땅바닥에 그때마다 새로 쌓아올리고만 있는 것 같아요. 기록을 끈기 있게 만들고 읽고 시장에 자리매김하도록 하는 플랫폼이 저희뿐만 아니라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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