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토마스 리만 주한 덴마크 대사가 말하는 ‘워라밸’

입력 2018-05-04 10:31 수정 2018-05-0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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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삶의 균형…노동인구가 행복해야 기업도 지속 성장”

▲토마스 리만 주한 덴마크 대사는 “한국인의 노동 시간과 업무 강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덴마크인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통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데에는 강력한 사회보장제도가 바탕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토마스 리만 주한 덴마크 대사는 “한국인의 노동 시간과 업무 강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덴마크인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통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데에는 강력한 사회보장제도가 바탕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한국인은 일하는 시간이 너무 깁니다. 노동 시간과 업무 강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죠.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문화를 형성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일과 삶의 균형’은 삶의 행복지수를 높일 뿐만 아니라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 향상에도 영향을 미치죠. 노동 시장과 근로 환경 개선을 통한 현대식 복지국가로 새롭게 변화하는 한국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한국인 ‘너무 오래 너무 세게’ 일해

토마스 리만(Thomas Lehmann·53) 주한 덴마크 대사는 한국의 장시간 근로 문화를 지적하면서 우리 사회의 워라밸 현실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 인구의 행복이 업무 효율성을 높여 생산성을 증대하고 더 높은 이익을 창출해 내며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자국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리만 대사는 한국 정부의 ‘근로 시간 단축 정책’ 시행을 반기며, 한국이 현대식 복지국가로 성장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힘을 보탤 것을 약속했다.

덴마크의 인구는 578만2000여 명(2018년 1분기, 덴마크 통계청)으로 우리나라의 10분의 1수준에 불과하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5만6444달러(세계 9위, 2018 IMF 기준)에 이른다. 지난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집계한 덴마크인의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9.9점, 워라밸 지수는 9.0을 기록했다.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 3.8, 워라밸 지수는 4.7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가 난다. 10에 가까울수록 일과 삶의 균형이 잘 이뤄진 것을 뜻한다. 노동 시간은 연간 1410시간으로 OECD국가 중 두 번째로 짧지만, 1인당 노동 생산성은 63.4달러(약 6만8300원)로 5위를 차지했다. 한국(2069시간)보다 659시간 적게 일함에도 노동 생산성(31.8달러, 약 3만4200원)은 곱절이다.

리만 대사는 코펜하겐 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1992년부터 외교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무역정부부처·예산행정부처 과장 등을 거쳐 △외교부 내 EU조정부처·정무부처 과장 △주스웨덴 덴마크 대사관 공사참사관 △EU조정부처 부장을 역임했다. 2014년 9월 주한 덴마크 대사로 부임한 리만 대사에게 한국은 대사로서의 첫 부임지다.

한국 사회에서 근로 시간 단축과 워라밸이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리만 대사를 통해 덴마크의 높은 삶의 질과 행복지수, 이를 달성하게 된 과정과 비결, 한국이 덴마크 사례에서 배울 점 등을 들어봤다.

- 덴마크는 일과 삶의 균형과 만족도가 거의 만점 수준이고, 행복지수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다. 비결을 꼽는다면

“국민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강력한 사회보장제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실업급여, 연금제도 등 굉장히 넓은 복지 제도가 구축돼 있다. 복지와 행복은 함께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의 삶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과 자유를 바탕으로 한 시민의식과 정부에 대한 높은 신뢰도다. 덴마크인은 시민사회 참여도가 높다. 정치 참여율은 80%에 육박한다. 결국 개인을 넘어 사회, 국가 상호 간의 신뢰가 모여 덴마크인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 같다.”

교육·의료…복지와 행복 함께 가는 것

- 대표적인 복지국가인데, 높은 세금에 대한 부담은 없나

“물론 국민이 누리는 복지 혜택은 공짜가 아니다. 덴마크인들은 임금의 40%를 세금으로 낸다. 복지를 위한 증세는 어쩔 수 없이 동반된다. 덴마크인들에게 ‘세금 부담에 대한 거부감이 없냐’고 묻는다면 ‘더 나은 삶을 만들고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높은 세금을 낸다’고 답할 것이다.”

- 최근 한국도 삶에서 행복의 가치를 중시하면서 덴마크식 휘게(Hygge) 라이프가 사회 트렌드로 떠올랐다. 리만 대사가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모습은

“덴마크인에게 ‘휘게’란 라이프스타일 자체다. 기본적으로 친구든 가족이든 누군가와 함께 안락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촘촘하게 구축돼 있는 복지 제도가 휘게적 삶을 살도록 돕는다. 휘게를 위해선 꼭 ‘시간’이 필요한데, 한국인은 여가를 즐길 시간이 없다. 기본적으로 일을 너무 많이 한다. 업무 강도는 세계 최고다. 휴가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시간이 없으면 진정한 휘게 라이프를 경험할 수 없다. 삶의 행복과 가치를 높이는 워라밸 형성이 중요한 이유다.”

- 덴마크인들의 워라밸 문화는 어떠한가

“우선 근로 시간이 짧다. 법정 근로 시간이 주 37시간이며, 통상 오후 4~5시쯤 퇴근한다. 시간당 임금은 한화 기준 평균 약 1만9000원(110덴마크크로네, DKK) 수준이며, 연간 5주의 유급휴가가 주어진다. 근로 시간이 짧다고 해서 비효율적이라거나 비생산적이라고 보면 안 된다. 생산성만 보면 덴마크는 OECD 국가 중 톱 5위 안에 드는 국가다. 즉, 장시간 근로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특히 덴마크는 노동 시장의 유연성이 높다. 대부분 일터에서 근로자들이 업무 시간을 결정한다. 집에서 일하든 회사에서 일하든, 아침이든 저녁이든 업무를 하는 데 장소와 시간이 중요하지 않다. 파트타임 근무 선택도 자유롭다. 육아기에는 4시간만 일하다 아이가 크면 풀타임으로 확대해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다. 처우도 정규직과 동일하다. 이 같은 요소들이 모여 노동 인구의 행복도가 증가하고, 그들이 행복한 만큼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 근로 시간 단축 정책에 따른 시행 착오는 없었나

“덴마크는 근로 시간, 임금, 휴가 등이 노동 시장 중심으로 돌아간다. 고용주와 노동자 간의 직접적인 합의로 노동 시장 환경을 결정하며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다. 120년 전엔 주 60시간을 일했지만, 노사 간 수많은 협상을 통해 근로 시간을 줄이면서 동시에 휴가 기간은 늘렸다. 이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얻어진 게 아니라, 점진적으로 오랜 기간 천천히 이뤄졌다. 노사 간의 ‘동의’가 매우 중요하다. 강제성을 띠거나 고용인들에게 강요된 게 아니라 노동자들이 주체성을 가지고 건의하고 협상에 참여해 이끌어 낸 결과다. 특히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근무 시간이 짧더라도 좋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낸다는 전제조건하에 ‘동의’를 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없지만 노사가 협의해 결정

- 덴마크와 달리 한국은 정부 주도로 올해 7월부터 주 52시간 근로 시간 단축에 들어간다. 정책 시행을 앞두고 최저임금 이슈와 맞물려 노사 간 갈등을 겪고 있다. 리만 대사가 생각하는 한국 사회의 해법은

“우리는 100년이 넘게 걸렸지만, 정부가 개입하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 한국 정부가 노동 환경과 조건을 고민한다는 건 워라밸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덴마크는 최저임금이 없다. 노사 간의 협의에 따라 결정되는데, 덴마크인들은 근로 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축소를 우려하기보다 워라밸 형성을 더 원했다. 고용주는 좋은 일터를 만드는 데 힘썼고, 이를 바탕으로 노사 간의 협상이 이뤄졌다. 덴마크의 경험을 빗대어 보면 서서히 접근해야 할 문제다. 단번에 해결되긴 어렵다. 당사자를 포함해 대화와 소통이 필요하다. 노사 양측의 입장 차를 확인하고 중간점을 찾고 타협해 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의 경험을 그대로 가져와 한국 사회에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지만, 지식과 경험을 나누면서 서로 배울 점이 있다고 본다.”

여성을 사회로 불러낼 방법 찾아라

- 한국 사회의 워라밸 실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뭐라고 보나

“더 많은 여성이 노동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저출산 고령화로 노동 인구 비율은 줄어드는데, 뛰어난 능력을 가진 여성들은 노동 시장밖에 있다. 여성을 사회로 불러내기 위한 정책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덴마크의 여성경제활동 비율은 80%에 달한다. 자녀 양육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 덕분이다. 부모는 특별수당과 함께 총 52주간의 출산 휴가가 주어진다. 정부는 자녀 연령(0~17세)에 따라 연 4회 육아지원금을 최고 61만 원(3567덴마크크로네)에서 최저 16만 원(936덴마크크로네) 수준으로 지급한다. 또 덴마크의 모든 아이는 보육시설 등록이 가능하고 자리가 보장된다. 대부분 가정이 맞벌이 부부이기 때문에 국가는 0~5세 아동 보육시스템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

- 4년여 동안 경험해 본 한국 사회에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문재인 정부가 덴마크를 비롯한 북유럽 노르딕 국가의 사회 복지 시스템이나 노동 시장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 현대식 복지국가로 성장하는 데 있어 정책적인 교감을 나누고 언제든지 도움을 주고 싶다. 본격적인 근로 문화 개선이 한국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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