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주의 앞세운 트럼프, 왜 철강산업에 집착하나

입력 2017-04-21 15:54 수정 2017-04-24 10:13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국산 철강 수입이 자국의 안보를 침해하는지 여부를 조사하라는 내용의 행정각서에 20일(현지시간) 서명했다. 이 행정각서 내용은 무역확대법 232조를 발효하는 것이다. 무역확대법 232조는 미국 행정부가 수입 제품을 대상으로 자국 안보를 침해받았는지를 상무부를 통해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 법은 1962년 제정된 이후 거의 적용된 적이 없어 잠자는 법이라고 알려졌다. 그러나 상무부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발동 등 수입 제한 조치가 잇따를 수도 있어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대선 공약에 그칠 것 같았던 보호무역주의가 결국 행동으로까지 옮겨지는 모양새다. 트럼프는 왜 이렇게까지 철강산업에 집착할까. 그 배경이 궁금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트럼프가 철에 집착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그 하나는 트럼프 정권의 통상과 관련된 유력 인사가 모두 철강과 관련이 깊은 ‘스틸 마피아’라는 것이다.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로 지명된 로버트 라이시저는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정부 시절 USTR 차석 대표로 지낼 당시 일본을 비롯한 교역 상대국들을 상대로 승용차 등의 자율적 수출규제를 이끌어내는 수완을 발휘해 이름을 널리 알렸다. 상무장관인 윌버 로스는 월가의 거물 투자자로서 철강 산업에 참여해 업계 재편을 주도한 인물이다. 또한 미국 최대 철강사인 뉴코어의 전 최고경영자(CEO) 다니엘 드 디미코는 트럼프 정권의 유력 자문을 맡았다. 다시 말하면,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 기조가 이런 ‘스틸 마피아’들에 의해 결정되는 만큼 철강이 표적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 하나는 미국 철강 시장만큼 반복적인 반덤핑과세(AD)와 수출 자율적 규제 등으로 지켜져 온 산업이 적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호주의가 어떤 결실을 가져다주는지를 검증할 수 있는 좋은 재료가 된다.

일본의 경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철강 분야의 대미 수출 자율적 규제는 1959년에 시작돼 이후 간헐적으로 이어져왔다.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으로 자율적 규제 강요가 어려워지자 AD와 세이프 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도입하는 사례가 늘었다. 신일철주금(신닛테쓰스미킨)에 따르면 현재 미국이 발동 중이거나 조사 중인 AD 안건은 45건에 달한다. 주된 표적은 일본에서 중국으로 바뀌었지만 높은 관세를 부과해 수입품을 제한하려는 목적에는 변함이 없다. 그 결과 지난해 중국산 철강 제품의 대미 수출은 불과 90만t으로 줄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보호주의는 미국 철강시장에 어떤 귀결을 가져 왔을까. 하나는 미국산 철강 사용자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철강 제품을 사서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동차 등에 사용되는 열연 강판을 예로 들면, 세계에서 가장 싼 중국이나 동남아에서의 가격은 t당 500달러선이지만 미국에서는 700달러대다. 언뜻 보면 200달러 차이가 나는데, 이것이 바로 무역을 제한한데 따른 비용인 셈이다.

미국의 철강 소비량은 연간 약 1억t. 여기에 200달러를 단순히 곱하면 자동차 등의 사용자 기업과 나아가 최종 소비자는 연간 200억 달러의 추가 비용을 내야하는 것이다. 실제로 2006년경에는 미국 자동차 빅3가 철강에 대한 AD 발동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 업계 간 이해관계 대립이 고조되기도 했다.

또 다른 논점은 미국 철강산업을 인위적으로 보호한 결과, 그들의 경쟁력이 과연 커졌느냐 하는 것이다. 세계 철강 생산량 순위를 보면, 1970년에는 세계 10대 기업에 US스틸(2위), 베들레헴스틸(4위) 등 3개사가 들었지만 2000년 이후 상위 10개사는 한국 중국 일본과 유럽 기업들이 차지, 미국 기업들은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회사 크기가 전부는 아니지만, 규모의 경제가 말해주는 소재 산업에서 규모의 열세는 경쟁 열세로 직결된다.

일본에서는 1970년대에 철강 재편이 시작됐지만 미국에서 철강 산업 재편이 본격화한 것은 2000년 이후다. 이것도 정부의 보호 속에서 안이하게 대처하다가 필요한 경영 개혁이 뒤늦은 것이다. 전기강판 등 첨단 소재 개발에 있어서도 세계를 주도하는 건 일본과 유럽 기업으로, 미국 기업의 존재감은 약하기 그지없다. 결국 보호주의는 자국 기업을 감싸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 장기적으로는 주변 산업과 소비자에게는 마이너스인 셈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종합] "대중교통 요금 20% 환급"...K-패스 오늘부터 발급
  • "민희진, 뉴진스 이용 말라"…트럭 시위 시작한 뉴진스 팬들
  • "불금 진짜였네"…직장인 금요일엔 9분 일찍 퇴근한다 [데이터클립]
  • 단독 금융위, 감사원 지적에 없어졌던 회계팀 부활 ‘시동’
  • "집 살 사람 없고, 팔 사람만 늘어…하반기 집값 낙폭 커질 것"
  • "한 달 구독료=커피 한 잔 가격이라더니"…구독플레이션에 고객만 '봉' 되나 [이슈크래커]
  • 단독 교육부, 2026학년도 의대 증원은 ‘2000명’ 쐐기…대학에 공문
  • 이어지는 의료대란…의대 교수들 '주 1회 휴진' 돌입 [포토로그]
  • 오늘의 상승종목

  • 04.24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5,700,000
    • +0.16%
    • 이더리움
    • 4,681,000
    • +2.47%
    • 비트코인 캐시
    • 726,000
    • -1.29%
    • 리플
    • 787
    • -0.25%
    • 솔라나
    • 226,400
    • +1.94%
    • 에이다
    • 718
    • -3.62%
    • 이오스
    • 1,239
    • +2.14%
    • 트론
    • 164
    • +1.23%
    • 스텔라루멘
    • 171
    • +1.79%
    • 비트코인에스브이
    • 103,200
    • -0.19%
    • 체인링크
    • 22,240
    • +0.27%
    • 샌드박스
    • 716
    • +2.87%
* 24시간 변동률 기준