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보는 경제] 노란 병아리떼와 어린 소몰이꾼의 발걸음

입력 2019-03-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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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훈 시인·BCT 감사

어릴 적 이맘때, 봄이면 보았던 풍경이 떠오른다. 오종종 오종종 몰려다니는 병아리떼가 그것이다. 노란 병아리들, 병아리들을 가리개를 열고 풀어놓으면 삐악거리며 흩어져서 모이들을 찾아 나서는데, 그 모습들을 한번 잘 살펴볼 일이다. 절대 여러 마리가 한곳으로 가지 않는 것이다. 제각각 사방으로 흩어져서 모이를 찾는다. 한곳에서 모이를 두고 서로 다투지 않는 것이다. 마당 곳곳에서 서로 영역을 확보하고 모이를 찾는다. 그리고 적당히 배부르면 장난질하거나 햇볕에 몸 풀고 일광욕을 즐기지 배터지게 먹지 않는다. 왜 그럴까.

어린 소몰이꾼의 모습도 있다. 소가 많아서 소몰이가 아니다. 소 한 마리 끌고 풀 먹이러 가는 것이다.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지만 그때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시절 수업이 파하면 집에 돌아와 식은 보리밥 훌훌 물 말아 먹고 야산이나 들녘에 ‘소 풀 뜯기러’ 다녔던 기억을 되새겨 보면 알 것이다. 어린 소몰이꾼은 연속하여 같은 곳으로 가지 않는다.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이런 식이다.

설령 같은 곳에 가 쇠말뚝을 박아 놓더라도 이 소라는 놈이 어제 갔던 곳에는 절대 가지 않는다. 소가 영물(靈物)이어서 그렇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다른 곳에 풀이 없다면 모를까, 한곳만을 집중적으로 뜯어 먹는 소는 없다. 아무리 맛있는 풀일지라도 그 한 장소를 초토화시키지 않는다.

그것은 뜯겨 먹히는 풀에 대한 본능적인 배려일 것이다. 풀에 대한 배려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존본능일 것이다. 풀이 살아야 자신도 살 수 있으니 본능적으로 배려하여 적당히 먹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다.

풀도 그렇다. 소가 다가오면 자신의 운명을 느낀다. 적어도 어느 정도는 소에게 허여(許與)할 각오를 한다. 그런데 그것이 과도하면, 적당한 정도를 넘어서면 풀들도 가만있지 않는다. 생존이 위험하다고 느끼면 간직하고 있던, 쓴맛이 나는 ‘탄닌’이라는 효소를 방출한다. 쓴맛이 나는 풀을 소가 먹을 리 없다.

모이와 먹이를 찾아 어제와 다른 곳으로 가는 것, 어린 병아리도 알고 둔한 소도 알고 개구쟁이 소몰이꾼도 안다.

자연은 그렇다. 방앗간 휠에 걸린 벨트처럼 서로를 연결하면서 그 큰 생존의 고리를 이어가고 있지만, 다들 적당히 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법칙을 일컬어 ‘약육강식’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이는 표면적인 현상일 뿐이며 그것도 지극히 한 부분에 불과한 모습이다.

그럼, 우리네 인간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가.

아파트 입구를 보면 한 집 걸러 치킨집이다. 우리나라 치킨집은 2018년 말 2만5000여 개로 지난 10년 동안 무려 2배나 증가했다. 반면에 최근 5년간의 치킨 소비량은 약 1.1배 늘었을 뿐이다. 치킨 브랜드만도 400개가 넘는다. 온갖 브랜드의 치킨집이 한 아파트 단지에 평균 6곳 이상씩 몰려 있다. 24개의 치킨집이 포진한 아파트도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 매년 7400개의 치킨집이 문을 열고 5000곳이 파산한다.

편의점은 또 어떤가. 자주 들르는 동네 편의점 주인은 말한다. 본인 가게를 포함해 2개뿐이던 편의점이 3년 사이에 4개가 늘어 6개가 되었다고. 자기는 그동안 벌어놓은 게 있어 버티는데 모두 적자일 거라고. 최근 1곳이 폐점했고 다른 2곳도 폐점 소식이 들린다고.

이러다가 치킨집들이 사라져 배달 치킨을 먹을 수 없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또 편의점 대부분이 문을 닫아 ‘불편의점’이 되지는 않을까.

이런 현상이 어디 치킨집과 편의점과 같은 자영업자만의 문제던가. 초과 이윤이 존재하는 부문에 신규 사업자의 진입이 집중됨은 당연하다. 그러나 적정 이윤이 보장되는 수준에서 그쳐야 하건만 우리 욕심은 초과 진입으로 돌진한다. 그리하여 출혈경쟁으로 종국에는 모두 다 쓰러지고 만다. 한곳에 난 풀을 집중적으로 뜯어 먹어 초토화시키는 일과 진배 없다.

서로 조금씩 허여하는 게 자연의 원리이고 삶의 규칙이라면, 자영업자대로 중소기업대로 서로 다른 사업과 다른 서비스를 만들고 창출해서 서로 공존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대기업은 부품 협력업체가 뜯어 먹고 살 풀밭을 적절하게 허락해 공생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노란 병아리떼와 어린 소몰이꾼의 발걸음이 오늘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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