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120. 김명순(金明淳)

입력 2017-05-2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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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에 저항한 근대 첫 여성 소설가

김명순(金明淳)은 나혜석·김일엽과 함께 근대문학 초기 한국의 문단을 이끌었던 여성 문인이자 번역가이다. 김명순은 1896년 평양에서 갑부 김가산 소실의 딸로 태어나 기독교 계통인 사찰골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 진명여학교, 이화학당을 거쳐 동경여자전문학교에서 수학한다.

1917년 당대 문학청년들의 로망이었던 잡지 ‘청춘’(12호, 최남선 주재)의 현상 문예공모에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로 3등 입선함으로써 문단에 등장하는데,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이광수의 찬사를 받은 사실은 유명하다. 연구자 신혜수에 의하면 그 이전에 유학생 잡지 ‘학지광(學之光)’에 시 ‘월광’을 실었다(김병익, ‘한국문단사’에 기록)고 하나 지면이 유실되어 확인할 길은 없다.

이후 ‘망향초’란 필명으로 선구적 여성잡지인 ‘여자계’에 ‘초몽(初夢)’ 등의 수필과 소설 ‘조모(祖母)의 묘전(墓前)’ 등을 발표한다. 또 최초의 동인지 ‘창조’에서 유일한 여성 동인으로, 1925년부터는 매일신문사 기자로 활동한다. 여성작가로서는 최초로 개인시집 ‘생명의 과실’(1925), 개인문집 ‘애인의 선물’(1928년 이후로 추정)을 발간한다. 1926년 발간된 ‘조선시인선집’에 여성시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작품이 실린다.

영어, 불어, 독어 등 외국어에도 능통했던 김명순은 쉽지 않은 보들레르의 텍스트를 번역하고, 역시 까다로운 에드거 앨런 포의 텍스트를 제일 처음 번역하기도 한다. 신혜수가 작성한 연보에 의하면 김명순은 20여 년간 소설 25편, 수필 20편, 시 111편, 희곡 2편, 번역소설 1편, 번역시 15편 등 총 17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여, 그 치열한 삶의 열정을 짐작하게 한다.

김명순은 학자들에 의해 그의 고백체 문학이 근대 초기 개인의 자각을 기반으로 한 근대문학의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평가받는다. 그에게 글쓰기는 자신을 옥죄었던 첩의 딸이었다는 손가락질, 가부장제적 억압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방법이었다.

그는 당대 현실과 끊임없이 불화했다. 태어날 때부터 첩의 딸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으며, 일본 유학 당시에는 일본군 장교에게 성폭력을 당하기도 했다. 그때의 충격으로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는데, 이 고통은 작품 곳곳에서 날카로운 비판의식으로 승화되고, 고통스러운 절규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늘 여성주의적 시각을 견지했기 때문에 남성문인 중심의 문단에서도 문란한 여성으로 비난받으며 철저히 배제되었다. 김동인은 ‘김연실전’을 통해 그녀를 모델로 문란한 신여성을 비난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 깊은 회의를 느낀 김명순은 1939년 영구 도일한 후 1951년 아오야마(靑山) 뇌병원에서 별세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간다운 삶을 원하는 천재적 여성작가의 간절한 열망을 짓밟은 식민지 봉건 체제가 만들어낸 끔찍한 최후였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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